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 - 편혜영, 김연수, 김애란 외 3명]
1. 소설의 풍요
소설은 가상의 실재다. 영화, 드라마, 음악 모두 마찬가지다. 그중에도 소설(책)이 갖는 힘은 자기 주도성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영화나 드라마, 음악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지만, 소설은 온전히 내 눈을 따른다. 어떤 콘텐츠를 '본다'는 의미는 단순히 그것을 보는(See) 행위에 있지 않고, 그것을 읽고(read) 해석(Interpret)해내는 데에 있다고 할 때, 단순히 지나갈 뿐인 영상에 눈길을 두는 것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단어와 문장에 주목하고, 문장과 문장 사이를 읽어내거나 그 어떤 지점에서라도 자유로이 눈을 멈추고 머릿속 상념에 집중해 생각을 이어나가거나 정리하는 주도적 유연성이 월등히 높기 때문에, 우리는 기꺼이 책을 다른 콘텐츠들과는 다른 대접을 해줄 수 있다. 내 손으로 직접 운전대를 잡고 풍경 좋은 곳에서는 내려서 사진도 찍고 필요하면 중간에 맛집에도 들릴 수 있는 여행이, 도중에 멈출 수 없는 버스나 기차로 한 여행보다 더 풍요로울 수 있는 이유일 것이다.
2. 수상작품집의 세 가지 매력
나는 새롭게 발표되는 문학상 수상집을 독서모임 커리큘럼에 자주 끼워 넣고는 하는데 그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권위에 대한 회피다. 이미 등단한 지 수십 년이 지나 문학계에 안정적으로 자리 잡은 기성 작가들의 작품이 갖는 권위성에서 벗어나는 일은 작품과 독자 간의 낙차를 좁히는데 유용하다. 작품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작가와 그를 둘러싼 아우라로부터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었다. 수많은 권위에 인정받은 소위 '명작(Classic)'들은 '소소한 취미 독서가들'의 서투른 비평 시도에 어떤 방식으로든 한계를 주기 때문이다. 권위에 주눅 든 멤버들과 몇 시간을 이야기하는 것은 다소 지치는 일이다.
두 번째는 현재, 한국을 함께 살아가는 작가들의 글이 주는 동시대적 예술(Contemporary Art)적 가치이다. 이는 냉전 시대가 종식된 후 러시아의 대문호가 써낸 시대주의적 문장을 읽는 것과는 다른 감동을 준다. 내가 몇 년 전 갔던 남이섬을 배경으로 취업 준비생들이 대화를 나눈다. 제주의 바람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더니,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 두기가 한창이던 시기를 배경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빽빽한 아파트 단지 내 유치원 모임에 소홀한 편모 가정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고, 성수대교 사고 근처에 있던 주인공이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다. 평일 오후 문화 강좌에 다니는 70세 노인이 퇴행성 관절염으로 고생하며 반추하는 딸아이의 이야기가, 낯선 시대 배경의 첨예한 갈등 상황보다 읽는 이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더 움직이는 건 불가피하다.
이번 책 '2022 김승옥문학상 수상작품집'을 덮으며 새롭게 느낀 특별함이 있다.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어쨌거나 하나의 분철 아래 한데 모인 작품들 간의 구성과 조화다. 심사위원들의 심사평을 보면 이러한 것들이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고 하기 어렵다. 동일한 작가의 작품들은 동시에 채택하지 않았고, 어떤 작품은 그 작가의 주된 역량보다는 기존의 작품세계를 확장했다는 사실을 높게 샀으며, 또 어떤 것은 다른 작품들이 주로 다루지 않는 서술방식이나 전개를 택했다는 이유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심사위원들이 최종적으로 가려낸 여섯 편의 작품들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을 이유는 단지 각 작품들의 독립적 개성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향수는 3가지 노트로 그 향을 설명한다. 탑, 미들, 베이스. 같은 탑으로 시작해도 다른 미들이나 베이스를 가지면 전혀 다른 제품이 된다. 그런 점에서 작품집은 향수를 닮았다. 김승옥문학상이라는 브랜드에 맞게, 조향사인 심사위원들이 고른 작가의 작품들이 차례대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이번 책의 경우, 청춘의 불안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사회 격차로 인한 불균형 에피소드로 이어지고, 한 아이 엄마의 혼란해진 일상을 펼쳐 보인 다음에 독자를 뉴욕 허드슨 강 다리 위로 이끌더니, 눈부시게 환했던 어떤 과거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이야기로 마무리한다. 좋든 싫든, 선택적으로 특정 작품만 골라내어 읽고 책을 덮지 않은 이상, 각 작품들은 결국 다른 작품들과 기억과 감상을 함께할 것이다. 포도밭을 떠올리면 이연이 마시던 와인 한 모금이 떠오를 거고, 제주에서 불던 바람은 맨해튼에서도 느껴질지 모른다. 텅 빈 작업실에 누워있을 쓸쓸한 여성을 떠올릴 때면, 그래도 그에게 언젠가 앵무새와 같은 환한 기억이 있기를 바랄 수도 있다. 6일간의 여행을 하고 나면 특별히 더 좋았던 날이 많이 생각나겠지만, 그 전날 또는 그 전전날의 기억도 함께 떠오르기 마련이다. 서로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전체적으로 만족스러웠다. 이런 소설이 가능하구나 싶기도 했고, 기대했던 흐름도 의외였던 전개도 함께 느끼면서 전체적으로 이색적인 여행지를 다녀온 느낌이다. 나는 이색적인 경험을 좋아한다.
