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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또시 Jul 26. 2020

달콤이도 똑같은 아깽이

후지 마비 고양이 임보 도전기, 첫 일주일 간의 기록 

달콤이는 다리 부상과 장염 증상을 지닌 채 보호소에 버려졌다. 장애가 있는 아이들은 입양이나 임보 가능성이 낮은 편이라 종종 구조 순위에서 밀려나곤 한다. 하지만 작고 어린 달콤이를 살려보겠다 나선 한 고양이 협회에 의해 안락사의 위기에서 벗어난 달콤인 병원으로 옮겨지게 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범백에 노출된 480g의 아깽이는 격리 병동이 있는 병원의 한 케이지 안에서 열흘을 보내게 된다. 협회는 감당할 수 없는 격리 병동의 비용 부담을 덜고자 인스타그램에 임보처를 구하는 글을 올리게 되는데.....

To be continued...


포인핸드에 남겨져 있는 달콤이의 묘생 첫 사진





#임보 2일 차

기둥 탈 준비중


하루 새 많은 일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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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잠 못 이루며 하던 걱정들은 대부분 기우였다. 만 24시간 동안 알게 된 달콤이의 TMI는 다음과 같다.


1) 달콤인 습득력이 빠르다. 달콤이가 스크래처 옆에 만들어둔 면줄 기둥에 관심을 갖기에 몸을 살짝 들어 올려 꼭대기까지 올라가 볼 수 있게끔 도와주었다. 그리고 방금, 앞다리의 힘만을 가지고 스스로 면줄을 타고 올랐다. 뒷다리를 못쓴다고 기둥을 타지 못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게 해 주었다. 


2) 달콤이도 식빵을 굽는다. 거대한 식빵에 비하면 턱없이 작은, 거의 휘낭시에 사이즈에 불과한 식빵이지만 어쨌든 굽는다. 뒷다리는 누구보다 우아하게 쭉 뻗은 채로 앞다리만 고이 접어 넣었다. 아주 독창적인 미니 식빵이다. 


3) 오전에 묽은 변을 누고 밤이 될 때까지 응아의 흔적이 없어 도움이 될까 하고 배 마사지를 살짝 해줘 봤다. 마사지랄 것도 없이 그저 빵빵한 배 양쪽을 슬슬 눌러주는 것이었다. 조금 뒤, 드디어 엄청난 냄새와 함께 응아가 모습을 드러냈다. (형체가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냄새로 알았다) 묽지 않다!!!!!!! 불린 사료만 먹인 효과가 나타나나 보다. 요놈은 장에서 나타나는 변화마저 빠르다. 아주 칭찬해� 이는 패드의 오염 빈도수가 확연히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 응아만 뙇 주워서 버리면 되니까 허뤠이~!! 


4) 달콤이는 가수급으로 골골송을 잘 부른다. 쓰다듬어주면 골골거리기 시작하는 우리 애들과는 달리 얜 이미 골골대고 있다. 너무 이쁜 나머지 나도 모르게 폭풍 쓰담쓰담을 시전 하게 된다. 눈감고도 골골 쳐다보면서도 골골 그렇게 한참 골골댄다. 물론 지 맘이 내켜야 골골대는 건 여느 고앵이들과 다르지 않다. 


6) 달콤인 방석 위에 올라가고 싶거나 숨숨집 안에 들어가고 싶을 때 날 빤히 쳐다보며 작게 소리를 낸다. 하루밖에 안됐지만 알아들을 수 있다. 놀자고 할 때와 소리가 조금 다르다. (꺼내 달라는 소리도 다르다 요건 다음번에 다른 사진과 함께 이야기할 거다) 잘 알아듣고 옮겨놔 주면 칼같이 뒹굴거리다가 식빵을 굽거나 잠에 든다. 


