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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베 Aug 03. 2018

사막에서 68개월

02 Omg! 여긴 미국이 아닐 거야!


Yes, I'm ready!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다다르면서 내려다 보이는 집들은 꽤 앙증맞았다. 그 광활한 땅에 저마다 다른 스타일로 경계를 친 잔디가 깔려 있었고, 보기만 해도 시원한 표주막 모양의 파랗고 초록한 수영장도 하나씩 갖추고 있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을 마무리하는 듯 비행기 바퀴가 나왔다. 비행기의 양쪽 날개가 펄럭일수록 나는 아기자기 한 집들을 더 가까이 볼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젤라토 아이스크림과 비슷한 크림색 질감이 부드럽게 펴 발려진 이층 집들을 보니 '아 이제 시작이구나' 하며 가슴이 쿵쾅 거리기 시작했다. 때마침 기내에서 울렸던 '띵' 소리가 마치 나에게는 '안전벨트를 풀어도 됩니다' 가 아닌 'Are you ready?'라고 하는 것 같았다.



우리가 갈 곳은 미국의 서남부에 위치한 애리조나(Arizona) 주(州) 였기 때문에 로스앤젤레스 공항에서 입국심사가 끝난 뒤 국내 항공사를 타기 위해 환승을 했다.


애리조나? 어디 옆에 있지?

가끔 미국 이야기가 나오면 내가 어디서 살다 왔는지 사람들은 물어본다. 그리고 '애리조나요!'라고 대답하면 대부분은 '아! 거기~!'라고 한 번에 대답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우뚱한다. 어디서 들어 본 것 같은데 정확히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사람이 꽤 많았다. 


좀 아는 사람들은 주로 그랜드 캐년 국립공원이 있다는 것과 로데오(말과 소를 탄 카우보이들의 경기)가 유명한 배경으로 알고 있다. 또 야구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류현진 선수가 LA 다저스로 입단하면서 상대팀으로 자주 경기를 치렀던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D-backs)를 자주 보았을 것이다.


애리조나 주(州) 피닉스가 연고지인 메이저리그 프로야구 팀


투산? 그거 자동차 이름 아니야?




우리의 정착지는 정확히 애리조나 주(州)에 위치한 Tucson(투산)이었다. 

투산은 미국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인 Phoenix(피닉스)에서 남동부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다. 나 역시도 투산은 생소했던 곳이었는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Tucson(투산)이라는 단어가 국내 유명 자동차 이름으로 알려져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반갑게도 미국 유명 DJ인 The Chainsmokers의 노래 'Closer' 가사 속에 등장하여 내심 그 부분만 여러 번 불러보곤 한다.


-The Chainsmokers 'Closer' 가사 중-

Stay, and play that Blink-182 song 

(여기 나와 함께 Blink-182 노래를 듣자)
That we beat to death in Tucson, okay 

(우리가 Tucson에서 지겹도록 들었잖아)



난 아직 캘리포니아의 감성을 즐기지도 못했는데! 

 애리조나 주(州) 남동부에 위치한 도시          Tucson(투산) 


어쨌든 목적지가 아직 멀기에 로스앤젤레스 공항에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뒤로했다. 

투산 국제공항(Tucson International Airport)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곳에 도착할수록 하늘에서 내려다 보이는 대지의 모습은 캘리포니아의 모습과 확실히 달랐다. 


우리가 아프리카 사막에 도착한 것인지 혼동될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넓은 대지는 온통 흙과 사막의 모래로 덮여있었다.



내가 상상했던 곳은 분명 평일엔 화려한 쇼핑센터에서 시간을 보내고, 주말엔 바다에서 서핑을 즐기는 곳이었다. 



이륙한 지 어언 1시간 30분이 지나 투산 국제공항에 다다랐지만, 이 곳에 대한 낯선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란 쉽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출국장을 벗어나 문이 열렸고 눈 앞에 펼쳐진 광경에 두 눈을 의심했다. 



내 눈에 보이는 것은 온통 선인장과 메마른 나무들 뿐



나는 한 차례 소나기가 내려 젖은 아스팔트의 공기인지 비에 맞은 선인장 특유의 냄새 때문인지, 태어나 처음 맡아보는 투산의 공기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우리가 도착했던 당시는 7월 중순이었는데 당시 투산 지역은 Monsoon 시즌(해양과 대륙의 온도 차이로 일어나는 계절풍)인 6월~9월에 맞물린 우기여서 한차례 소나기가 내려와 있었다고 한다. 


스멀스멀 땅에서 올라오는 미지근한 온도가 피부를 감싸는 듯했지만 습기가 많은 한국과는 정반대로 굉장히 건조했다. 습하지 않고 건조하며 그 건조함 속에서 나오는 선인장과 나무의 냄새라니..??


사람이든 사물이든 뭐든 처음 접했을 때의 느낌이 오래가지 않는가. 

나 역시도 투산에 도착했을 때 첫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가끔 1~2년에 한 번씩 가족들을 만나러 미국에 갈 때면 투산은 늘 변하지 않고 그 느낌 그대로, 그 향 그대로 날 맞아준다. 나는 한참을 출국장 앞에 서서 눈을 감고 투산의 공기를 코 끝부터 머릿속까지 깊숙이 들이마신다. 


그리고는 지난 6년 동안의 많은 날들이 필름처럼 아주 빠르게 지나간다. 


물론 그곳에서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들이 많았지만, 투산은 나에게 한 없이 힘들고 외로웠던 순간을 더 많이 안겨준 건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곳의 공기를 깊숙이 마실 때면 왠지 모르게 실실 새어 나오는 그 반가운 미소를 매번 참을 수가 없다.


애증이 듬뿍 담긴 나의 도시, Tucson

앞으로 잘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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