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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 rey Jul 08. 2024

당신의 '소울푸드'를 들려주세요

치킨 알프레도 파스타와 레모네이드

누구에게나 추억의 음식이 있다. 한 사람에게 위로가 되고 마음까지 달래주는 음식말이다. 한국에서는 그걸 흔히 ‘소울푸드’로 부르곤 한다. 원래 의미는 미국 남부 지방에 뿌리내린 흑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향유된 전통 음식과-바비큐, 검보, 프라이드치킨 등- 그 요리법을 뜻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소울푸드라는 단어가 원래 의미와 완전히 다르게 로컬라이징되어 ‘영혼까지 달래주는 음식 comfort food’의 의미로 널리 통용된다. 그런 의미에서 한번 질문해보고 싶다. 어떤 음식은 정말로 영혼과 밀접하게 달라붙어 있을까? 


나는 그렇다고 믿는다. 설령 영혼까지는 단언할 수 없어도 분명 음식에 대한 우리의 경험은 시절에 대한 매우 밀접하고 내밀한 관계를 갖기 때문에, 누군가의 ‘소울푸드’와 그 사연을 듣는 건 언제나 흥미롭다. 그러니 여러분도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한번 이 질문을 던져보길 바란다.




근데 각자 소울 푸드 같은 거 있어? 추억의 음식 같은 거.”


언젠가 대학 동기인 H와 Y와 함께 오랜만에 모여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화덕 피자를 먹던 중에 이런 질문을 했다. 뜬금없는 질문에 H와 Y는 당황했지만,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천천히 대답해 주었다. 


H: 음… 나 하나 있어. 계란덮밥. 


H: 예전에 중고등학교 다닐 때, 우리 엄마가 일을 나가셔야 해서 바빠서 밥 할 시간이 없으셨거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내가 공부 욕심을 내니까 시간 없는 와중에 끼니를 챙겨주려고 신경을 쓰시더라고. 공부할 때 밥은 챙겨 먹어야 한다고. 
 
그때 짧은 시간 안에 간단히 만들 수 있는 메뉴로 자주 해 주셨던 메뉴가 계란덮밥이었어. 기름 두른 팬에 양파 살짝 볶아서 익힌 계란이랑 간장 넣어서 만든 간단한 음식인데. 별거 아닌 듯하면서도 참 맛있었어. 알고 보니 엄마가 어릴 때 할머니가 그런 방식으로 계란덮밥을 해주셨다고 하더라고. 엄마가 나에게 해줬던 요리를 엄마도 할머니에게 받아서 나처럼 먹었던 거잖아? 그게 참 묘하고... 의미 있다고 해야 하나.


H는 현재 고향으로 돌아가는 어떤 여자에 대한 소설을 쓰고 있고, 어머니와 가깝고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편 Y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Y: 소울푸드… 별로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엽떡인 거 같아. 그게 내가 대학 입시 때문에 재수할 때 엄청 먹었던 음식이거든. 


당시에 맨날 저녁 늦게까지 입시 준비하고, 달리 다른 걸 할만한 시간이나 여유가 없다 보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음식도 자극적인 걸 찾았어. 그런 상황 속에서 엽떡을 먹는 게 작은 해방처럼 느껴졌던 거 같아. 왜, 엽떡 특유의 맵고 혀가 아린 맛이 엄청 자극적이니까. 그런 식으로라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려고 했던 거 같기도 하고. 당시에 비슷한 상황에 있는 학원이나 학교 친구들이랑 같이 엽떡 주문하고 나눠먹곤 했는데... 그렇게 애들이랑 엽떡을 같이 먹는 시간이 당시에 많이 위로가 됐고. 돌아보니 약간 추억이기도 하네…”


Y는 높은 기준을 달성하기 위해 노력을 멈추지 않는 사람으로 자랐고, 당시 비슷한 경험을 공유했던 학창 시절의 친구들을 여전히 소중히 여긴다. 

  


이 대화에서 매우 사소한 듯하지만 중요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소울푸드’는 가장 맛있게 먹었거나, 혹은 가장 좋아하거나, 가장 훌륭하게 여기는 음식과 다르다. 무심코 ‘소울푸드’로 꼽는 음식이 한 사람이 중요하게 여기는 시절과 깊은 관계가 있을 수 있다. 때로 소울푸드는 그 사람의 무의식적인 가치까지 반영한다. 그러니 어떤 사람의 한 조각을 이해하고 싶다는 충동이 들면, 이 질문은 의외로 괜찮은 리트머스지가 될 수도 있겠다


내 얘기를 꺼내보자면, 나의 소울푸드는 6-7살 때부터 먹었던 치킨 알프레도와 레모네이드가 될 거 같다. 음? 파스타? 어떤 사람들은 어떻게 음식 맛도 잘 모르는 어린아이가 크림소스에 버무려진 닭가슴살 필레 파스타를 인생 음식으로 꼽을 수 있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러분도 알겠지만, 진짜 좋은 음식에는 세월도 기억도 거스르는 힘이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천안에는 제대로 된 양식집이 흔하지 않았다. 얇은 돈가스와 희멀건 수프가 나오는 경양식 식당은 있어도, 파스타를 전문으로 하는 매장이 생긴 것은 1990년대 후반의 일이었다. 시내 최대 번화가였던 역 근처에 ‘맘마 파스타’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개업했다. 단층 상가 건물 2층에 입점했지만, 입구 앞에 커다란 인형이 있어서 어렵지 않게 매장을 찾을 수 있었다. 콧수염을 기르고 조리사 모자를 쓴 뚱뚱한 이탈리안 요리사 모형을 지나면 나무로 된 계단이 나왔다. 좁고 가파른 계단을 오를 때 따스한 주광빛 조명이 비췄다. 매장 문 너머로 먹음직스러운 허브와 토마토 냄새가 났다.  


