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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꿈 May 28. 2023

어쩌면 지금이 가장 행복해야 할 때

다신 없을 너희들의 소중한 시간

 7살 아이들의 담임을 맡고 있는 올해.

 종종 아이들은 자신이 겪었던 힘든 점들을 이야기하곤 한다. 교사인 나에게 직접 토로하기도 하고, 아이들끼리 이야기하며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는 모습을 보기도 한다.

 고작 7년 인생에 힘든 점들이 무엇이 있을까 하면,

 가령 이런 점들이다.


 “선생님, 제가 전에 다니던 곳은 김치를 꼭 다 먹어야 해서 힘들었어요.”

 “나 전에는 맨날맨날 공부만 하던 곳에 다녔어.”

 “맞아, 나도 맨날맨날 공부만 해서 힘들었어.”


 먹기 싫은 반찬을 먹어야 하고, 앉아서 무언가를 배우며 읽고 써야 할 때.

 물론 올바른 식습관을 기르고, 연령에 맞는 수나 언어 등을 습득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이것이 왜 아이들에게 힘든 일이 되었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이런 아이들의 마음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조금 더 즐겁게, 재미있게 가르쳐보자고 다짐하게 된다.


 유치원만이 가지고 있는 특수한 교육방식, 바로 ‘놀이’의 힘이 이때 발휘되는 것이다. 아이들은 그저 논다고 생각하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 느끼지만 실은 그 안에서 얼마나 많은 것들을 배우고 있는지 모른다.


 골고루 먹어야 건강하다는 점을 모르는 아이는 없을 것이다. 식습관 형성에 있어서 먹기 싫은 반찬도 아주 적은 양이지만 한 번 ‘도전’ 해 보는 것. 그리고 그 도전과 성취에 함께 기뻐해주는 것. 아이는 그렇게 하루하루가 지나면서 스스로 도전해 보기를 즐기고 성취감을 느끼며 뿌듯해한다. 정말 어느 날은 내가 권유하지 않았는데도 먼저 와서 “선생님, 이거 한 번 먹어봤어요!” 하고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며 얼마나 기특했는지 모른다.


 한글습득에 있어서는 먼저 ‘한글이 없다면?’하고 상상해 보는 시간을 가진다. 한글이 없으면.. 아이들 상상의 나래 속에서 세상은 서로 뜻을 전달하기 모호하고 나의 이름도, 우리 집과 유치원 이름도 모두 사라져 버린다. 그때 아이들은 한글이 있어야겠구나! 깨닫는다. 짧은 단어라도 나의 생각을 표현하고 전달하면서 한글의 소중함을 느끼고, 그렇게 한글습득의 동기부여를 얻는다.

 아이들의 놀이 속에서 한글이 필요할 때, 예를 들어 미용실 간판을 써붙여놓아야 할 때 아이들이 먼저 찾아와 질문을 하고 그때 자연스럽게 글자를 가르쳐준다. 아이들은 놀았다고 느낄 테지만 새로운 글자를 배웠다.

 어느 날은 아이들끼리 다툼이 생겨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화해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한 아이가 나 몰래 친구에게 사과편지를 쓴 것이었다.

 ‘미아내 사이조게 지내자.’

 맞춤법은 틀렸지만 한글로 마음을 전달하는 고운 마음씨를 가진 아이에게 감동한 날도 있었다.


 아이들이 말하는 ‘공부’라는 것은 아무런 동기부여도, 놀이 속 스토리도 없이 그저 앉아서 책을 사용해 지식을 습득하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추측 아닌 추측을 해 본다.


 아이들이 어떤 점이 힘들고, 어떤 점이 좋은지 교사인 내가 먼저 묻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해 준다는 것이 때론 참 고맙게 느껴진다.


 종종 뉴스를 보면서 우리가 사는 사회가 얼마나 냉혹하고 각박한지 나조차도 깜짝깜짝 놀라게 된다. 이런 세상에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야 하겠구나,라는 생각도 뒤따라오곤 한다.


 나는 아이들에게 양보의 미덕과 바른 마음가짐을 가르치고 있는데, 학교를 떠나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점이 가슴을 시리게 한다. 어쩌면 사회에 발을 내딛기 전부터,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부터 현실을 마주하게 될 가능성이 크겠지만 말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아이들에게 자기표현을 분명하게 할 것을 가르치고, 너의 뒤에는 언제나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들이 있음을 강조하게 된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어른들이 만들어놓는 규칙들과 사회적 분위기가 싫었었는데, 결국에는 나도 그러한 사회 속 일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렇게 현재의 나는 사회구성원으로 자연스레 스며들고 있다.


 그렇지만 ‘교사’라는 이름 앞에서, 아이들에게 무엇이 올바른 것이고 현명한 길인지 가르쳐야 하는 의무가 있기에 늘 바른 교육이란 무엇일까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내가 만나는 아이들은 많아봐야 고작 7살. 어린 나이의 아이들이다. 우리 아이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날들과 마주해야 할 일들을 생각해 보면, 어쩌면 지금이 가장 행복해야 할 때가 아닌가 깨닫게 된다.


 작은 새싹이 돋아나는 것에도, 사탕 한 알에도 행복해하는 우리 아이들.


 지금 가장 행복해야 앞으로도 마음 튼튼히 잘 살아갈 수 있는 힘이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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