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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yeon Apr 10. 2022

신화의 종말과 신화를 넘어서서 <선샤인>

브런치에 글을 올리지 않은지는 반년 정도 된 거 같지만 디즈니플러스를 결재한 이후로 일주일에 한 편 이상의 영화를 보고 있습니다. 가끔 OTT는 놓쳐버린 혹은 미처 알지 못했던 좋은 영화들을 볼 수 있도록 해준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는 생각을 합니다. <선샤인> 역시 그런 영화 중 하나입니다. 2007년작이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개봉한다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는 영화입니다.

출처 :  다음 영화


<선샤인>의 기본 줄거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미래에 태양이 죽어가서 인류가 위기에 빠집니다. 인류는 이 위기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태양에 핵폭탄을 쏴서 인위로 핵분열을 일으켜 태양을 소생시키기로 결정을 합니다. 태양에 핵폭탄을 쏘는 임무를 받은 몇 명의 전문가들이 '이카루스 2호'라는 우주 비행선을 타고 태양으로 향합니다.


왓챠에서 이동진 평론가는 이 영화를 '걸작이 될 뻔했다.'라고 평했습니다. 아마 후반부에 등장하는 핀 배커라는 캐릭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왓챠 내에 많은 사람들이 핀 배커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킨 것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감독은 어째서 '핀 배커'라는 캐릭터를 등장시킬 수 밖에 없었을까요? 이에 답변하기에 앞서 저는 <선샤인>이라는 영화를 '신화를 넘어서 신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정의하고자 합니다. 이후 저는 제가 내린 이 정의를 구체화하고 나아가, 구체화 된 논의를 근거로 하여 논지를 전개할 것입니다.


이카루스라는 이름

영화 속 주인공들이 타고 가는 우주 비행선의 이름은 앞서 서술했듯이 '이카루스 2호'입니다. '2호'라는 말은 '1호'가 있었음을 암시하며, 실제로 영화속에서는 7년전 우주로 떠났으면 실패했다고 서술되어 있습니다. '핀 배커'는 이카루스 1호의 선장이었습니다. 동시에 '이카루스 1호'가 실패하게 되는 원흉입니다. 그리고 '핀 배커'는 자신의 행동 이유를 '신이 원했다'는 종교적인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여기서 '이카루스'라는 이름에 대해서 언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카루스'는 본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인물로 그리스 신화 최고의 인간 장인(匠人)인 다이달로스의 아들입니다. 다이달로스는 미노스왕의 명령으로 미노타우로스를 가둘 미궁을 만듭니다. 하지만 이후 미노스 왕에 의해 아들인 이카루스와 함께 본인이 설계한 미궁에 갇히게 됩니다. 그 이유로는 크게 두 가지가 전해지는데 미노타우루스의 탄생 배경이 된 파시파에 왕비의 간통을 모형 암소를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하나고, 아리아드네에게 미궁을 탈출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기 때문이라는 설이 다른 하나입니다. 이러한 이유에 대해서는 이 영화와 큰 연관이 없으므로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미궁에 갇힌 다이달로스는 탈출을 위해 깃털을 모아 밀랍을 이용하여 날개를 만듭니다. 이 날개를 이카루스에게 주며 낮게 날면 물기에 젖어 날개가 무거워질 것이고, 높이 날면 태양에 날개가 타버릴 것이니 중간으로 날라고 당부합니다. 이카루스는 결국 아버지 다이달로스의 당부를 저버리고 하늘 높이 날다가 날개의 밀랍이 태양에 녹아 추락하고 맙니다. 

제가 생각할 때 영화 <선샤인> 속 이카루스 1호는 그리스 신화 속에 등장하는 이카루스의 메타포입니다. 이카루스 1호는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가 중간이라는 정해진 길을 벗어나 추락했듯이 이카루스 1호 역시 경로를 벗어나 실패(추락)합니다. 그리스 신화 속 이카루스의 실패는 인간이 감히 신의 영역인 하늘(태양)에 가까워지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예로 같은 그리스 신화 속 파에톤 역시 신의 영역인 태양마차를 모려고 하다가 번개(신벌)에 타서 죽습니다. '이카루스 1호'는 핀 배커에 의해서 추락합니다. 핀 배커는 신화 속 신의 의지를 대변하는 캐릭터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의 과학기술, 인간의 꿈은 인간의 과욕이라고 단언하며 신이 인간을 멸망으로 이끈다면 신의 뜻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이런 부분을 보면 핀 배커가 단순한 미친 광신도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핀 배커는 신화시대의 메타포인 이카루스 1호를 이끄는 선장(신화를 이끄는 동력이자 신화가 말하는 명령)이며, 강력한 힘을 가진 신의 집행자입니다. 그는 비인격체인 신의 징벌을 의미하기 때문에 본인의 임무인 신의 집행자로서의 역할을 맡게 된 후에는 영화가 끝날때까지 얼굴을 제대로 비추지 않으며, 그 몸은 신화시대에 태양을 감히 범접하려던 자들이 받았던 신벌처럼 화상으로 뒤덮여있습니다. 

