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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깊은 바다 Jun 13. 2024

전지적 귀제비 시점

나는 신안군 자은도에 보금자리를 틀었어. 예로부터 자비롭고 은혜롭다고 해서 자은도(慈恩島)라고 불리었다고 해. 나는 작년 9월에 중국 강남을 거쳐 동남아시아에서 겨울을 보내고, 올 4월에 다시 왔지. 우리 집주인은 여든세 살의 할아버지와 일흔여섯 살의 할머니야. 조상 때부터 처마 밑에 둥지를 고, 편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셨지.


우리는 집을 지을 때 여러 가지를 살펴. 먼저, 주변에 먹잇감이 풍부해야 해. 둥지 짓는 데 필요한 진흙을 구할 수 있는 논밭도 중요하지. 후덕한 사람이 사는 집 최고의 둥지터야. 그래야 구렁이나 황조롱이 같은 천적이 접근을 못 하거든.


우리 식구는 나와 아내, 새끼 네 마리야. 요즘 부쩍 큰 새끼들이 마당에 똥을 쏴놓아서 집주인 보기가 민망할 정도야. 사람들은 이게 보기 싫어서, 우리가 힘들게 지은 집을 부숴버리기도 하거든. 근데, 나이가 들면, 지저분한 것보다 외로운 게 더 싫은가 봐. 생명이 소중하다는 걸 절실히 느끼는 것 같고. 우리 집주인은 우리에게 싫은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작년 둥지도 그대로 두었단다. 그래서 약간만 손보고 다시 살고 있지.


내가 사는 집을 소개할게. 주인집은 벽돌로 지어졌고, 분홍색 강판 지붕이 덮여 있어. 화단에는 20여 년 전에 할아버지가 심어 놓은 무화과나무가 있는데, 녹색 잎을 울창하게 달고 있지. 이제 여름이 되면, 달콤한 무화과가 많이 달릴 거야. 우리는 열매를 탐내는 벌과 하루살이를 잡아먹지. 할머니가 무지하게 싫어하는 파리와 모기도 우리 밥이야. 참새나 비둘기는 사람이 심어 놓은 곡식을 몰래 훔쳐 먹지만, 우리는 농사를 짓는 데 방해되는 해충도 자주 먹어. 1년에 벌레 5만 2천여 마리쯤은 먹어 치운단다. 그래서 예부터 우리를 길조로 여겼나 봐. 그런데 우리는 오해를 사서 미움을 받기도 했단다. 이건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얘기해 줄게.


지난 일요일에는 우리 집에 손님이 네 명이나 놀러 왔어. 마을 경로당에서 우연히 만나서, 우리 집으로 모시고 왔나 봐. 우리 부부는 전깃줄에 앉아서 그 사람들을 경계하며, 무슨 일인지 살폈지. 집주인은 1남 3녀의 자녀를 다 키워 서울로 출가시켰어. 그래서 우리 집은 적막할 때가 많은데, 오랜만에 시끌벅적했단다. 예전에는 우리 섬에 들어오려면 배를 타야 했어. 2019년 길이 7,224m의 천사대교가 놓아지면서 차를 타고도 올 수 있게 됐지. 그래서 주말이면 관광객이 많이 찾아. 이 분들도 목포에서 왔다고 하네.      

<손님을 살피는 귀제비 부부>


일흔한 살을 먹은 할아버지 손님은 목포시 공무원으로 퇴직했는데, 50년 전에 자은면사무소로 첫 발령을 받았대. 할머니의 고향은 도초라는 섬인데, 그 손님과 고향이 같더라고.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서로 알아보더라. 얼마나 반가웠을까! 할머니는 손님에게 봉봉 주스와 사과까지 내주시더라고. 그런데 손님의 사위인 40대 남자가 우리 둥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주인 할아버지에게 이런 제비집은 처음 본다고 말하더라. 할아버지는 우리를 산제비라고 소개했어. 동네마다 우리를 조금씩 다르게 부르긴 해. 명매기, 명내기, 명마구기, 밍열이, 굴(뚝)제비라고 하는데, 대부분은 귀제비라고 부르지.


게다가 우리 집은 시시티브이(CCTV) 위에 지어서 더 신기했을 거야. 인스타나 페이스북에도 올리기 좋아. 가장 안전한 집이라고. 기자들도 그런 기사를 많이 쓰긴 했거든. 물론 나쁜 사람들이 우리 집을 허물지 않으니까 그게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겠지만, 이유는 따로 있어. 장비에서 열이 나니까, 집이 따뜻해지거든. 사람들도 온돌을 좋아하잖아.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보면 될 거야.

