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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순 Oct 15. 2023

다시 읽는 ‘안나 카레니나’

이관순의 손편지[368] 2023. 10. 16(월)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각각 다름으로 불행하다.”

'전쟁과 평화' '부활'과 함께 톨스토이 3대 소설로 꼽히는 ‘안나카레니나’는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톨스토이는 이 문장 하나를 얻기까지 열여섯 번 고쳐 썼다고 한다. 우리네 인생을 함축한 표현 같기도 한 이 문장은 세계문학사상 가장 유명한 도입부 중 하나로 꼽힌다. 간결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아리송한 이 글귀에 끌려 소설을 읽은 지 50년이 지났는데, 코로나 팬데믹 덕분에 다시 읽을 기회가 생겼다.      


매혹의 첫 문장이 곧바로 끌어들이는 이야기는 바람피운 남편으로 인해 산산조각 나는 가정의 파경으로 펼쳐진다. 분노한 아내는 더 이상 남편과 한집에서 살 수 없다고 선언한다. 하인들도 저마다 살길을 찾아 뿔뿔이 떠나버리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방치되어 제멋대로 산다. 콩가루 집안이 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위기에 처한 이 가족의 해결사로 등장한 것이 소설 속 여주인공인 안나 카레니나. 파국의 원죄인 문제 남편의 여동생이다. 안나는 고위직 관료인 남편과 아홉 살 아들을 둔, 외견상 모든 게 완벽한 행복의 여건을 갖춘 여성이었다. 그녀의 주선으로 망가진 오빠 집안을 봉합하는데 어느 정도 성공한 듯하지만 그 과정에서 또 다른 불행이 잉태되었다. 정작 안나 자신이 외간 남자와 사랑에 빠져 자기 가정을 깨뜨리는 상황으로 번지고 만 것이다.      


가벼운 쾌락을 좇는 바람둥이 남자는 쾌락을 즐기는 것으로 행복을 꿈꾸지만, 안나는 단 한 번의 진짜 행복, 진짜 사랑에 눈을 뜬 여인이었다. 그렇게 진실된 인생을 갈구했던 여인을 ‘외도’라는 이름 아래 불행의 나락으로 밀어 넣는 건 일견 모순처럼 느껴진다. 그 모순을 잘 알기에 톨스토이는 연민의 손길로 안나의 인생을 어루만진다. 작품 구성상 안나를 죽음에 이르게 하지만 속으로는 사랑하고 용서한 듯하다.      


소설은 생명체로서의 그녀가 왜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는지 생의 과정을 들여다보는 작품이다. 사실 안나를 비롯한 소설 속 인물 대부분이 죄를 짓고 산다 우리들처럼. 믿었던 누구는 배반하고, 누구는 증오하고, 누구는 위선적으로 산다. 또 누구는 이기적이며 때로는 도덕적 우위를 가장하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도 그렇다. 그러면서 서로가 ‘내 잘못은 없다’고 주장한다. 잘못하지 않은 나는 행복해져야 하고, 불행해져야 할 사람은 바로 너라고 생각하면서….      


각자 입장으로 들어가 생각하면 때로는 실제로 죄가 없을 수도 있다. 죄를 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 죄가 경우에 따라 충분히 이해받고 용서받을 만한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저 높은 창공에 뜬 매의 눈을 하고, 한쪽은 평화롭고, 다른 쪽은 전쟁터가 된 가정을 들여다본다. 한쪽은 이유를 막론하고, 이유를 초월해 온 가족이 하나 되어 움직이는데, 다른 한쪽은 각자 이유를 들이대며 원망하고 갈라지고 시끄럽기만 하다.  

   

 톨스토이가 그려낸 소설 속 조감도의 포인트는 첫 문장에 다 나와 있다. ‘모두가 닮았다’와 ‘모두가 다 다르다’로….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모습은 한마음으로 한 몸을 이룬 관계일 때이다. 그러나 행복의 모습을 그렸던 톨스토이 자신은 평생 행복하지 않았다. 그의 박물관에 가면 톨스토이의 가족 초상화가 있는데, 의미심장하게도 톨스토이 부부의 시선이 서로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그만큼 행복하지 않았다는 뜻 같다. 행복이란 이 단순 명료한 원리가 현실 세계에서는 그렇게도 복잡하고 어렵게 얽히는지…. 누구나 잘 아는 뻔한 얘기에 불과한 사실이 결코 뻔하지 않다는 것이다.    

  

소설의 첫 문장이 지닌 심오한 진실이 ‘안나카레니나의 법칙’이란 말을 낳았다. 소설은 언뜻 보면 가족의 본질에 대한 통찰로 보일 수 있으나, 좀 더 파고들면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력, 그 힘의 발견으로 이어진다. 이 법칙은 가족의 행복에 기여하는 특정한 요소가 있는데 이런 요소가 행불행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원활한 의사소통, 상호존중, 가치관의 공유, 일치된 목적의식 등의 요소는 갖출수록 가족의 행복과 삶의 만족도를 높인다.     


“내 아들엔 왕자님의 DNA가 있다”라며 담임교사를 호통친 교육부 사무관에 대한 언론 보도가 있었다. 주연은 오직 나뿐이고 남은 다 나를 돕는 조연 아니면 엑스트라로 생각하는 걸까. 세상이 갈수록 자기애에 몰입하고 환각에 빠져드는 것 같다. 먹는 것조차 힘들었던 시절에도 마을이 하나가 되었는데 달 여행이 현실화 돼 가는 21세기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서로가 닮기를 거부하고 제각각의 이유로 시끄러운 시대, 이 불행한 사회를 살아내려니 힘들고 혼란스럽다.      


물질문명은 갈수록 풍요로운데 언제라야 분열 없이 화목한 자아, 가정, 사회가 이루어질까. 풍요 속의 반작용일까? 죄를 짓고도 천연덕스럽게 결백을 주장하고, 법적 대응을 공언하며 들레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불같은 사랑도 한철인 것을, 자기 열망을 주체하지 못하고 성공과 행복을 꿈꾸는 현대인들. ‘성공은 모든 실패 요인들을 모두 피할 때 가능하다’는 ‘안나카레니나의 법칙’이 이 사회를 더 냉혹하게 한다. 


-소설가/ daumcafe 이관순의 손편지     

 *...안나카레니나의 법칙= 성공하기 위해선 여러 가지 조건들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고, 만약 하나의 조건이라도 충족되지 못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결론적으로 성공은 수많은 실패 요인들을 모두 피할 때 가능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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