3. 엮어 읽기
'진주의 결말'은 스토리텔링의 사각지대에 대한 이야기다. 어떤 사건이나 결과도 단 하나의 원인과 이유로 시작되지 않는다.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무수히 많은 요인들의 결합의 결과다. 그럼에도 우리는 효율성 또는 편의성을 이유로, 가장 큼지막해 보이는 몇 가지 요인만을 선택적으로 선별하고 그 사이를 이어 붙인다. 이는 '스토리텔링 기법'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의 많은 현상을 설명하는데 흔히 사용된다. 흐름을 엮으면 설득력이 높아질 뿐만 아니라 기억하기도 쉽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스토리텔링이 놓치는 부분들이다. 이야기의 잔여물들. 편집자의 주관과 입맛에 따라 선별되지 못하고 남겨진 재료들. 그러나 때로는 본질이 이 부스러기들에 있다. 그렇게 볼 때, 모든 작품들은 이 스토리텔링의 함정에 결코 예외일 수 없다. '포도밭 묘지'에서는 4명의 인물들이 취업과 텃새, 외모 차별과 학벌주의의 피해자로 안타깝고 쓸쓸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정말 그렇기만 할까? 그들의 인생이 갖는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희망과 열정, 설렘, 두근거림은 단지 작가의 의도에 의해 배제되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들의 인생을 드러난 모습만으로 '간편하게' 해석해서는 안될 것이다. 작품과 실재는 구분되어야 한다.
'홈 파티'와 '일시적 일탈'은 보이지 않는 감정을 읽는 재미의 편차가 컸다. 홈 파티에서 작가는 인물들 간의 보이지 않는 신경전과 눈치 싸움을 날카롭게 포착했다. 글자를 읽었을 뿐인데 그 상황이 눈앞에 선명히 그려졌다. 글자 그대로 '드라마틱'한 연출이 돋보였다. 반면 '일시적 일탈'에서는 그 감정선을 따라가다 머리가 아팠다. 어떻게 따라가야 할지, 아니 이대로 계속 그 감정을 따라가는 것이 문제가 되는 듯했다. 사실 나는 이런 식의 흐름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이미 많은 작품과 장르에서 다뤄진 '현대인의 불안과 혼란'이라는 클리셰에 가까운 주제는 제대로 살리지 못할 경우, 독자를 플롯과 함께 카오스에 빠뜨릴 뿐이다. 얼마나 혼란스러운지를 보여주기 위해 복잡스럽게 펼쳐 보이기만 하는 일은 다소 유행이 지났다는 느낌이다. 이제 사람들은 무질서 그 이후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한다.
문장에는 온도가 있다. 그런 점에서 '아주 환한 날들'과 '우리가 다리를 건널 때'가 비교되었다. 다루는 주제와 소재, 표현 방식 모두에서 하나는 따뜻하고 하나는 차가웠다. 단순히 온도가 높다고 해서 좋은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나, 문제는 그 온도를 '요리'에 적절히 사용했는지 여부이다. 전자가 가스불로 맛있는 찌개를 만들었다면, 후자는 얼음으로 시원한 냉면을 만들어 내는데 실패했다. 차가운 찌개 같았다. 심사평에서는 이러한 자유로운 방식의 장르가 주는 신선함과 차별성에 높은 점수를 주었다고 한다. 물론 어떤 사람은 설명문이나 과학 잡지 같은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