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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베 Aug 03. 2018

사막에서 68개월

01 구부(舅婦) 간의 헤어짐이란

01 구부(舅婦) 간의 헤어짐이란


꼭 그렇게 말해야만 속이 후련하냐!

우리 엄마와 친할아버지는 유독 관계가 좋았다. 시아버지와 며느리 관계가 보통은 서먹하기 마련인데, 할아버지는 둘째 며느리인 우리 엄마와의 사이가 돈독했다. 


우리 할아버지는 무뚝뚝하고 무서운 성격은 아니시지만 다정하시다가 꼭 한 번씩 본인의 섭섭함을 티가나 게 말씀하시곤 했다.


유전이 참 무서운 게 나와 우리 아빠가 그 점을 꼭 빼닮았다. 상대방에게, '당신의 이런 점이 나를 기분 나쁘게 했다. 앞으로 그런 점은 조심해 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하면 얼마나 현명하고 좋은 사람이 될까. 


그러나 우리 같은 사람은 섭섭한 이야기를 직접 건네는 게 껄끄럽기도 하고 이상하게 자존심이 상하기도 한다. 그리고 상대방에게 스펀지에 바늘 꽂듯 매정하고 차가운 말들을 결국에는 쏙쏙 꽂는다.              

내뱉자마자 꽂았던 바늘을 속으로 후회하고 겉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려는 참 이기적이고 유별난 유전이다.



2008년 7월. 

그날은 여름 장마가 억수같이 쏟아 내렸다. 

이민가방 4~5개가 차 트렁크에 실린 채 우리 가족은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그 날 비가 얼마나 많이 쏟아졌던지 뿌연 안개와 굵은 비로 뒤덮인 영종대교 속에서 고모부는 엑샐을 힘껏 밟으셨다. 


그리고는 '형님네가 가시는 걸 하늘도 아나 보네요'라고 하셨다. 둘째 아들 배웅길을 꼭 가고 싶다며 함께 차에 타신 할아버지는 그걸 듣고도 모른 척하신 건지 도착 내내 아무 말 없이 창 밖을 바라보고 계셨다.


드디어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수속까지 마쳤다.  눈치도 없이 나와 동생은 가족과 헤어지는 슬픔보다는 미국에 대한 환상과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설렘을 완벽히 감추지 못했다. 적어도 할아버지의 눈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앞서 말했듯 우리 엄마와 할아버지는 어색함이 없는 구부(舅婦) 간인데, 헤어짐을 건네는 대화 속엔 어색함과 정적만 흘렀다. 


"아버님.. 이제 들어가세요."

"그래, 들어들 가거라. 몸 건강하고 아프지 말고.."


나는 고개를 들어 키가 크신 할아버지를 높이 바라보았다. 평소에 그렇게 커 보이시던 할아버지가 그 날은 왜 그렇게 왜소해 보이시던지.. 할아버지 눈 속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을 본 엄마는 그다음 말을 이어가는 게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본인도 눈물을 보이기 싫었던 것인지 엄마는 말을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몸 건강하시고요.. 도착해서 연락.. 드릴.. 게요!"  


라며 재빨리 탑승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시간이 흘러 엄마에게 들었을 때 엄마는 울지 않으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미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할아버지를 본 순간, 애써 울음을 참았다고 했다. 


그렇게 눈물의 이별이 끝나고 나니 불현듯 마냥 설레는 마음보다 앞으로 일어날 무수한 일들에 긴장과 걱정이 앞섰다. 


'이제 가면 언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라는 가득 찬 생각들로 우리 가족은 벌써 땅보다 하늘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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