이카루스 1호의 내부는 먼지로 가득 덮혀 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현재의 이카루스 2호에서 과거의 신화의 공간인 이카루스 1호 안으로 문을 통해 들어갑니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이카루스 1호가 신화 속 이카루스의 메타포라는 점은 이카루스 1호의 묘사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이카루스1호는 (오래되어) 먼지가 덮여있고, (야생의, 원시의) 숲이 무성합니다. 물론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먼지는 사람의 피부 조각이고 숲은 산소공장에서 식물들이 과성장하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카루스1호의 모습이 신화가 가지고 있는 오래되고 원시적인 이미지와 유사하다는 점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신화를 넘어선 인간

저는 앞서 이 영화를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한다고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영화 속에서 등장인물들이 신에게 도전한다고 생각한 근거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 등장인물들의 목적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는 태양계에 속해 있습니다. 그리고 태양은 태양계의 중심입니다. 이카루스 2호는 죽어가는 '태양'을 '소생'시키기 위해서 우주를 여행하고 있습니다. 태양을 소생시키는 방법은 핵폭탄에 의한 핵분열입니다. 여기서 태양이 어떻게 생겨났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46억년 전 초신성의 폭발로 인해 성운이 원반 형태로 수축한 결과 태양계가 생겨났습니다. 즉, 태양은 파괴와 재생의 결과 생겨났으며, 태양의 탄생은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태양의 탄생과 같이하기 때문에) 과학이 말하는 천지창조입니다. 따라서 영화 속의 인물들이 태양으로 가서 하려는 행동은 천지창조의 재현입니다. 태양에 핵폭탄을 쏜다는 행위는 죽어가는 태양을 파괴하여 새로운 태양을 다시 만든다는 행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신화속에서 천지창조는 인간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신의 권능입니다. 따라서 영화 속 인간들의 목적은 신을 권능을 재현하려는, 신에 도달하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등장인물들의 죽어가는 모습입니다. 등장인물들의 대부분은 태양에 의해 타죽습니다. 앞서 이카루스와 파에톤의 예를 들어 태양의 신적 특질과 타 죽는다는 신벌의 모습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계속해서 태양에 타죽는다는 것은 신에게 도전하는 인간이 결국 좌절하고 신벌을 받아 죽을 때 타 죽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이 영화 속에 있는 등장인물들은 죽음을 맞이할 순간임을 알게 된다면, 죽는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면 태양을 당당히 마주보고 태양에 타죽는 죽음을 택합니다. 

이 모습이야말로 이 등장인물들이 감히 신에게 도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조금 억지일수도 있지만 타 죽지 않는 사람들 역시 크든 작든 신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신의 징벌을 상징하는 핀 배커가 직간접적으로 이들의 죽음에 연관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주선 없이 우주 밖으로 나간 하비가 죽은 근본적인 이유는 핀배커가 에어록을 부셨기 때문입니다. 코라존이 죽은 이유는 핀배커가 뒤에서 칼로 찔렀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모두 핀배커가 원인이 되어서 죽었습니다. 즉, 신의 징벌을 받아 죽은 겁니다.

이 영화는 감히 태양과 마주보려 하는 인물들에 관한 영화입니다.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무엇이 인간이 신을 넘어서게 하는가?

결국 등장인물들은 태양을 소생시키는데 성공합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들이 그것을 가능하도록 했을까요? 누군가는 과학기술이라고 말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이 영화 속의 과학기술은 만능하지만 동시에 무능합니다. 왜냐하면 갖가지 기능을 가지고 있지만 어떤 문제도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핀배커가 이카루스2호 안으로 잠입했을 때 이카루스2호의 시스템은 알 수 없는 1인이 더 있다는 사실을 감지합니다. 하지만 그 1인이 누군지도 알 수 없고, 어디 있는지도 특정해내지 못하고, 무슨 일을 하는 지 알아내서 막아내지도 못합니다. 

그렇다면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달하게 한 원인은 무엇일까요? 제 생각에는 책임과 희생입니다. 이 영화는 처음부터 등장인물들의 역할이 명확히 나누어져 있습니다. 캐파는 물리학자, 메이스는 엔지니어 등으로 말이죠. 이들은 각자 역할에 맞는 책임이 있고, 그 책임의 궁극적인 목적은 태양의 소생입니다. 이 목적을 위해 등장인물들은 본인의 희생을 합니다. 선장인 카네다는 트레이의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방열판을 고치다 사망합니다. 트레이는 본인의 실수로 인해 벌어진 일들에 대한 책임을 지며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트레이의 희생으로 모자란 산소에도 항해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이카루스1호에 가야한다고 주장했던 서릴은 다른 사람들을 이카루스2호로 돌려보내고 혼자 남아 최후를 맞이합니다. 핀배커의 공작에 냉각수에 문제가 생기자 엔지니어인 메이스가 그걸 고치다가 희생합니다. 이들의 여정은 책임과 희생으로 말미암아 목적을 달성합니다.



대니 보일이라는 감독 이름은 익히 들었습니다만 실제로 영화를 본 것은 디즈니 플러스를 통해서입니다. 디즈니 플러스에 <선샤인>이라는 영화 말고도 <트랜스>라는 영화도 재밌게 봤습니다. 눈이 부실 정도로 밝은 색감과 정신없는 화려한 카메라 워크 등으로 인해 눈이 피곤한 영화들이긴 하지만 그만큼 재미있는 영화이니 생각이 있다면 한번쯤 찾아보는 것을 권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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