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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베 Aug 03. 2018

사막에서 68개월

Prologue / LA 아리랑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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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logue / LA 아리랑의 꿈


Prologue

웅장한 소리와 함께 화려한 막이 열리는 마술쇼를 본 적이 있다. 정해진 짜임새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눈으로 보고 있는 이 광경이 놀라울 만큼 믿기지 않고 신비롭다. 그런데 이 신비롭고 흥미로운 마술을 보고 있으면 마술사의 트릭에 속았다는 사실에 왠지 모르게 조금은 약이 오른다. 


나는 다시는 속지 않으리라 다짐을 하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열심히 찾아본다. 하지만 누구보다 이 속임수에 익숙한 마술사의 손을 단번에 찾아내기가 쉬울 수 있겠나. 그저 마술사의 움직임에 익숙해지거나 마음을 비우고 쇼 자체를 즐기는 수밖에.


미국은 나에게 이 마술쇼와 같다. 

화려하고 신기해 보이지만 나를 약 올릴 땐 한없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다시는 실수하지 않으리라 눈물을 머금고 다짐해봐도 여전히 그들의 문화는 어색했고 익숙지 않았다. 어쩌다 한 번씩 트릭을 찾을 땐 미친 듯이 뿌듯했고 마지막 커튼을 뒤로하고 막이 내릴 땐 그 값어치가 아깝지 않을 만큼 큼을 느꼈다. 


살다가 가끔씩,

'인생 뭐 좀 재밌는 거 없을까' 생각이 들면 그 마술이 그렇게 그리워질 수가 없다. 보고는 싶은데 여운이 크게 남아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미국은 나에게 달콤한 사탕 하나를 줬다 뺐다 약 올리는 그런 곳이었다.  



LA 아리랑의 꿈

누구나 어려서 기억하는 추억의 만화나 영화가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나 역시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졸린 눈을 비벼가며 챙겨보았던 시트콤이 있었다.  

1995년~1996년에 방영되었으니 내가 아마 여섯 살쯤이었나 보다.


'그 얼마나 기다렸나~지금 이 순간을 고대하면서~'라는 노래가 시작이 되면

뜨거운 태양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크고 높은 건물들, 그 속에 키가 큰 야자수 나무, 여유롭게 거리를 걷는 미국인들, 영어로 된 표지판이 아직도 머릿속에 잊히지 않는다.


LA 한인타운을 배경으로 한 한인교포들의 삶을 그린 내용인데 나에게 그곳은 그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늘 꿈에 그리던 나라였다. 그리고 언젠가는 꼭 가고 말 테야라는 기분보다 왠지 모르게 '언젠가는 거기서 살겠구나'라는 아주 필연적인 느낌이 들었다.


간혹 스스로에게 닥칠 아주 사소한 사건이나 인생의 결정적인 순간을 꽤나 잘 맞추는 사람들을 꽤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나 역시도 그러한 영험함이 스스로에게 존재한다고 믿는 편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30년 동안 나에게 다가올 무언가, 혹은 '이건 분명 되겠다'라고 느껴지는 그런 느낌적인 느낌이 꽤나 존재했다. 



그리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겠지만 정확히 14년 뒤,  그 야자수 속 태양보다 더 뜨거운 태양이 존재하는 곳에서 나의 아리랑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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