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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베 Aug 06. 2018

사막에서 68개월

03 Hola! Familia!

Hola, Familia!


우리 가족은 보금자리를 얻을 동안 잠시 이모가 사는 집에서 머물렀다.  


우리 이모는 20대 초반에 한국을 떠나 30년이 넘은 지금까지 이 곳에 살고 있다. 오레건 주(州) 포틀랜드에서 시작해서 투산에 정착하기까지 미국에 대해 모르는 게 없는 이민 선배라고 할까. 


4남매 중 막내인 우리 엄마 덕에 난 이모가 많다. 이따금씩 둘째 이모는 '미국 이모야~! 잘 지내고 있어~?'라는 특유의 세련되고 앙칼진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오곤 했다. 


이모는 내가 아주 어릴 적에 한국을 떠났기 때문에 자주 만날 기회가 없었던 건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나와 동생은 이모에 대한 어색한 거리감을 표현하듯 늘 '미국 이모'라고 불렀고 이제는 그녀의 생활 속으로 들어와 사막 속 68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그녀가 내 인생에 엄청난 존재의 의미를 주는 사람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이모부히스패닉계 어머니와 이탈리아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데, 어릴 때 욕심도 많고 고집도 아주 아이였다고 한다. 


이모부는 멕시코에서 태어나고 자라 10살 때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고 한다. 이방인이지만 반드시 이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성공하겠다는 의지 하나로 눈물 콧물을 빼내가며 독하게 영어를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은 본인의 뜻을 이루어 사회에서 아주 권위적이고 힘이 센 일을 하고 있다. 


나는, 아니 우리 가족은 이모부에게 고마운 것이 참 많은 사람이다.

우리 가족과의 동거를 환영으로 받아주었던 그때, 가족이란 이름으로 시작해서 부딪혔던 크고 작은 사건들, 행복하고 인상 깊었던 추억들 모두.


이모부에게 (특히나 사적인 공간을 중시하는 외국인에게) 한 지붕 아래 두 가족의 동거를 받아들이기가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어쨌든 난 이모부에게 여전히 미안한 것이 많고, 여전히 고마운 것이 많은 사람이다. 


 

사촌 언니와 오빠는 성인이 된 후 독립하여 결혼을 하고 현재는 시애틀에 살고 있다. 보통 미국 가정환경을 보면 성인이 된 자녀들이 독립하는 것은 이곳에서 자연스럽고 익숙한 단계이다. 


한국과 미국의 피가 반반씩 섞여 혼혈인 언니와 오빠는 한국을 자주 접하지 못한 환경에 한국말 구사가 불가능한 게 아쉬웠다. 하지만 뭐 어때! 오히려 영어를 완벽하게 배울 기회지!


마지막으로 맥스는 미국에 있는 동안 내가 가장 사랑하던 반려견이다.

맥스는 큰 덩치에 5~6세쯤 되어 보이지만 실제로는 1년밖에 안된 아가였다. 


얼마나 착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인지 던 지 우리는 '맥스는 도둑이 들어와도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 거야'라고 농담을 하곤 했다. 


또 좋아하는 인형을 물어뜯고 있을 때 이모부가 뺏으려 하면 뺏기지 않으려 이빨을 꽉 물지만 신기하게도 어린 아이나 여자가 뺏으려 하면 순순히 인형을 포기하거나 대신 손등을 혀로 핥아주었다. 


약자에게 약하고 강자에게 강한 멋진 우리 맥스!!




고온건조, 태양 한번 참 뜨겁다!

도착했던 첫날은 가족들과의 인사와 정신없는 짐 풀기로 하루가 지났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아빠와 동생들과 함께 산책을 하러 나갔다. 주택 하나하나 구경하며 지나가니 새삼 여기도 미국이 맞는구나 싶었다. 


1) 주택


한국보다 차도와 인도가 2배 이상 넓었고, 고개만 돌려도 보이는 높고 낮은 선인장 투성이었다. 투산의 주택들은 참 특이하게도 대부분 울퉁불퉁 입자가 굵은 벽돌 위에 페인트를 발라놓은 듯했다. 

독립 후 1년간 살았던 주택


또 내가 상상했던 주택들과 다르게 집 앞, 뒷마당에 흔히 볼 수 있는 초록 초록한 잔디보다 붉은 벽돌색의 크고 작은 돌멩이가 가득했다. 간혹 잔디가 깔린 마당을 보았지만 워낙 강한 애리조나의 태양 때문에 자라기가 쉽지 않고 관리 또한 힘들어 투산에 맞는 환경 그대로 둔다고 한다. 


2) 습도와 날씨


어려서부터 나는 아토피가 심했다. 누군가 민물가재를 끓인 물로 목욕을 하면 아토피가 낫는다고 들었던 엄마는 내가 어릴 때 한동안 목욕을 시켰다고 한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르겠지만 성인이 되어가면서 피부가 많이 나아갔지만 그래도 여전히 손바닥에 남아 있는 아토피는 어찌할 방법이 없었다.  



그리고 고온다습한 날씨인 한국에서 습진마저 피할 수 없어 매번 고생을 하곤 했다. 그런데 습도가 전혀 없는 투산에 오니 고온 건조한 특성 탓에 한동안은 아토피가 사라져 아토피 환자에게 습진의 유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피부는 매우 건조해지니 수분크림 정도는 듬뿍 바르는 게 좋다!)


3) 도마뱀과 선인장은 우리들의 친구


산책을 하거나 등산을 하면 흔히 보는 각지각색의 선이장


뒷마당 테라스에 앉아 있으면 흔히 볼 수 있는 친구들이 도마뱀이라고 하는 걸 보니 이 정도면 애리조나의 태양이 얼마나 뜨거운지 말은 다했다. 가끔 테라스에 앉아있으면, 투산 특유의 벽돌색과 비슷한 도마뱀 때문에 벽에 붙어있던 도마뱀에 식별이 안가 뒤늦게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Nopal 선인장


애리조나에 오니 선인장의 종류가 이렇게나 많은지 처음 알게 되었다. 얼마나 선인장이 많던지 심지어 하루는 멕시코 마켓에 갔는데 납작한 선인장을 파는 게 아닌가! 


이모는 자연스럽게 그 식용 선인장인 Nopal(노팔)을 종종 사서 잘게 잘라 밥과 야채를 볶은 볶음밥을 만들어주었다.


맛은.. 알로에와 비슷한 식감의 끈적임이 있었지만 생각보다 밥과 어울리는 특이한 맛이었다!


 

지금이야 카페나 집들이용으로 귀엽고 작은 선인장 하나씩 놓여 있지만 10년 전만 해도 생소했던 선인장이 나에겐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가시에 찔리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발걸음을 옮겨 다니기 일쑤였고 혹여나 무서운 동물이 나올까 재빨리 걸었던 기억이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아무튼 이 신비롭고 이상하기 짝이 없는 동네는 하루하루 지날수록 궁금증이 많아갔다. 


내 생에 최고의 타코(Taco-밀가루나 옥수수로 만든 둥근 토르티야에 여러 재료를 싸 먹는 멕시코 요리)를 맛보았고, 호불호가 제법 갈리는 고수(미나리과의 이파리)의 매력에 점점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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