7) 달콤인 참 잘잔다. 어젯밤에도 잘 잤는데 오늘은 더 잘잔다. 내가 없으면 숨숨집에 들어가지 못해 숨숨집 옆 구석에 납작 엎드려 자고 숨숨집이나 방석에 자리를 잡으면 기똥차게 계속 잔다. 옆에서 유튜브 영상 소리가 새어 나와도 안 깬다. 애는 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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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이랑 서로를 좀 파악하고 나니 한결 마음이 편하다. 걱정하던 부분들 중 가장 큰 게 무른 변이었는데 내일이면 더 단단하게 눌 것 같다는 기대감이 생겼다. 패드도 예상치만큼만 갈아주면 된다. 마음이 오만 배쯤 놓인다. 한 달이 금방 지나갈 것도 같다.


초미니 식빵 ( 잘 보면 앞다리가 완벽히 식빵 자세)




#임보 3일 차

캣타워에 처음 오른 달콤이 표정


요 녀석 보통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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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처음엔 소리를 못 내는 아인 줄 알았다. 병원에서 집까지 오는 내내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음소거 아깽이를 발견했나 싶었다. 겁을 먹어서 조용한가 싶었는데 집에 도착한 뒤에도 입만 뻥긋뻥긋하고 흔히 내는 삐약 소리 한 번 안내는 걸 보고 이상하다 생각했다. 혹시 다른 곳도 같이 다친 건가? 왜 소리를 못 내지? 고양이도 그럴 수가 있나? 별의별 생각들이 다 스쳐 지나갔다.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아주 미세하게 뺘악- 소리가 들렸다.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묻히고 말 수준의 소리지만 그래도 소리를 낼 줄 알면 됐다 했다. 

그런데 하루가 다르게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많아졌다. 사실 첫날 바로 지 필요한 말은 다 하는구나 깨달았다. 뚜껑 없는 숨숨집 안에서 딩굴딩굴하던 애가 갑자기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으로 날 쳐다보며 뺙뺙 거리는데 대번에 알아차렸다. 꺼내 달라는 거구나? 살포시 들어 바깥으로 옮겨놔 주니 바아로 끙아가 밀려 나왔다. 오... 똑똑해..! 

그걸 시작으로 만 이틀의 시간 동안 우린 눈빛을 교환하고, 소리로 소통하고, 숨숨집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정확한 타이밍에 끙아 하기 적당한 곳으로 옮겨가는 걸 반복 중이다


2) 오늘 아침 새소리에 한참 귀 기울이며 바깥을 바라보던 달콤이에게 묘생 첫 캣타워 투어를 선물했다. 가장 전망 좋은(평소 또시 최애) 자리에 패드를 깔고 달콤일 올려주었다. 언니 오빠들 냄새가 나는지 한참 킁킁거리며 위치 파악을 하다가 드디어 바깥 구경을 시작했다. 새소리도 듣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을 고개로 따라가며 모든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였다. 좀 더 크면 슬라이드가 장착된 멋진 캣타워를 맘껏 타고 오를 날이 올 거야, 달콤아.


3) 달콤이는 그루밍 장인이다. 푹신한 방석 위를 딩굴거리다 자세를 고쳐 앉아 앞발바닥부터 시작해 구석구석 그루밍을 시작한다. 다른 냥이들 같았으면 뒷다리를 척 치켜들어 요염한 자세로 고개를 빳빳이 들고 그루밍을 했겠지만, 우리의 달콤이는 더 정성스러운 자세를 택했다. 그 모습이 귀여워 얼른 카메라를 들었지만 오래 담지는 못했다. 얼마 간 시간이 지나면 달콤이만의 그루밍 노하우가 차곡차곡 쌓일 것 같다


4) 달콤인 적극적이다. 침대에 누워 약간 떨어져 있는 울타리 속 달콤이와 눈이 마주치면 그때부터 꾸루룩꾸루룩뺙뺙 소리가 시작된다. 빠른 속도로 달려와 울타리를 머리로 밀기 시작한다. 그래도 내가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으면 울타리 난간(?)을 잡고 갑자기 벌떡 일어나 당장이라도 넘어올 기세로 난간을 타고 오른다. 가까이 와 놀아달라는 마지막 경고 행동이다. 이 때는 뭘 하고 있든지 일어나야 한다. 무릎을 꿇고 앉아 열심히 달콤이를 쓰다듬어 준다. 아직 너무 작고 여려 사실 쓰다듬을 곳도 별로 없다. 끽해야 손가락 하나나 두 개로 미간이나 턱 밑을 조심히 긁어주는 정도? 그래도 꽤나 만족스러운지 골골송을 조용히 불러 제낀다. 오늘도 많이 가까워졌다 우리. 




