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갚음' 하고 계신가요?
우리는 ‘내리사랑’에 ‘안갚음’을 하고 있는가
(프레시안, 2023. 5. 8.)
우리말에 ‘내리사랑’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을 사랑함. 또는 그런 사랑, 특히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을 이른다’로 사전에 풀이되어 있지요. 반의어로는 ‘치솟다, 치받다’ 등에서 볼 수 있는 ‘위로 향하게’의 뜻을 지닌 접두사 ‘치-’가 ‘사랑’과 결합한 ‘치사랑’이 있습니다.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을 사랑함. 또는 그런 사랑’의 뜻입니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도 있는데요,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가리킬 때 자주 쓰는 표현입니다. 다른 나라의 언어 표현에는 없는, 우리만의 고유한 정서를 담고 있는 소중한 단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내리사랑’에 ‘안갚음’을 하고 있느냐니, 이 무슨 해괴한 표제일까요? 이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안갚음’에 대해 꼭 알고 넘어가야겠습니다.
여러분은 ‘안갚음’이라는 단어를 보고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이 무엇이었나요? 아마도 ‘갚다’라는 단어를 부정형으로 표현한, ‘갚지 않다’의 짧은 부정 표현을 떠올렸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만약 그러한 형태였다면 띄어쓰기가 달라졌겠지요. ‘갚지 않다’의 짧은 부정문으로 쓰고자 했다면 ‘안 갚음’이 되어야 할 것이므로, 위 단어는 적어도 ‘갚지 않다’의 뜻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안갚음’의 사전적 의미를 알아봅시다.
● 안갚음: 1. 까마귀 새끼가 자라서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일. 2. 자식이 커서 부모를 봉양하는 일.
[예] 이제는 안갚음을 할 나이가 되었다.
‘안갚음’은 1을 중심 의미로 하여 2의 의미까지 확장되어 쓰이는 단어입니다. 아마도 이 단어를 처음 본 사람이라면 매우 놀라울 단어일 것 같습니다. ‘갚지 않다’의 부정 표현이 아닌, 별개의 독립된 뜻을 지닌 단어입니다.
또한 비슷한 표기로 인해 ‘앙갚음’을 떠올린 사람도 있었을 거예요. ‘안갚음’보다는 일상에서 좀 더 많이 쓰이는 단어이기도 하니까요.
● 앙갚음: 남이 저에게 해를 준 대로 저도 그에게 해를 줌.
[예] 기표가 무서워서, 그의 안하무인한 앙갚음이 두려워서 제적을 못 시켰다는 그런 이야기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전상국, 우상의 눈물≫
‘앙갚음’은 쉽게 말해 ‘복수, 보복’이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 이른바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와 같은 의미이지요. 다음 표제와 같은 쓰임을 보입니다.
스토킹으로 벌금형 받자 앙갚음한 70대, 항소심도 실형
(뉴시스, 2023. 10. 30.)
안갚음의 운명은?
한편 앞으로 이 단어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볼까요? 안타깝게도 안갚음의 운명은 비관적입니다. 앞으로 사어(死語), 즉 죽은 말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그 이유는 일단 첫째로 언중의 선택 때문인데요. 굳이 단어 사용의 데이터베이스를 근거로 하지 않더라도 현재 안갚음은 거의 사용되지 않는 단어이고 앙갚음은 상대적으로 더 자주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이렇게 언중의 쓰임을 받지 못해 경쟁에서 밀리는 단어는 머지않아 곧 도태되어 사어가 될 운명에 처해집니다.