<따뜻하고 안전한 귀제비 둥지>


그 아저씨 얼굴 보니 글도 좀 쓰게 생겼던데, 브런치에도 올리지도 모르니, 좀 더 재밌는 얘기를 해줄게. 보통 제비들은 집을 국그릇처럼 짓잖아. 우리 집은 호리병을 반 잘라서 덮어 놓은 것처럼 밀폐형으로 되어있지. 입구도 한 마리 겨우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아. 이건 제비족과도 조금 연관이 있어. 사람들은 우리의 전신 곡선이 멋진 데다가 빠른 속도로 날아다니니까 80년대 춤 선생을 제비족이라고 불렀잖아. 바람둥이로도 통했지. 우리도 작은 입구로 기어 들어가서 새끼에게 밥을 주고 나와야 하니까 엄청 불편해. 우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패륜을 저지르는, 아니 이기적 유전자를 지닌 바람둥이 수컷 제비 놈들 때문이지. 가끔 내가 다른 일을 볼 때, 집도 없는 한량 수컷들이 날아와서는 암컷과 짝짓기를 하고 도망가 버리거든. 이렇게 되면 암컷이 낳은 알 절반이 타 수컷 정자에 수정된 알이 되는 거야. 그래서 다른 수컷이 암컷에 접근할 수 있는 거리를 늘리고, 암컷이 있는 것도 숨기려고 이렇게 하는 거야


우리는 오해 때문에 수난을 당하기도 했어. 제비는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좋아하면서, 우리엄청나게 싫어했거든. 예전에는 재수 없다고 둥지를 다 부숴버리기도 했어. 명나라 말에는 우리가 궁궐에 집을 무지하게 많이 지었는데, 쫓을수록 더 많이 몰렸고, 결국 나라가 멸망했는데, 그걸 우리에게 뒤집어씌었지. 게다가 집 모양도 무덤을 닮았다고 우겼. 우리는 제비와 외모도 조금은 다르고, 둥지 근처의 제비를 쫓아내서 "귀신 붙은 제비"라고 했어. 그래서 이름이 귀제비가 된 거야.


우리는 이제 정말 보기 힘든 귀한 제비가 됐어. 우리는 제비 100마리당 1마리 정도 비율로 존재해. 이제 그 수도 줄어서 멸종위기 관심 대상으로 지정됐지. 농작물에 농약을 많이 뿌리다 보니, 약물에 중독되기도 하고, 그래서 번식도 잘 안. 처마가 없는 집들이 늘어나면서 우리가 둥지를 틀 수 있는 공간도 많이 줄었지. 시골에 빈집이 많이 늘어나는 것도 고민스러워. 우리 주인님도 건강하게 오래 사셔야 할 텐데.


그래도, 우리 신안군에 사는 귀제비들은 정말 행복하단다. 대한민국에 이보다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이 없을 거야. 우리를 사랑해 주는 마음 따뜻한 사람들도 많이 살고. 그래서인지 2023년도에는 전라남도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늘었네. 신안군수님은 신안을 '살고 싶고, 돌아오고 싶은 섬'으로 만들고 싶데. 우리들에게도 정말 기쁜 소식이지. 그래야 우리도 둥지를 틀 공간이 많아 질 테니까. 데 군수님께 하나 더 부탁하자면 귀제비도 살고 싶고, 돌아오고 싶은 섬으로 만들어 줬으면 좋겠어. '사람과 자연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섬' 정말 멋지지 않아.


이제 우리를 좀 이해할 수 있겠지. 오해는 잘 알지 못해서 생기는 거래. 이제 귀신 붙은 제비가 아니라 정말 귀중한 제비가 되고 싶어. 우리가 떼를 지어 파란 하늘을 는 걸 상상해 봐. 멋지지 않아! 그러면 우리 섬을 찾는 관광객이나, 주민들의 얼굴에도 웃음꽃이 필 거야. 긴 글 읽어 줘서 고맙고, 시간 나면 우리 자은도에 놀러 와. 우리 튼튼하고 멋진 집과 날렵하게 하늘을 나는 가족을 보여줄게.

<자은도 해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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