#임보 5일 차 

그루밍 이렇게 잘하는 고양이 본 적 있냐옹


1) 달콤이는 지금 시한폭탄이다. 어제 새벽에 묽은 끙아를 내보낸 후에 아직까지 끙아 소식이 없다..!!! 밥도 잘 먹었고 엄청 깨발랄하게 뛰놀고 있는데 왜 안 나올까..? 이따 얼마나 폭풍 끙아를 하려고 이리 오랫동안 잠자코 있는 건지.. 오늘 밤은 설레서 잠을 못 이룰 것 같다. 두근두근 


2) 이전 일기에서 달콤이가 그루밍 장인이라고 언급했었다. 정정한다. 달콤인 그루밍의 신이다. 척 드러누워 양다리를 움켜쥐고 꼼꼼하게 그루밍하는 걸 포착했기 때문이다. 이미 그루밍 노하우는 다 쌓은 듯하다. 일이 분도 아니고 한참을 그 자세를 유지하며 그루밍을 하는 게 나 혼자 보기는 아쉬워 기록한다. 


3) 달콤이가 말이 늘었다. 이제 온종일 소리를 낸다. 우렁차진 않지만 음소거 냥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게 되었다. 이리저리 계속 뛰어다니며 꾸룩꾸룩 신나게 소리를 질러대고 골골 소리도 제법 또렷하게 내고(또시는 거의 테슬라급으로 조용하게 골골거려 웬만큼 조용한 환경이 아니면 소리를 캐치하기 힘들다) 방울 들어간 공도 잘 굴리고 패드도 잘 파헤친다. 여튼 오만 소리를 다 만들어내는 깨발랄한 아깽이다 요놈


4) 주말에 처음으로 달콤이가 패드 위에서 모래 덮는 시늉을 하는 걸 발견했다. 오..! 역시 고앵이들의 본능이란. 제대로 된 모래 위에 끙아를 못하는 게 아직 아쉽긴 하지만 달콤이도 평범한 고양이다




#임보 6일 차 

제법 고양이 같아진 달콤이



1) 달콤이는 오늘 3번이나 끙아를 했다. 누군가의 배변 활동에 이렇게까지 일희일비한 적이 있던가. (지상 최대 관심사=달콤이 끙아 상태) 달콤이가 온 날부터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확인 가능한 선에서 배변 상태와 시간을 기록하고 있는데 오늘은 아침저녁으로 아주 건강한 끙아를 뾰롱뾰롱 생산해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발 동동이었는데 우리 달콤이 대장 아주 칭찬해~ 앞으로도 이렇게만 부탁해~


2) 달콤이가 지난주에 비해 부쩍 자랐다. 약이 묻어 축축하게 젖어있던 털들이 뽀송하게 마르면서 통통해 보이는 효과도 있지만 몸길이가 확연히 길어졌다. 여러 아이들을 임보 하면서 꼬물이가 순식간에 아깽이가 되고 아깽이가 눈 깜짝할 새에 캣초딩이 되는 걸 겪어오긴 했지만 이번엔 느낌이 사뭇 다르다. 사명감이 보태진 뿌듯함이랄까...? '임시보호처'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확인받고 있는 기분이다. 길에서, 보호소에서 혹은 병원에서 벗어나 배불리 먹고 맘 놓고 자고 여름에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하게 몸을 뉘일 수 있는 곳이 주어진다는 건 이 작은 생명체에게 너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 그 자체가 되어주는 것 아닐까 싶다. 다른 모습들도 모두 사랑스럽지만 자그마한 방석 위에 누워 웬만한 소리에는 미동도 하지 않고 잠에 빠져있는 네 모습이 가장 사랑스러워 달콤아 잘 자줘서 고마워




                                                                                         ♥

올라프도 뜯어 먹을만큼 기력을 회복한 달콤이


#달콤이 소식 더 보러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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