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거의 서막...그의 이야기
남편은 우리가 일본으로 온 후 전세금을 빼서 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큰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일본으로 온 지 1년 6개월 만에 1년 가까운 시간 동안 생활비를 받지 못했다.
나는 대기업에서 2년 동안 받은 월 15만 엔의 장학금으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다.
남편의 학비지원은 두 번밖에 없었고
생활비는 별거 때까지 월평균 100만원남짓밖에 받지 못했다.
나는 시영아파트를 신청하여 3년 정도 한국돈 5만 원 정도로 집값을 해결하며
근근이 생활하였다.
처음 3년 동안은 나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고 남편을 원망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남편과 사이가 나쁘지 않아서
1년에 여러 번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왜냐면 남편이 사업이 어려워서 우리에게 경제적으로 충분히 서포트해 줄 수 없는 상황이
되려 안쓰럽게 느껴졌고 사업적으로 내가 도와줄 수 없는 게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최고의 내조는 일본에서 아이들과 잘 지내는 것이라고 생각했기에
일본에서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더더욱 남편에게 말하지 않았고 되도록 스스로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남편은 서서히 시댁에서 투자금 명목으로 큰돈을 빌려
다른 동업자와 함께 외식업 등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남편은 우리가 귀국하면 넓은 집과 큰 자동차, 아이들에게 아낌없이 좋은 환경을 주고 싶다며 열심을 내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닌데...
나는 나대로 그는 그대로... 각자 고군분투하고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 힘든 시간들이 우리 각자의 자아실현을 위한 것이었다기보다 가족을 위해 노력한 시간이었다고 믿는다.
귀국일자가 1년 정도 남았을 때...
나는 남편과 귀국 후의 생활에 대해 이야기 나누기를 원했다.
나는 어쩌면 그에게
친구로 만나 연인이 되고 부부가 되어 10년 넘게 지내온 가운데
그때가 가장 솔직하게 나를 보여줬던 것 같다.
이제 정말 그와 <함께> 나아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남편은 경제상황에 대해 묻는 말이나 귀국 후에 맞벌이하며 빚청산하고 독립적으로 생활하자고 하는
내 의견을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힘들어했다. 내게 변했다고 고함을 지르거나 화를 내기도 했다.
내 이야기에 곤혹스러워하고 나의 대화요청에 곤란해하는 남편을 보며
나도 마음이 괴로웠지만 마음을 굳게 먹고 더 이상 물러서지 않았다. 맞붙어 말싸움을 피하지 않았다.
이제 우리는 정말 인생의 동반자, 가정 안에서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니
남편과의 힘들고 어색한 시간도 견딜 수 있었다.
몇 개월에 걸쳐 나는 전화와 카톡으로 메일로 그에게 내 의견을 피력했고 협상을 시도했다.
하지만 결국 남편의 경제상황, 빚 내역 등에 대해서 정확한 대답은 듣지 못했다.
그래도 그는 강경한 나의 제안 중
몇 가지에 관해서는 긍정적인 반응을 보여주었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상처주기 싫고 상처받기 싫어 피하고 부담스러워했던 대화가
해보니 어느 정도 성과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몇 개월 마음 고생하며 협상에 힘쓴 나 자신이 너무 대견했다.
무엇보다도 이제 우리 부부가 사랑과 가족이라고 하는 망상? 과 종래의 규범과 양식에서 벗어나
동등하게 대화하고 함께 결정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서
귀국 후의 생활에 기대와 설렘을 느꼈다.
나의 변한 가치관이라던지, 더 제안하고 싶은 것들도
귀국 후에 그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희망을 품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에 불과했다.
우리가 몇 개월동안 나눴던 대화에는 건설적이고 온화한 이야기만 오간 것은 아니다.
서로 대립하고 비난하고 주장하는 말들도 오갔던게 사실이다.
부부로서 나눴던 다양한 협상에 어느정도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했던 나와는 달리
남편은 상처를 받고 불쾌해했으며... 그런 마음이 별거를 결정한 그 날의 폭언과 폭력으로 발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