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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농농낭 Nov 29. 2024

소크라테스는 왜 그대는 "4대 성인"이 되었소?

위대한 4대성인 소크라테스


테스형! 테스형! 


전설적인 가수 나훈아가 외쳤던 그 이름 "소크라테스" 

그는 수천 년 전 고대 그리스에서 살았던 현대의 한국과는 연고과 별로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전설적인 가수의 노래에도 나올 만큼 유명한 사람이 되어있다. 


소크라테스 하면 흔히 생각하는 이미지가 있다. 철학가, 고대 그리스 사람, 절대주의자, 플라톤의 스승, 주정뱅이, 불 같이 뜨거운 사람, 다음과 같은 키워드들이 내가 소크라테스를 들었을 때 떠 올랐던 생각이다 


소크타레스는 성인 하면 우리가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다. 실제로 소크라테스는 술에 환장한 양반이었다. 플라톤이 쓴 책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주 술을 마신다. 실제로 그는 제자들에게 가르침을 받고 수업료 대신 일종의 향응 그니까 술을 얻어먹기도 했으며 밤새 술을 마시고도 강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남들과 토론하기도 했다. 


성인 하면 한 없이 너그러운 사랑과 따스한 모습을 떠오르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진정 불 같은 사람이어서 토론 중에 이 사람의 말이 조금이라도 논리적이지 않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면 그 사람이 누구든 간에 끝장토론을 벌여 그 사람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는 인물이었다. 


현대적 관점에서 보면 융통성 없는 매부리코를 가진 시비충, 불편충, 논리적인 것만 강조하는 꼰대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는 세상이 인정하고 있는 4대성인이다. 


개인적으로 그 사람이 4대성인으로 생각이 되든 안되든 간에 그는 참 재밌는 인생을 살았고 멋진 삶을 살았다. 다만 내가 고대 그리스에서 살았다면 그를 마주하고 싶지는 않다. 무슨 대화를 하던지 이것의 완벽한 시시비비를 따지고 내가 이것을 알고 있냐 모르냐를 굳이 깨닫고 싶지 않다. 어 어쩌면 대다수의 그리스 사람들도 이러한 생각을 하지 않았을지? 어쨌든 나는 그를 싫어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양반이 4대성인이라고 간주되는 핵심적인 이유는 바로 "무지의 지"를 설파한데 있다고 생각한다. 무지의 지가 무슨 말인가?  무지의 지에서 지는  知( 알지) 짜이다. 즉 나의 무지를 내가 알고 있다는 말이다. 내가 무언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슨 효용이 있는가? 내가 어떤 것을 모르고 있는지 깨닫는 것보다 내가 어떤 것을 알고 있냐가 분명 더 중요해 보인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입장은 분명 다르다. 


소크라테스가 무지의 지를 깨닫게 된 방식 또한 특이하다. 그의 절친한 친구 카이레폰은 델포이 신전에 가서 신탁을 받는 무녀 오늘날 말하자면 용한 점집에 가서 질문을 해본다. 


"그리스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델포이 신전에 있는 무녀는 자신의 친구 소크타레스라 그리고 답한다. 


오늘날 우리는 소크라테스가 4대성인이며 철학의 거장이기에 이에 대해 별로 반문이 없을 수도 있지만 소크라테스 이전에도 파르메니데스, 헤라클레이토스 등 내로라하는 철학자들도 있었으며 이들의 철학을 계승한 철학자도 여전히 활동했고 더군다나 당시의 핵심적이고 중심이 되는 학문인 수사학을 엄청 잘 가르쳐주는 소피스트들도 존재했다. 


이 소피스트들은 수사학 그니까 일종의 말싸움과 변론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쳐주는 당대의 일타강사들이었다. 이들은 실로 그리스 사회에서 강하게 인정받았고 이들의 가르침을 받으면 어떤 변론이나 말싸움에도 이길 수 있었다. 아마 당대사람들은 이러한 소피스트들을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카이레폰은 툭하면 그리스 신전에서 젊은이들과 피땀 흘리면서 말싸움이나 벌이고 있고 밤새 술 마시는 자신의 친구가 그리스에서 가장 똑똑하다는 사람으로 들은 것이다. 우리의 입장으로 이를 바라보자면 서울대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들보다 토론을 즐겨하는 인터넷 방송 bj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공인받은 꼴이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친구 카이레폰으로부터 자신이 그리스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다. 자신이 자기 땅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들은 소크타레스, 그 양반도 어이가 없었었는지 열불을 내기 시작한다.  


강력한 의구심에 가득 찬 그는 온 그리스 전역을 다니며 당대의 지혜 있는 자들과 끝장토론 리그를 이어간다. 


소크라테스: 지혜란 무엇인가?

그리스 지성인: 해야 할 것을 알고 하지 않아야 할 것을 아는 것이다. 

소크타레스: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리스 지성인: 한다면 나에게 유익이 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그렇다면 나에게만 유익이 되고 국가 전체에게 해로움을 끼치는 일은 해야 할 일인 것인가?

그리스 지성인:...(집에 가고 싶다)


이런 맞짱 배틀을 그리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치른 우리의 소크라테스. 놀랍게도 그의 전적은....?

그는 시즌 올킬을 자랑하는 리그 실력을 보여준다. 소크라테스는 생각한다. 무언가 치트키가 있었을 거야.. 내가 올해 시즌 리그 올킬을 기록한 이유가 있을 거야..! 


