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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린다 흔들려

내가 결혼이라니, 내가 출산이라니

by 당근

친구M과 여행을 갔다. “다들 결혼은 안 해도 되니 애는 낳으라더라.” M은 다른 친구랑 같은 얘길 하냐며 왜 결혼한 사람들이 다 똑같이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이제 고작 1년도 안된 아가를 키우고 있는 내가 같잖은, (귀여운..이라고 혼자 생각함) 훈수를 두고 있으니 나도 기가 찬다. 비혼도 아니고 ‘절대비혼’을 외치던 내가. 이래서 사람일은 모른다고-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은 OECD국 중 출산율 최저를 기록하는 대한민국의 어느 여성들과 비슷하겠으나, 좀 더 개인적인 이유를 들자면 ‘외롭지 않아서‘ 이었던 것 같다. ’굳이 결혼?‘ 이었지만, ’해볼걸' 보다는 ’내가 그것까지 했다니!‘의 경험이 더 의미 있을 것 같았다.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여성들이 늘어났는지 2025년의 출산율은 2024년 대비 6.9% 증가하며 최근 수십 년 내 최고 성장을 보였다는 걸 보니 우주의 기운이 대한민국의 출산을 돕고 있는 것일까.


‘대리님은 로또가 당첨돼도 일 하실 것 같아요‘ 라는 소리를 듣도록 워커홀릭 이었던 내가 일을 멈추니 정체성이 흔들린다.

아이가 우는 것, 잠을 자지 않는 것도 예상보다 힘들지 않다. 아가니까 우는 건 당연하지. 얘가 나한테 “어머니 이제 자고 싶습니다.” 할 순 없으니까. 우는 것도 언젠간 멈추고 잠을 자지 않는 것도 언젠간 잔다. 필요한 건 엄마의 인내심과 이 퀘스트를 어떻게 깨나갈까 하는 정신승리뿐이다.


하지만 일을 멈춘 지금, 나는 우울과 어색함 사이에 놓여 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른다면 이 감정과 정신이 그대로 굳어 버릴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도 든다. 휴직 중 요청을 받아서 고등학교 강의를 나간 적이 있다. 귀엽지만 말 드릅게 안 듣는 고등학생들 대상으로 6시간 동안 서서 강의를 해야 해서 힘들었고, 업무가 종료된 후 발목이 아파서 물리치료를 받긴 했으나 즐거웠다. 수업이 끝난 후 학생들에게 나도 모르게 오늘 고마웠다고 인사했다. 뭐가 고맙다고? 학생둥절 했을 것이다. 일을 하니 행복했다. 에너지가 충전됐다. 역시 나는 일을 해야 되는 사람인가 보다.

복직이 안정적인 직장인이라면 사정이 좀 다를 순 있겠으나 나는 복직을 하면 타 지역 발령이 나기 때문에 사실상 복직미정의 상태이고 이는 곧 마흔인 나를 취준생의 불안한 마음으로 돌아가게 한다.

이러다 경력이 단절되는 것이겠구나, 혹은 경력이 퇴화되거나 감소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경력단절보단 경력보유라는 단어로 대체한다고 하지만, 사실상 나는 이렇게 빨리 흘러가는 시대 속에서 1년 넘게 멈춰 버린 생산성이 떨어지는 근로자임도 부정할 수 없다.

15년간 쉬지 않고 달리다 멈추니 앞으로 고꾸라질 것 같다.


얼마 전 카페에서 아주머니들이 하는 얘길 들었다. 며느리가 인서울의 좋은 대학을 나왔지만 아이들 키우느라 좋은 기업에 들어갈 생각은 안 하고 아들에게만 의지 한다는, 일을 그만 둔지 10년이 다 된 여자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평가였다. 고작 1년을 휴직한 나도 조직생활과 현업의 지식에서 멀어짐을 느끼는데 말이다.


