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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익 Sep 24. 2024

추석 소동 1.

학교 + 자취방 입주에 정신없던 중

추석 때 우리 집으로 오시겠다는

 시모님 전화를 받았다.

이제 껏 ,

우리가 어머님댁이 있는

춘천으로 가서 하루만 자고 왔는데

별 생각이 없던 나는 매우 당황하였다



학교 다니느라 집안 꼴;도 어수선하고 ;

어머니 드실 음식 준비도 해야 하고..

무엇보다  

어머니에 대한 감정이 그다지 안 좋기 때문에

사흘을 함께 있을 자신이 없었다..


시집살이야 주관적인 것이라

어디까지나 내 입장이라고 말해둔다.


결혼하고 6년간 어머니와  살면서

나는 그분에게

종교 가스라이팅과

미세한 언어폭력?을 수시로 당했다.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신데

남편과 시누이 둘 다  성인이 되어

무교로 돌아선 것에 굉장한 실망을 하셨고

며느리인 나도  

무교 혹은 불교에 가까운 종교관을 가진 것을

한탄하셨다.


결혼 전에 남편에게 종교 부분은

단단히 알려드리라 일렀기에

별 문제없을 줄 알았는데

실상은 달랐다.


같이 살다 보니

어머니는 수시로 나에게

교회에 갈 것을 권유하셨다

그분은 말끝마다

내가 너를 사랑하니까,

너에게 좋으니까.라는 말씀을 하셨지만


결혼후

남편과 나를 눈에 띄게 차별하시는 걸

자주 겪은 나는


그분의 전도가 종교라는 이름으로

타자의 영혼을 접수하려는

억압과 폭력으로 느껴질 뿐이었다.


남편은

우리가 싫다는데 왜 그러느냐고 했지만

뭔가 기어들어가는 소리 정도여서...

강한 성격의 어머니는 그 말에도 굴하지 않으셨고

그럼 딱 한 번만 당신이 다니는 교회에

둘이 결혼 인사를 해달라고 하셨다.


그것까지 물리칠 수는 없는 노릇이어서

난생처음 교회 단상 위에 올라가

천명이 넘는 신도들께

한복을 입고 인사를 드리게 되었다.


목사님이 우리를 축복하시고

후에 신도들이 오셔서

우리도 당연히 교회에 나오는 걸로 말씀하실 때..

그 당혹감을 뭐라고 말할 수 없지만ㅠ

그걸로 며느리의 도리는 다 했다고 생각했다.


종교 권유 말고는

나름 어머니께 잘해드리려 노력을 했다.

심심하실까 봐 말동무도 하루에 몇 시간씩 해드리고

(어머니는 수다를 정말 좋아하셨다...;)

 내 퇴직금 정산한 돈으로

한 달간 유럽 여행도 보내드리고.

(솔직히 지금은 왜 그런 오버슈팅을 했는지 모르겠다.. 애정결핍이었던 듯.;)

옷이며 화장품도

내 것은 싸구려를 써도(

화장을 거의 안 해서 필요도 없긴 했다;)

꼭 백화점 제품으로  해드렸다.

그런 것이 효도인지는 모르겠지만..


남편이 고등학교때 아버님께서 병환으로 돌아가시고

십여 년 자식들 위해 고생을 많이 하셨다는 말을

들었기에

정말 잘해드리고 싶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종교 요구는 더 강해졌다.

나는 남편에게 더 강하게 말씀드리라고 했지만

남편은 더 이상 말해봤자라며

그냥 못 들은 체하라는 말뿐

적극적인 해결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 이 부분이 남편의 가장 큰 잘못이라고

아직도  나는 생각한다.)


아이를 낳고 일 년여 휴직 중이었기에

종일 어머니와 있다 보면

수시로 종교에 대한 말씀, 가스라이팅이 들어왔다.


하다못해 티브이 드라마를 봐도

성경에 나오는 인물을 인용하시고

본인과 하나님과의 관계성을 강조하시며

그렇게 네가 쉽게 거부할 수 있는 믿음이 아니다.

교회 신도분들이 수시로 내 이야기를 하신다

 (나오지 않는 것에 대한..)며 나를 압박하셨다.

내 대학동기들 중에

목회자가 된 친구도 있고  

신앙심 깊은  좋은 친구들이 있어서

기독교에 대한 감정이 좋았었는데..

나는 어느새 기독교 일반을 적대시하게 되었다..;;


그러다 어느 날

교회 신도분들이 또 내 이야기를 하시며

왜 나오지 않느냐고 하셨다는 말씀에

나는 갑자기 폭발을 하고 말았다.

산후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고 있던 중이라

감정이 통제가 되지 않았다.


제가 왜 모르는 분들한테

이러쿵저러쿵 말을 들어야 하냐고

당신 자식들부터 전도 말씀하시라고

왜 애꿎은  나한테 그러시냐고

정말 미칠 것 같다고 울부짖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전도 말씀은 안 하셨다.

하지만 다른 일로 수시로 트집을 잡으셨다.;

그렇게 6년을 함께 살면서

어머니와 나는

서로가 서로에게

참고 있다는 생각?을 깔고 살았던 것 같다.


그리고  6년 후

어머니가 복지관에서 만난 어르신과  

재혼을 하셔서 분가를 하셨는데

알고 보니 상대방 남자분은

법명까지 있는 독실한 불교신자셨다.;

그렇게 강조하시던

당신의 신앙심은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

그저   나를 괴롭히시려는 명분일 뿐이었나

하는 생각에 어이가 없었고

증오심마저 일어나게 되었다..


그 뒤로 20여 년이 흐르는 동안

어쩌다 오랜 시간을 있게 되면

어머니는 꼭 옛날이야기를 꺼내시면서

묘하게 나를 비꼬시고

그러면 내 기분은

그 시절 어머니께 받았던

스트레스 상태로 돌아가기에

나 역시 어머니가 불교신자분과 재혼한 것을 두고

왜 나에겐 그러셨냐고 성토? 하게 되었다.

그래서 되도록 오랜 시간 있는 것을 피했었는데

이번 추석에 기어코 사달이 나고 말았다.





2부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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