기억하기로 ‘맘마파스타’는 당시 천안에 처음 생긴 파스타 전문 매장이라고 했다. 세련된 취향을 향유하는 걸 큰 기쁨으로 여기던 엄마는 그곳을 단골 매장으로 삼았고, 백화점 쇼핑을 다녀오는 날이면 반드시 맘마파스타에 들러 저녁식사를 해결했다. 엄마는 느끼한 음식을 좋아하는 어린 딸의 식성에 따라 크림 파스타 섹션에서 메뉴를 고르게끔 메뉴판을 펼쳐두었고, 나는 개미만치 작게 적힌 한글을 따라 읽으며 치킨 알프레도 파스타와 레모네이드를 골랐다. 


정중하고 과묵한 웨이터가 긴 유리잔에 음료를 먼저 서브해 주면 나는 빨대로 에이드를 조금씩 빨아들이며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진짜 레몬을 으깨 넣은 그 에이드는 달기보다는 시큼했고, 바닥까지 빨대를 끌어올릴 때면 과육이 씹혔다. 새콤한 에이드를 아껴서 먹고 있으면 금세 메뉴가 나왔다. 옅은 조개색 같은 소스에 푹 젖은 파스타 면 위에 연한 갈색으로 브레이징된 닭가슴살이 올라가 있었고, 그 위에는 잘게 분쇄된 파슬리가 뿌려져 있었다. 그 옆에는 깨끗한 냅킨 위에 가지런히 정리된 나이프와 포크가 있었다. 그러니 그것은 어린이 메뉴도, 누군가와 나눠 먹어야만 하는 조그만 음식이 아니라 온전히 내가 먹어 치울 양의 요리였다.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지 않은 어린애에게는 아주 호사스럽고 기쁜 대접이었던 셈이다. 스푼으로 떠먹을 만큼 걸쭉한 소스에 면을 가득 적셔 포크로 돌돌 말아서 한입에 넣으면 진한 크림 맛이 혀에 퍼졌다. 녹진한 닭고기 크림소스를 맛보다가 레모네이드를 마시면 느끼한 맛이 중화되어 매우 조화로웠다. 


양파와 파슬리향이 나는 소스에 닭고기를 뭉근하게 졸여 부드러워진 필레를 결 따라 찢어 먹을 때, 나는 대접받고 있는 느낌, 우리가 좋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느낌을 배울 수 있었다. 아마도 나의 모친도 그러했던 거 같다. 백화점을 가거나 돈을 쓰면서 기분을 내고 싶은 날에 엄마는 항상 맘마파스타에 나를 데려갔으니까. 덕분에 가장 유복했던 시절에 우리는 거의 매달 맘마파스타에 방문했다. 내 키가 자라고 한 해씩 나이를 먹어도 메뉴는 언제나 동일했다. 


그 사이 우리 집은 점점 더 가난해졌다. 맘마파스타에서 식사하는 빈도는 몇 달에 한 번이 되었다가, 일 년에 한 번이 되었다가, 그러다 나중에는 아주 가끔 좋은 기분을 상기하기 위해 큰 마음을 먹고서야 가게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레스토랑에 가는 길목도 몰라보게 변했다. 천안역은 더 이상 지역 최대의 번화가가 아니었고 일자리를 찾아 한국에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모여 사는 지역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는 대학생이 되어 다시 한번 내가 번 돈으로 치킨 알프레도를 사 먹으러 갔다. 이 동네의 몰락은 새삼스러운 현상이 되어 이제는 요란하게 쓸쓸한 길목도 낯설지 않았다. 입점한 대형몰은 모두 파산한 지 오래고, 한때 대학생과 멋쟁이로 북적이던 거리는 한산해졌다. 골목에는 공가 딱지가 붙은 상가가 즐비했으며 그나마 자리를 유지하는 가게들은 대부분 중고 의류를 취급하는 구제 매장으로 변했다. 당연히 맘마파스타는 더 이상 천안에서 가장 세련된 파스타 매장이 아니었고 가끔 찾아오는 단골에 의존했다. 뚱뚱한 이탈리안 요리사 모형도 허물어갔다. 얼굴엔 칠이 벗겨지고, 군데군데 담뱃불 지진 흉터가 남고, 배에는 구멍이 뚫려서 흉물스러워졌다. 한때 여유 있고 세련되었던 매장 분위기는 10년 동안 업데이트되지 않아 낡고 고루해 보였다. 나는 자리에 앉아 조심스럽게 메뉴를 주문했다. 점잖은 미소로 접객하던 웨이터는 사라지고 대신 주방에 있던 조리사가 음식을 내어주었다. 


가장 서글프고 기뻤던 점은 가게의 분위기가 바뀌고 주변의 풍경이 변하고 같은 음식을 주문하는 내가 달라지는 세월 동안에도 언제나 6살 때 먹던 바로 그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치킨 알프레도 파스타와 레모네이드는 가게가 영업을 중단할 때까지 나의 고정 메뉴였다. 달라진 것은 하나뿐이다. 이제 그 자리에는 맘마파스타가 없다는 것. 이제는 빈자리에 중요한 질문 하나만 남아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치킨 알프레도와 레모네이드는 나를 어떤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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