가정주부도 직업으로 분류된다. 단지‘보이지 않는 노동’ 일뿐. 가사나 육아, 감정노동 등이 공식적인 GDP에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무가치한 일로 보일 수 있다. 말 그대로 외부의 노동에 맡기면 큰 비용이 들지만, 내가 하면 임금을 받지 않으니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출퇴근과 워라밸이 없다는 것이다. 24시간 스텐바이, 그것도 불규칙적인 ’콜‘을 받아야 하는 일이다.

또한, 근래에는 ‘기획육아’라는 말이 떠오르고 있다. 말 그대로 육아에 보이지 않는 ‘기획력’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목표설정, 현황분석, 자원계획, 리스크관리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기록, 기억, 보수, 판단 등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가 쓰인다. 매주마다 사업기획을 짜는 것 같달 까.

한국노동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육아, 교육, 가사, 간병 등의 업무를 전담하는 전업주부 1명의 연간 가사노동을 외부 인건비로 환산할 경우 약 3000만 ~ 4000만 원의 수준에 달한다고 한다. 물론 그러하니 누군가가 나에게 3000만 원 ~ 4000만 원 수준의 임금을 지급하라는 것은 아니다. 출산과 육아, 가사 업무가 ’집에서 놀고먹는 일‘ 이라든지 ’남편의 돈을 편취하여 기생하는 일‘이라는 사회적인 시선이 조금은 개선되길 바랄 뿐이다. 해보니 그렇다. 몰랐던 것들이 보인다.


그렇다면 남편들은 어떠할까. 아내가 가사노동을 할 동안 남편들도 외부에서 피땀 흘려 일을 하고 있다. 특히 대한민국의 전통적인 남성의 성역할 등의 부담으로 가계생계에 대한 책임 압박이나 주거 및 교육비에 대한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아내들이 갑자기 여성에서 엄마로, 아내로의 역할에 놓인 것처럼 남편들도 남성에서 아빠, 남편, 사회인으로서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이 올 수 있다.

더불어 다소 가정활동에 참여도가 낮은 기성세대와 다르게 양육능력에 대한 자신감이나 지식, 기술이 없는 상태에서 가정활동참여의 요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상대적으로 예전보다 가사분담에 대한 인식과 실제 행동이 더 평등하게 바뀌어가고 있는 것이다.

통계청의 자료에 따르면 한국 남성의 하루 평균 가사 노동의 시간은 약 45분으로 알려져 있다. OECD국가의 평균이 139분에 달하는 것과 비교하면 30%의 수준이지만 우리 아버지대의 가장의 모습을 생각하면 유의미한 시간이라 판단된다.

또한 동 청의 2024년 조사에 의하면 30대 미혼남성의 63%가 ‘경제적 부담’을 가장 큰 이유로 결혼을 기피하고 있다. 또한 자기개발과 취미 등의 제한 등도 결혼을 기피하는 큰 이유가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가정생활을 하고 있는 남편들은 경제적 부담과 자유상실의 슬픔이 있지만, 가정을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출산과 육아, 경력단절에 대한 여성의 부담, 경제적 부담, 자유 상실에 대한 남성의 부담이 필연적인 ‘결혼’을 해야 하는 것일까. 세상살이에 정답은 없지만 해보시라 말하고 싶다. 결혼을 하고 안하고의 차이도 있겠지만, 행복할 사람은 행복하고 우울할 사람은 우울하다. 어떤 상황에 놓여 있든 그 기쁨과 슬픔, 힘듦을 받아들이고 나누는 자세는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결혼이 모두에게 꼭 ‘손해 보는 일’이나 ‘힘든 일’은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이 싱글일 때보다 만족스럽다 말할 순 없지만 그 속에서 늦은 시간 오징어를 구워 먹으며 소소한 이야길 하는 나와 남편이 있다.

어쨌거나 나는 결혼과 출산을 하며 잠시 일을 손에서 놓았더니 출근하고 싶다. 출근 마렵다.

아이고, 우리 공주님 깼네. 일단 기저귀 갈아주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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