우리는 앞에서 어휘의 변화 양상을 의미의 축소, 확장, 이동으로 살펴본 적이 있습니다. 이때 의미가 변화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라지는 단어들도 있습니다. 혹시 ‘급산(急霰)’이라는 단어를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아마도 이 단어보다는 같은 뜻을 지닌 ‘싸라기눈’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하실 겁니다. 이때 ‘급산-싸라기눈’은 경쟁 관계로 존재하다가 언중의 선택으로 인해 ‘급산’은 거의 쓰이지 않는 사어가 되었고 ‘싸라기눈’은 경쟁에서 살아남아 아직 쓰이고 있는 단어입니다. 안갚음도 언중의 선택을 받지 못해 사전에만 실려 있고 쓰이지 않는 사어가 될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비슷한 발음 때문입니다. 일단 '앙갚음'과 ‘안갚음’은 공교롭게도 서로 표기가 비슷한 데다 수의적 자음동화까지 적용되어 둘 다 ‘[앙가픔]’으로 발음하게 되면 두 단어의 변별력이 떨어져 언중은 소통상의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자음동화의 개념을 먼저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자음동화, 국어 시간에 정말 많이 들어 보셨을 거예요. 어떤 자음이 다른 자음과 만났을 때, 서로 유사한 자음으로 동화(같아짐)하는 것을 말합니다. 예컨대 ‘밥물’은 ‘[밤물]’이라고 발음되는데요, 이 과정에서 ‘ㅂ’이 ‘ㅁ’을 만나 ‘ㅁ’으로 발음되며 이러한 현상을 자음동화라고 하는 것입니다. ‘섭리[섭니→섬니], 국물[궁물], 인류[일류]’와 같은 단어들도 같은 원리로 발음되는 단어들입니다. 이러한 자음동화는 대부분 예외 없이 반드시 일어나야만 하는 동화 현상이기에 ‘필연적 자음동화’라고 합니다. 동화 현상 없이는 발음이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이기 때문이지요.
반면 ‘수의적 자음동화’는 어떠한 원칙에 근거한 자음동화가 아니라 임의적으로, 즉 발음하는 사람 마음대로 발음하는 자음동화를 가리킵니다. 예컨대 ‘옷매무새’의 경우 ‘[온매무새]’라고 발음하는데 ‘옷’의 ‘ㅅ’이 대표음인 ‘ㄷ’으로 중화되었다가 ‘ㄷ’과 같은 위치에서 소리 나는 비음 ‘ㄴ’으로 바뀌기 때문에 ‘[온매무새]’라고 발음하는 것입니다. 이때 어떤 사람들은 이것을 ‘[옴매무새]’로 잘못 발음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발음을 수의적 자음동화라고 할 수 있으며 이처럼 수의적 자음동화로 인한 발음은 틀린 발음이 됩니다. 수의적 자음동화가 표준 발음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일반적으로 동화 현상은 같은 위치에서 나는 비음으로 바뀌는 것을 자연스러운 발음 현상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같은 위치에서 발음되는 ‘ㄷ’에서 ‘ㄴ’으로의 자연스러운 발음 변동과 달리, ‘ㄷ’에서 ‘ㅁ’으로의 발음 변동은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입니다. 즉 자연스러운 ‘[온매무새]’를 놓고 굳이 ‘[옴매무새]’로 발음할 타당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안갚음과 앙갚음의 발음을 설명하기 위해 다소 긴 설명이 필요했네요. 다시 ‘안갚음[*앙가픔]’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안갚음’은 자음동화를 적용하지 않는 ‘[안가픔]’이 자연스러운 발음인데 이를 발음하는 사람 마음대로 ‘[*앙가픔]’으로 발음한다면 의사소통상의 혼란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부모에게 안갚음을 해야 한다’라는 문장이 ‘부모에게 앙갚음을 해야 한다’라는 문장으로 잘못 이해된다면 엄청난 혼란이 생기겠지요. 이에 언중은 비슷한 발음으로 혼동할 가능성이 있는 이 두 단어를 두고 ‘안갚음’의 사용을 기피할 수 있고, 이로 인해 안갚음이 사어가 될 가능성이 발생하는 것이지요.
소중한 우리말 안갚음이 사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면 일단 정확히 발음하는 태도가 필요하고 또 자주 사용해야 하겠지요. 여러분의 선택은 어떠한가요?
<문해력이 쑥쑥, 한 줄 요약>
‘안갚음’은 ‘갚지 않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모님의 은혜를) 소중하게 갚는 것입니다.
'꽉잡아 문해력'이 책으로 나왔습니다.
읽자마자 문해력 천재가 되는 우리말 어휘 사전 | 박혜경 - 교보문고 (kyoboboo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