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핼러윈에 진심인 사람들

캐나다 생존기_04

by Dandan한 B


핼러윈에 진심인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아기자기한 장식들이 한 달 전부터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집 앞에 놓여있는 작은 호박들, 잔디밭에 꾸며진 묘비 장식들, 건물 꼭대기부터 이어지는 거대한 거미줄이 그랬다.



그리고 놀라운 건 아이의 학교에서 온 메일이었다. 핼러윈에 대해 알고 있는지, 혹시 잘 알지 못한다면 참고할만한 영상을 첨부하니 확인해 보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핼러윈에는 커스텀을 입고 등교하며 마스크나 무기는 가져올 수 없다고 쓰여있었다.

‘한국 어린이집에서 그러했듯, 핼러윈에 걸맞은 옷을 입고 사진을 찍거나 하는 식의 이벤트가 있으려나? 어쨌든 핼러윈 의상을 입고 오라는 메일을 할 정도면 학교에서도 아이들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다. 핼러윈 일주일 전에 했던 펌킨칼빙만으로도 핼러윈에 어울리는 재미있는 활동이었다고 생각하며, 좋은 추억으로 남게 될 핼러윈 준비과정이 내심 새롭고 재밌었다.



그래서 할로윈 코스튬을 준비할 때도 크게 기대하는 대신, 추워질 날씨에 대비해 비교적(?) 따뜻한 옷으로 준비했는다. 물론 아이는 케데헌 의상을 입고 싶어 했으나 인기 절정이었던 케데헌 의상은 핼러윈이 지나고 11월에나 배송이 가능하다고 쓰여 있어서 엄두도 내지 못했기에 차선으로 실용성을 선택한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대망의 핼로윈데이. 학교에 점심시간 봉사를 하러 가보니, 이미 수많은 데몬헌터즈와 해리포터와, 마녀들이 있었다. 캔터키 할아버지도, 미니언즈들도 있었는데 킨더 그룹에는 단연 엘사가 가장 많았다. 얼마나 귀여운지, 걸어 다니는 인형이 있다면 딱 그 모습일 것 같았다.


코스튬을 입는 건 아이들뿐이 아니었다. 아이의 반 담임 선생님은 스스로 뜨개실뭉치로 변신했는데, 직접 의상을 만들고 등에 커다란 대마늘까지 꽂고 다녔다. 피자 배달 봉사를 하러 온 엄마들도 호박 귀걸이를 착용하거나, 마녀모자를 쓰고 왔다. 고스트헌터 옷을 입고 온 엄마도 있었는데, 핼러윈에 진심인 사람들 사이에서 오히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내 모습이 오히려 더 튀는 것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이쯤 되니 코스튬을 보는 재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상상할 수 있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때까지도, 과연 저녁에 아이들이 ‘Tric or treat’를 얼마나 할지 반신반의하고 있었다. 이번 핼러윈엔 이브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고, 그 덕에 꽤 쌀쌀했기에 아이들이 밖에서 그것도 밤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엄마가 말했다. ‘So much fun’일 거라고! 비가 와서 덜할 순 있겠지만, 정말이라고. 진짜 아무 집이나 가서 노크하면 되는 거냐고 물었더니, 세상에나. 불 켜진 집은 어디든 가도 된단다. 다만 불이 꺼진 집은 패스하라고 일러준다. 나는 그 길로 슈퍼에 가서 롤리팝 2봉지와 낱개 포장된 킨터초콜릿 2봉지, 커다란 호박 막대 초콜릿 6개를 샀다. 가방 한가득 산 캔디와 초콜릿이 내심 너무 많은 게 아닌가 걱정하면서. 물론 내 앞에 다른 사람들은 마트 바구니가 가득 찰 정도로 캔디를 사가는 모습을 보면서도 저렇게나 많이 필요할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 마트 바구니를 채울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 꽤나 많이 구매했다고 생각하며, 혹시나 남거든 남은 겨울 동안 아이에게 간식으로 줘야겠다는 생각까지 했다.


그렇게 여전히 조금은 의심하는 마음으로, 아이들이 저녁에 얼마나 나오려나 하면서도 혹시 몰라 저녁을 조금 일찍 먹기로 했다. 5시쯤 저녁을 준비해 20분쯤 먹기 시작했는데, 5시 30분이 넘자 ‘Tric or Treat’을 하는 아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기들도 나가야 한다며 호들갑을 떨기 시작했고, 우리도 덩달아 마음이 급해서 부랴부랴 먹던 저녁을 치우고 아이들을 준비시켰다. 그리고 창문을 살짝 올려보니 맞은편 집 앞에 놓인 호박에 불이 켜져 있는 게 아닌가?! 아이들은 그 길로 집을 나가 맞은편 집으로 뛰어갔다. 첫 번째 ‘Tric or treat’이었다. 마침내 맞은편 집 문이 열리고 나는 바로 깨달았다. ’아, 이 사람들 진짜 진짜! 진심이다.’

맞은편 집 사람들은 젊잖은 중년의 부부다. 아이들도 이미 어느 정도 성장했고, 우리가 처음 이사 왔을 때 반갑게 인사를 건네며 자기들도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그 학교를 졸업했노라고 말해주던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그런 점잖고 따뜻한 중년의 부부가 한 마리의 커다란 백곰과 사자로 변신해 있었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나와 아이들을 맞으며 사탕을 한 움큼씩 담아주었다. 세상에나 백곰과 사자라니. 그냥 옷에 백곰과 사자가 그려진 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입고 있었던 것과 같이 몸 전체를 덮고, 머리까지 뒤집어써야 하는, 놀이동산에서나 마주칠법한 사자와 곰이었다. 집안에서 사자와 곰이 나올 거라곤 상상하지 못했기에 그 모습은 정말이지 충격 그 자체였다. (물론, 긍정적으로)


그리고 우리 집으로도 아이들의 방문이 이어졌다. 내가 준비한 사탕은 40분 만에 동이 났다. 난 도대체 뭘 걱정한 건가. 남으면 아이들 간식으로 줘야겠다고? 남기는. 사탕이 떨어졌단 소리에 실망하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얼굴을 보는 순간, 사탕을 더 과감하게 담지 못한 나 자신이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 모른다. 왜 바구니를 채우지 않고 안일하게 생각했던 걸까. 결국엔 우리 집 아이들이 다른 집에서 받아온 사탕과 캔디 중에 중복되는 것들을 추리고 도시락을 위해 사뒀던 호박쿠키까지 지퍼백에 나눠 담아 커다란 바구니 하나를 다시 채웠다. 그리고, 집 앞에 내놓고 나도 아이들을 따라나섰다. 후에 생각한 건데, 이때 나가지 않았다면 크게 후회할뻔했다.


거리는 그야말로 축제였다. 이곳사람들 정말 이렇게나 진심이구나 싶었다. 왜 양인들이 핼러윈에 푹 빠져있는지, 일 년에 한 번 이 날만 기다린다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알 것 같았다.

손이 꽁꽁 얼어붙을 정도로 돌아다녔다. 3시간 남짓 동네를 돌면서 수많은 천사와 죄수와 악마와 괴물과 동물을 만났다. 하나같이 심쿵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바로 알게 됐다. 나도 이제 진짜 진심이 돼버렸단 걸. 내년 핼러윈이 기다려진다. 나도 이들처럼 1년 내 이날이 다시 오기를 기다라게 될 것만 같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