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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희 Dec 27. 2022

단칸방과 아파트 사이

얼마 전에 지인의 집에 초대를 받아 다녀왔다. 서울 중심에서 떨어진 강북 끝자락의 어느 동네.


처음 가보는 동네 풍경은 항상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 동네는 대로에서 언덕길이 길게 펼쳐져 있는데 그 길을 사이에 두고 오래된 2층 상가 건물이 늘어져 있다. 1층에는 가벼운 식당, 고요한 무인 슈퍼, 오래된 세탁소, 빛바랜 옷가게 등이 있다. 2층은 주거용 공간인데 계단이나 창틀, 벽체 등 외관이 꽤나 심란하다.


 간단히 표현하자면 시골 읍내 같고 전반적으로 삶의 무게가 무거워 보이는 동네다. 오래된 빌라와 다세대 주택이 대부분이고 언덕길도 경사가 녹록지 않다.


밝은 성격의 지인인데 조금 험란한 동네에 살고 있다는 데에 약간 놀랐다. 물론 내색하지는 않았다.


다행히 지인의 집은 20년 정도 된 무난한 30평 아파트인데 크게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집 내부는 수리를 하지는 않았지만 화이트 톤으로 도배하여 깔끔하였다.


지인 내외가 밝은 얼굴로 우리 가족을 맞이한다. 아이들은 서로 만나자마자 인사를 하더니 금세 장난감을 집어 들고 후다닥 자기들 세상으로 놀러 갔다. 덕분에 부모들은 오랜만에 어른들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지인은 현재의 집에 만족스러워했다. 이전 집은 빌라였는데 좁은 데다 무엇보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힘들었다 한다. 그래서 초대하기가 민망했는데 지금은 아파트에 평수도 커져서 누구든 초대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이사하고 처음 초대한 가족이 우리라는 이야기를 말끝에 수줍게 덧붙이며 활짝 웃는다.


사실 우리 집에 몇 번을 초대했어도 한 번도 답례 초대를 하지 않아 조금 의아했는데 그에게는 그간 묵혔던 마음속 빚이었나 보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그 빚이 청산되었음이 느껴져 나도 홀가분해졌다.


문득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6학년때까지 다섯 식구가 단칸방에서 살았다. 3학년 때 작은 방을 하나 더 얻어서 방 2개가 되긴 했지만 3평 정도 되는 조그만 방은 3남매가 살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했다. 게다가 화장실도 재래식이고 샤워실이 없어 집안 빨래터에서 수도를 틀고 물을 받아 샤워하곤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꽤나 괴로운 일상이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아파트 생활을 시작했다. 현대식 쾌적함과 아파트의 널찍한 단지 공간은 큰 기쁨이었다. 거기에 24평에 불과했지만 우리 집이 다른 동보다 0.3평 정도 더 커서 로열동이라는 어머니의 말에 한 달 동안 내 어깨뽕이 내려가지 않았다.


물론 나는 여전히 형과 한방 신세를 면치 못했고, 24평 집도 5인 가족이 살기에는 역시나 넉넉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만족도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었다.


스무 살이 넘어서 서울로 대학을 가게 되면서 겨우 내 자취방이 생겼고, 서른 살이 넘어서는 내 집이 생겼다.


나와 우리 집은 시간이 흐를수록 형편이 나아졌고 비록 절대적으로 윤택하지 않았지만 집안에 활력과 긍정이 흘렀다.  


가난이 두려운 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자리에 머무르게 될 거라는 불안함 때문이다. 어릴 적 단칸방에 다섯 식구가 살면서도 우리 집이 행복했던 것은 좀 더 나아지고 있다는 점과 공부를 잘했던 우리 남매들로 인해 나중에는 잘살게 될 거라는 희망 때문이었다.


우리는 '가난 = 불행'으로 보곤한다. 사회의 시선도 비슷하다. 단칸방, 옥탑방, 쪽방에 사는 사람들을 안쓰러워한다. 그런데 그들이 동정받아야할만큼 일상이 불행할까. 어쩌면 우리의 겉넘은 시선은 아닐까.


나아지는 삶은 불행하지 않다. 희망과 목표가 있는 고단은 견딜만하다.


2017년 드라마 "쌈, 마이웨이"의 가난한 청춘들이 그랬던것처럼 말이다

  

새해는 반발짝이라도 나아지는 삶이 되길..





'쌈, 마이웨이(2017)' 촬영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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