그는 자기 자신에게서 그의 답을 찾는다. 그것은 바로 그는 적어도 그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명 고대 그리스 시즌 논쟁 리그의 치트키는 바로 무지의 지였던 셈이다. 


우리는 때때로 분명 무언가를 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안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그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진정한 앎은 끝이 없다. 인간이란 결국 어떤 것에 대한 총체적이고도 완벽한 앎을, 어떤 것에 대한 완전한 정답을 알 수 없기 때문에 끊임없이 더 알도록 해야 하고 끊임없이 사유해야 한다. 


인간은 무엇인가를 완전하게 알 순 없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찾고 알려는 노력은 지속해 나갈 수 있다. 진정한 앎의 시작은 이렇게 진정한 알려고 하는 "자세"에서 시작된다. 


소크라테스가 바로 이런 자세를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어떤 것에 대해 확정적인 답을 내리지 않았고 남들이 내린 확정적인 결론에 대해 의구심을 갖고 그들이 알고 있던 확정적인 지식과 결론은 진정한 지식이 아니라고 깨닫게 해 주었다. 


질문은 기존의 알고 있는 지식을 흔들어 놓는다. 그것도 미친 듯이 예리하고 날카로운 질문은 내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우리의 소크라테스는 이런 질문들을 그리스 전역을 돌아다니며 하고 다닌 것이다. 질문하는 사람이 만약에 질문의 방향을 잘 잡아준다면 더 좋은 대답을 찾을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확정적인 지식의 날카로운 반론으로 다시 한번 그것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보게 됐고 계속되는 질문으로 그것에 대해 좀 더 좋은 답을 찾게 해 줬다. 이러한 방법이 소크라테스의 "산파술"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러한 본인의 역할을 산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람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으나 그것을 깨닫고 있지 못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바른 질문과 끊임없는 토론으로 깨닫게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임산부가 아이를 나을 수 있게 도와주듯, 바른 답을 찾도록 유도해 주기 때문에 그는 이런 변론의 방법을 "산파술"이라고 부른다.


소크타레스를 성인으로 만든 것은 즉 내가 어떤 것을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고 더 알려는 자세 즉 "무지의 지"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자신이 모르고 있다는 것을 겸허하게 인정했고 끊임없이 알려고 노력했다. 그 결과 남들보다 더 넓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남들이 볼 수 없던 것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여담으로 그는 살아생전에 글 한 줄 조차 쓰지 않았다. 그러면 우리가 이렇게 소크타레스를 잘 알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글 쓰기 좋아하는 어린 제자 한 명을 잘 뒀기 때문이다. 그의 이름이 바로 플라톤이다. 


길 가던 사람들을 붙잡고 맞짱논쟁베틀을 너무 많이 벌인 까닭일까? 아니면 그의 제자들이 그리스에서 독재정치를 하다가 쫓겨났기 때문이었을까? 그는 그리스 사회의 미움을 받고 사형판정을 받는다. 


여기서 제법 그의 최후가 당당하면서 우아하다. 그리스 청년들을 타락시킨 죄목으로 재판정에 선 소크라테스는 조금만 반성의 의지만 보였어도, 아니면 최소한 반성하는 척이라도 잘했다면 사형을 면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은 아테네가 무지의 잠에 빠지지 않도록 등에(소에 붙어서 소가 잠자지 못하게 하는 벌레)의 역할을 한다고 자저 했으며 내가 받을 수 있는 처벌이라면 벌금정도라고 항변한다. 


자신의 제자가 스파르타에게 붙어 그리스 독재정치를 벌이고 자신은 이미 그리스 사람들에게 시비충으로 여김 받으면 좀 자신을 굽힐 뻔한데도 그는 당당하게 오히려 상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단다. 결국 그의 최종판결은 사형이었다. 


당시 그리스의 감옥은 간수에게 뇌물만 주면 풀려날 수 있었고 그 또한 그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어떤 사람이 국가의 법률과 운영에 대해 잘 알면서도 그 나라에 살고 있는 것은 그 나라와 자연스러운 합의를 한 것 과 같다. 탈옥을 한다면 나는 그 나라와의 합의를 파기하는 것이고 이것은 정의롭지 못한다. 게다가 내가 탈옥을 한다면 나는 정의를 말해왔던 활동의 정당성을 잃는다"


이렇게 말한 소크타레스는 주변의 만류에도 독 당근으로 만든 수프를 당당히 마시고 죽는다. 

그는 독이 몸에 퍼져가는 상황에서도 떨거나 두려워하지 않았고 편안하게 죽었다고 한다. 향년 그의 나이 70세였다. 


우리는 그의 삶을 보며 많은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적어도 그는 겸허한 자세를 가졌으며 자신이 말한 것과 행동을 모순되지 않으며 살았다. 그러한 이유 때문에 그는 세상이 인정하는 4대성인이 된 것이다.


개인적으로 플라톤이 글 쓰는 것을 좋아해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우리는 플라톤이 쓴 글을 통해서만 소크타레스를 볼 수 있지만 그래도 그의 삶과 그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어딘가

 

4대 성인 중에서 유일하게 술을 좋아했으며 아니 환장했으며 수도 없이 남에게 상처를 주고 심지어 자신의 제자가 적국인 스파르타에 붙어 괴뢰정부의 독재자가 되었지만 지혜를 향한 그의 자세와 끝까지 정의를 부르짖고 자신이 말한 대로 행동하며 살았던 삶을 보여줬던 그는 진정 위대한 철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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