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베네딕트 컴버배치 배우가 백발로 염색한 썸네일이 있길래 별 생각없이 봤던 영화인데 보면서 생각할만한 이야기가 있어서 몇 자 적어보겠습니다.
<제5계급>은 줄리안 어산지와 다니엘 돔샤이트 베르크라는 실존인물들의 이야기입니다. 이 둘은 위키리크스라는 대체언론을 운영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대체 언론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전통적인 언론매체인 신문사 이야기였던 <스포트 라이트>와 비교해보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 두 이야기를 비교해도 크게 재밌을 거 같지 않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두 이야기는 언론이라는 소재를 담고 있지만 전혀 다른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제5계급>은 하나의 사건을 파고드는 이야기가 아니라 두 인물의 갈등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영화는 줄리안과 다니엘이 만나는 순간부터 시작합니다. 두 사람은 위키리크스라는 대체 언론의 필요성에 공감하며 함께 일하며 위키리크스를 키워나갑니다. 러닝타임의 많은 부분이 위키리크스가 어떻게 성장해나가는지를 이야기합니다. 이 성장 이야기에서 두 인물이 추구하는 가치 역시 성장합니다. 이 두사람은 모두 '신뢰'라는 언론의 기본적인 가치를 추구합니다. 하지만 추구하는 가치의 세부내용은 다릅니다. 줄리안이 추구하는 '신뢰'는 '위키리크스가 제공하는 정보에 대한 신뢰'입니다. 반면에 다니엘이 추구하는 '신뢰'는 '위키리크스가 한 약속에 대한 신뢰'입니다.
이 두 사람이 추구하는 '신뢰'는 서로 갈등을 계속하다가 2010년 있었던 미국 국무부 외교전문 공개로 터집니다. 영화에 따르면 위키리크스에는 두 가지 절대 규칙이 있습니다. 하나는 '공개하는 자료는 수정 없이 원본 그대로 공개한다.'입니다. 다른 하나는 '내부고발자를 보호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한다.'입니다. 줄리안은 전자를 후자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니엘은 후자를 전자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 두 사람이 이렇게 다른 신념을 가지게 된 배경은 두 사람의 성장과정 때문입니다. 줄리안은 유년시절 모친이 사이비 종교 신도와 만나면서 사이비 종교에 어쩔 수 없이 투신하게 됩니다. 성장하고 나서도 두 명의 동료들로부터 배신을 당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인해 줄리안은 다른 사람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혼자서 일합니다. 다니엘이 위키리크스의 운영 방침에 의견을 내기 시작하면서 줄리안은 다니엘과 갈등을 일으킵니다. 왜냐하면 위키리크스는 줄리안 본인의 다른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위키리크스는 다니엘이 등장하기 전까지 제이림과 같은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서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 자원봉사자들은 사실 줄리안 어산지의 가짜 이메일 주소였습니다. 즉,
입니다. 따라서 위키리크스에 대한 의심은 줄리안 본인에 대한 의심이며, 위키리크스에 소속된 다른 사람들은 부차적인 문제에 지나지 않습니다.
반면, 다니엘은 관계 속에 있습니다. 자상한 부모님은 다니엘을 아끼고 사랑해주며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또한, 다니엘에게는 친구도 연인도 있습니다. 이들은 다니엘을 지지해주고 때로는 다니엘을 꾸짖기도 합니다. 관계속에 살아온 다니엘에게는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가장 중요합니다. 다니엘이 줄리안에게 불만을 가지는 것은 줄리안이 이러한 이러한 '신뢰'를 계속해서 무시하기 때문입니다. 줄리안은 다니엘에게 위키리크스의 규모를 속였고, 항상 위치와 행선지를 속였으며, 마지막에는 약속을 무시하고 외교전문 원본을 공개해버립니다. 다니엘은 위키리크스를 관계속에서 정의합니다. 즉,
입니다. 따라서 다니엘은 내부고발자의 안전을 위해서 위키리크스의 보안을 강화하기 위한 방안들을 계속해서 제시하려 합니다. 하지만 기존의 제보툴을 만든 것은 줄리안이므로 이러한 다니엘의 행위는 줄리안은 자신에 대한 도전, 의심 등으로 생각하여 불쾌하게 여깁니다.
이러한 두 사람의 갈등이 <제5계급>의 주요 내용입니다. 영화는 재미있습니다. 그렇지만 뭐랄까? 식상한 맛이 조금 있습니다. 언론의 정의나 추구해야할 바에 대한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접근하신 분들은 실망하실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