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사랑하는 음식 돈까스에 대해 얘기하자면 몇 시간이고 부족할 지도 모른다. 커틀렛이기도 하고 돈카츠이기도 한 이 음식을 나는 '돈까스'라고만 부른다.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질문 받으면 나는 늘 주저 없이 "돈까스!"라 대답한다.
고급 뷔페에 가서도 돈까스만 찾는 나의 이런 취향을 아버지는 '저렴하다'고 하기도 했다. 아버지의 말마따나, 저렴한 취향을 가졌으니 저렴한 돈까스에 대해 먼저 얘기해보려 한다. 학교 앞 분식점에서 팔던 피카츄 모양의 돈까스. 출처 모를 육고기를 마구 다져 피카츄 모양으로 빚어 놓은 그 튀김도 돈까스라 할 수 있을 지 모르겠지만 내가 기억하는 한 그것은 나의 첫 돈까스였다. 시큼하고 달달한 케첩 소스가 듬뿍 발라진 그 피카츄는 단 세 입이면 사라진다. 초등학생 땐 오백 원이었고, 그 후엔 천 원까지도 올랐던 것 같다. 그 이후엔 직접 사 먹은 일이 없다. 컵 떡볶이를 사 먹으려 가져온 500원짜리 동전 하나를 나는 늘 그 피카츄 돈까스를 먹는 데에 써버리곤 했다.
삼천 오백 원짜리 돈까스와 삼만 오천 원짜리 돈카츠
대학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학식 메뉴는 다름 아닌 '반반까스'였다. 머스터드 소스가 발린 치킨까스 한 덩이와 돈까스 소스가 발린 등심 돈까스 한 덩이가 함께 나오는 메뉴였다. 이천 오백 원짜리 백반 메뉴 사이에서 삼천 오백 원짜리 반반까스는 나름의 특식이었다. 매일 메뉴가 바뀌었는데, 어쩌다 반반까스가 나오는 날이면 난 꼭 그 반반까스를 먹었다. 밥을 한 숟가락 뜨고, 그 위에 치킨까스나 돈까스 한 조각을 올린 뒤 케요네즈 소스가 뿌려진 양배추 샐러드 한 젓가락까지 올려 한 입에 먹으면 그야말로 천국의 맛이었다.
가장 자주 먹었던 저렴한 반반까스와 달리, 내가 먹어본 돈까스 중 가장 비싼 돈까스는 도쿄 여행 중 먹은 '마이센'의 돈까스였다. 당시 한 유튜버의 마이센 돈까스 먹방을 보고 여행을 결정했을 정도니, 일주일 간의 나 홀로 도쿄 여행 중 가장 기대한 코스였다. 이왕이면 제일 좋은 돈까스를 맛보고 싶어서 무려 삼천 오백 엔의 '흑돼지 등심 돈카츠'를 주문했다. 두꺼운 고기에 적당히 바삭한 겉 튀김, 고슬고슬 윤기 흐르는 밥과 산더미처럼 쌓아준 양배추 샐러드의 조화가 좋았다. 빈 그릇을 캐치하고 양배추 샐러드와 장국을 알아서 리필해 주던 친절함까지. 가격에 맞는 맛과 서비스에 감동했다.
부른 배를 두드리며 숙소로 향하는 길, 분명 만족스러운 식사였음에도 이상하게 반반까스가 생각나던 것은 왜일까. 고소하고 담백한 정통 돈카츠를 맛봤더니, 자극적인 소스와 입천장이 까질 만큼 얇고 바삭한 튀김에 익숙해져 있던 내 혀가 머릿속으로 반반까스의 맛을 불러들였다. 이제 나는 학식 돈까스와 일본의 정통 돈카츠를 모두 먹어본 사람이라는 이상한 자부심이 생겼다.
나의 여름의 맛, 남산 돈까스와 산채 비빔밥
'여름'하면 생각나는 음식. 누군가에겐 냉면, 누군가에겐 삼계탕이겠지만 나에겐 남산 케이블카 입구 언저리에 있는 '산채집'의 남산 돈까스와 산채 비빔밥이다. 올해로 꼬박 11년을 만난 애인과 대학 시절 가장 자주 찾았던 남산 돈까스집이 바로 산채집. 오로지 돈까스만 먹고 싶었던 나와 달리 그는 돈까스도 좋아하고 비빔밥도 좋아하고, 파전도 좋아하는 먹돌이였기에 다른 가게들보다 메뉴가 다양한 산채집을 찾았다. 무성한 초록의 나뭇잎들이 하늘을 가릴 만큼 화창한 여름날, 동대입구역에서부터 굽이굽이 이어지는 남산 산책길을 열심히 오르다 돈까스 집들이 즐비한 거리에 당도하면 어느새 이마에서부터 흐른 땀이 한가득이었다.
우리는 늘 돈까스, 산채 비빔밥, 부추전으로 이루어진 2인 세트에 막걸리를 한 병 시켰다. 에어컨 바람을 쐬며 들이키는 막걸리 한 잔은 그야말로 꿀맛. 남산 돈까스는 소스에 절여져 눅눅한 옛날 돈까스 스타일이었는데, 나물이 한 가득인 산채 비빔밥과 은근히 조화가 좋았다. 튀김에 가까운 부추전의 바삭함 역시 일품이었다.
이후 나는 회사 동료들과도 산채집에 가고, 고향에서 놀러 온 가족들과도 산채집에 갔다. 늘 2인 세트만 먹던 나는 가족들과 처음 4인 세트를 먹어 보았는데, 처음 먹어본 곁들임 보쌈과 도토리묵무침 역시 훌륭했다는 후문. 하지만 나의 '최애'는 언제나 소스에 푹 절여진 부드럽고 눅눅한 남산 돈까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