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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숨 Oct 31. 2023

화려한 이 도시가 가르쳐준 단순한 사실

뉴욕 10박 12일의 기록 03

뉴욕 하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것, 맨해튼의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다. 주변에서 뉴욕 여행을 다녀온 사람이면 약속이라도 한 듯 그렇게 야경을 극찬했다. 다른 도시에서는 절대 보지 못할 풍경이라 했다. 대도시 야경? 그래 아름답지. 근데 얼마나 멋지길래 그러는 걸까? 궁금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것을 실물로 접할 날이 다가왔다.


사면이 유리로 돼있는 뉴욕의 써밋 전망대


요즘 뉴욕에서 가장 핫하다는 써밋 전망대에 올라갔다. 써밋 전망대는 위, 아래, 양옆 사면이 모두 유리로 돼있어 맨해튼 스카이라인을 더 생동감 있게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기존 입장권 가격에 10달러를 더 주고 노을 지는 시간대에 들어갈 수 있는 티켓까지 구매했다. 앞에 뉴욕 현대미술관 일정으로 다리는 이미 피곤한 상태였지만 막상 전망대에 올라가 맨해튼의 해질녘 모습과 야경을 보니 피곤함이 싹 가시는 기분이었다.


절대 잊지 못할 맨해튼의 야경, 아직도 사진만 보면 마음이 울렁인다


맨해튼 야경은 정말 화려함 그 자체였다. 이렇게 건물 풍경이 다채로운 도시가 또 있을까? 삐쭉하고 네모나고 둥그렇고 높고 낮고. 각기 다른 모습을 한 건물들이 이상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전망대는 91층 높이였는데 그 위에서 아래를 바라보니 한없이 높아만 보이던 건물이 내 눈높이에 있었고 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은 작은 점만 한 크기로 축소돼 보였다.


계속 우와- 하며 야경을 구경하며 즐겁기만 했는데 문득, 뉴욕에 오기 전 나를 계속 조급하게 만들던 걱정거리들이 떠올랐다.



사실 여행오기 한 달 전쯤 회사에서 팀 이동을 하게 됐다. 엄밀히 말하면 단순 팀 이동이 아닌 커리어 전환이었다. 줄곧 콘텐츠 관련 일만 해오다 기획 업무를 해보고 싶어 서비스 기획팀으로 옮겼으니 완전히 다른 회사로 입사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해보니 생각보다 배워야 할 게 너무 많았고 팀 사람들과도 잘 어울리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다. 과연 이 팀에 적응할 수 있을까? 저 사람이 날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 왜 다들 내게 관심이 없는 것 같지? 다들 잘 지내는 것 같은데 나만 이러는 걸까? 아무도 내게 뭐라 하지 않았지만 스스로 만들어낸 걱정거리가 나를 잠식했다.


그러다 미리 계획해 둔 뉴욕 여행이 다가와 탈출하듯 이곳에 왔다. 이 거대한 도시 풍경을 바라보고 있자니 그간 괜한 걸 걱정했구나,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인데 왜 그렇게까지 걱정했을까 싶었다. 나를 덮쳐 삼킬 것만 같던 문제들이 이곳에 오니 너무 작아 보였다. 이보다 훨씬 중요한 게 많은데 그간 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집착했을까.


한국에 있을 땐 매일매일 문제를 마주하니 실제보다  더 크게 느껴지고 언제 해결될까 조급한 마음도 자주 들었다. 그런데 한 발짝 떨어져 바라보니 그동안 혼자 실컷 부풀려놓은 것들의 실제 크기를 마주한 느낌이었다. 마치 해리포터 시리즈 마지막 편에서 해리가 볼드모트의 실체를 보게 됐을 때의 느낌 같았달까.



이 도시의 야경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눈앞에 문제가 가득해 보여도 그것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가끔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해결되는 것들이 있다고. 대신 진짜 중요한 게 뭔지 잊지 말라고. 문제가 안 생기면 좋겠지만 문제 없는 삶은 불가능하기에 당장의 현실에 너무 집착하지 않기로 했다. 해결하려 노력하되,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이 하루를 소중하게 보내는 데 더 에너지를 써야지. 출근길에 짧게나마 좋은 날씨를 만끽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따뜻한 대화를 나누고 가족들과 소소한 추억을 쌓는 일상 속 작은 순간들을 귀하게 여기고, 내게 중요한 가치를 삶에 더 녹여내며 살아야지 싶었다.


그저 화려한 야경을 보고 싶었을 뿐인데 의외의 수확을 얻고 1층으로 내려왔다. 전망대에 올라가기 전과 후의 나는 똑같은 사람이지만 마음 한 구석은 달라진 느낌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때의 다짐을 계속 떠올리고 있다. 문제에 압도되지 않고 더 가벼운 마음으로 문제를 대하기. 진짜 중요한 것들이 뭔지 잊지 않기.


아직까지는 성공인 것 같다.



맨해튼의 야경도 야경이지만 해질녘 모습도 상당히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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