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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쌤 Apr 12. 2022

여정, 그 자체

가끔은 철학자가 됩니다(14)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 수 있나요?

미켈란젤로의 조각품들을 보며 누군가 이렇게 물어 보았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는 별거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고 전해진다.

“간단합니다. 먼저 대리석판 한 개를 골라 불필요한 부분을 모두 깎아내면 됩니다.”


그걸 누가 몰라?

미켈란젤로에게 듣고 싶은 답은 불필요한 부분과 필요한 부분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대칭적 구도와 미적 감수성을 어떻게 연마했는가, 에 대한 것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핵심은 조금 다른 측면에 있다. 예술작품이 창조되려면 불필요한 부분이 쓰레기가 된다는 사실이 바로 그것이다. 쓰레기더미 없는 예술작업장은 없다. 하지만 미켈란젤로가 생각하는 불필요한 부분이 본래부터 쓰레기였을까.


슈퍼스타K, 위대한 탄생, K팝스타 등등.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심사위원들은 탈락자들에게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그런데 그 말이 나에게는 이렇게 들린다. 달리는 열차에 올라탈 수 있는 건 딱 한 사람뿐인데 너는 이번 열차에 올라타지 못했어, 다음 열차에는 꼭 탈 수 있을 거야, 너는 그럴 재능이 있거든, 하지만 노력하지 않으면 안 돼, 만약 다음 열차에 올라타지 못해도 실망하지 마, 넌 언젠가 열차에 올라탈 수 있을 테니까.

우리가 사는 사회는 자기 자신을 지금보다 발전시켜야만 하고, 고쳐 나가야만 하고, 계속해서 더 많은 것을 얻어야만 한다고 가르친다. 그렇지 못하면 다음 열차는 고사하고 영원히 어떤 열차에도 오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그런 사회에 묻고 싶다. 도대체 그 열차의 도착지는 어디야? 고작 다음 역, 그리고 또 다음 역 아니겠어?


열차를 기다리지 말자.

KTX처럼 편하고 빠르게 목적지에 도착하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다. 미켈란젤로와 같은 재능이 있다면 그렇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확실한 열차티켓을 들고 무작정 역 안에 머물러 있지는 말아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 버려놓은 자전거를 타거나, 여러 켤레의 신발을 등에 짊어지고 걸어보는 편이 낫지 않을까.

우리가 걷는 여정은, 신기록을 수립하기 위해 보다 빠르게 목적지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조금 늦더라도 괜찮다. 내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씩 전진하는 것. 누군가는 우리의 행보를 불필요한 쓰레기로 취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의 시선과 목소리 때문에 여정을 지체하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의 목적지는 어쩌면 여정, 바로 그 자체일지도 모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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