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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reell Aug 15. 2023

오랜만에 가는 친구네 집

빈 손으로 좀 와~ 싫어. 이미 고향길 가는 것처럼 가득 준비했어!


내게 가장 오래된 친구는  현재 아들 둘의 엄마인 결혼 11년차에 접어든 P.


P는 중학교 때는 학원에서 만난 것으로 인연이 시작됐다.

고등학교는 같은 곳을 갔지만 반, 과는 달라서 주말에 밖에서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거나 점심 시간에 수다를 떨었던 것 같다.




같은 학교를 다닌 적이 없지만

그 때 이어진 인연은 마흔이 가까운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친구와는 비슷한 점이 거의 없을 정도로 굉장히 다르다.




친구는 키가 작은 편이지만 나는 키가 큰 편이고,

친구는 요리나 손으로 하는 일을 귀찮아 하거나 싫어하지만

나는 요리나 손으로 하는 일을 좋아하는 편이다.


우리는 대인관계 스타일도 다르고, 좋아하는 남자 스타일도 다르지만

아주 오래 '친구'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고 있다.



물론 나는 친구를 몇 번 안 보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친구에게는 다 털어놓아서 알고 있는 사실이라 글에 적어본다.)

하지만 친구의 어머니와도 각별한 사이고, 나이가 하나 둘씩 먹어가면서

친구를 이해하게되거나 그러려니 하는 부분들이 많이 생겨난 것 같다.




P는 스물 일곱이 되자마자 결혼을 했고, 

큰 아들은 내후년이면 중학생, 둘째는 초등학생이 된다.


내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하자마자 친정 엄마보다 더 뭉클해하고

눈물이 차올랐던 사람이 바로 이 친구다.




친구네 갈 때는 빈 손으로 가는 일은 절대 없지만, 

대부분 내 손에는 친구가 좋아하는 디저트나 반찬을 만들어서 가져 가는 것이 대부분이다.


아직도 첫째를 임신하고 5개월이 좀 안됐을 때, 

제일 먹고 싶은 게 뭐냐고 물었을 때 "잡채"라고 말해서 

만들어 줬던 이야기를 가끔 하는데,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소 머쓱해진다.


당시 친구는 결혼 후 3년 여를 시부모님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시어머니는 나를 "잡채친구"라고 부르신다고 한다.




내일은 두 달만에 이 친구 집에 가는 날이다. 

보통 분기별로 한 번씩 만나거나 자주 만나면 한 달에 한 번 정도 만나는 것 같다.


이미 멸치볶음, 어묵볶음, 단무지무침, 낙지젓갈, 깻잎장아찌를 챙겼고

내일 아침에는 계란물을 풀어서 소세지를 부치고, 감자채와 베이컨을 볶고,

진미채를 볶아서 마저 챙겨서 가야겠다.




오래된만큼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도 싫어하는지도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라 힘들어서 연락할 기운도 없구나 싶은 것 까지도

속속들이 알 것 같은 유일한 친구다.


이번 달부터는 나는 새 오븐을 사서 쉬었던 홈베이킹도 다시 시작했다.


샤브레쿠키, 스모어쿠키, 파운드케이크, 마들렌, 휘낭시에, 브라우니를

차례차례 만들어 보고 있다. 


어제 만든 코코넛, 황치즈, 코코아 휘낭시에와 

오늘 오전에 만든 생크림컵케이크가 맛있게 잘 되어서 

친구네 집에 가져가려고 하나 둘 씩 주섬주섬 챙기는 나를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늘 잔소리하니까 가볍게 가야지 싶다가도

한 짐 두 짐 되는거 보면 나도 참 안변한다고 생각해본다.




결혼 후에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결혼 생활에 

속앓이와 마음앓이를 이래저래 많이 하고 있는 친구에게 

내가 오랜 친구로서 해줄 수 있는 것이 뭔지 생각해 볼 때가 있다.


"적당한 선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필요하다면 의견을 함께 나눠주는 것과 

친구 집에 갈 때 만이라도 두 손 무겁게 맛있는 것을 가져가는 것" 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내 힘과 체력이 닿는데까진 쭉 그렇게 할 생각이다.


친구는 지난 봄, 나의 결혼을 축하한다며 어머니와 함께 

좋은 믹서기와 전자레인지와 그릇세트를 집으로 보내줬었다.




나는 신경써준것만으로도 그저 너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인데

좋은 브랜드, 비싼 것을 해주지 못했다고 지금도 저렇게 아쉽다고 난리인

친구에게 덤덤하게 이런 말을 건넸다.


"그런 마음 대신에 너 아프지말고 너 행복하게 살면 난 그걸로 됐어.

이미 지금도 너무 충분한 선물이고 그냥 고마워."하고

친구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스 카라멜 마끼야또와 간식을 

집으로 보내줬었다.




그걸 보낸 순간 아들이 친구를 데려와서 맛있는 간식과 음료를 사준 다음

기운이 없어서 자신은 미지근한 물을 먹고 있다며 웃었다.


내일 김밥을 준비하겠다는 친구를 극구 말리며

아무 것도 하지 말고 그냥 날도 더운데 시켜먹자고 했다.



늘 만나면 비슷한 이야기를 하지만, 

그래도 만나면 즐거운 친구. 친구가 정말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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