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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Nov 08. 2024

바다 보고 이혼할래?

맞지 않는 사람과 평생 살아갈 현명한 사랑법

그래, 결심하자.


무르익은 가을을 만끽하기 딱 좋은 11월의 시작. 

우리의 싸움은 시작되었다. 

서로를 향한 송곳은 작살이 되어 상대를 찔렀고 사춘기에 접어드는 아이들을 피해 휴전기간을 가져가며 이틀째 계속되었다. 그리고 모두가 외출한 토요일. 더는 못 참겠다는 마음에 태어나 처음으로 집을 나섰다. 

가출이다. 


배낭을 꺼내고 꼭 필요한 몇 가지를 쓸어 담 듯 넣은 후 책장 앞 한 권의 책을 들었다. 

한참을 고민 후 넣은 책이었다. 버스를 타고 무작정 향한 서울역, 강릉행 기차에 올랐다. 


혼자서 하는 여행을 좋아하지 않는다. 성격 탓도 있겠지만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서 자취를 하며 지낸 아픔, 외로움의 영향이 컸다고 스스로 생각했다. 그런 내가 지금 마흔이 넘어 집을 나온 것이다. 혼자 하는 여행이 걱정스럽기도 했지만 이틀에 걸친 남편과의 다툼으로 인한 나쁜 감정들을 빨리 없애버리고 싶은 마음이 가장 컸다. 하지만 아침저녁으로 얼굴을 마주하면서는 감정을 정리할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너 계속 이렇게 살 수 있어? 그만하자’ 


그렇다. 헤어질 결심을 하고 떠난 것이다. 

일단 마음을 가라앉히고 남편과 이성적으로 정리를 하고자 나선 것이었다. 




절대 없어서는 안 될 것 같았고 ‘당신은 내 마음의 중심이야’라고 외쳤던 남편이었다. 대학교 과 CC로 만나 10여 년의 연애기간과 결혼 생활 16년이니 이제는 엄마아빠와 함께한 시간보다 남편과의 시간이 더 길어진 중년의 부부인 셈이다. 그런 남편에 대한 신뢰가 깨져버렸다. 물거품처럼, 산산조각 나버렸다.

 이 사람이 없이도 잘 살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내 안의 나를 깨고 나와야 했다. 




서울역을 출발한 KTX는 단 두 시간 만에 나를 강릉에 내려놓았다. 

빨리 가자고 보채는 아이들도 없었고, 배고프다 징징대는 남편도 없다. 허전함과 시원함, 복잡함과 여유로움을 동시에 느끼며 나에게만 집중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작은 버스 정류장에서 40분을 기다려보고, 덜컹거리며 빠르게 달리는 버스 안에서 내 마음을 바로 잡으려는 듯 손잡이를 있는 힘껏 잡고 목적지 없이 그냥 발이 가는 대로 그렇게 걸었다. 저녁시간이니 밥 먹어야 한다는 당위적인 것들 모두 배제하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한 시간. 그렇게 몇 시간을 바닷가를 걷다가 힘들면 벤치에 앉아 바다를 보았다. 거칠게 부딪히는 파도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가슴이 뚫리는 기분이었다. 



그렇게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나니 안정이 찾아왔고 이제야 문제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감정적 서운함과 화로 가득 차 있던 내가 상대의 말이 들리기 시작했고 생각하고 이해해 간다.

 

하지만 잠깐.

나 여기에 결혼생활 정리하겠다고 온 건데.

더 이상 못 참겠다고 여기 온 건데. 

아직 아니라는, 정신 차리라는 마음 반대편의 목소리도 들려온다. 다시 나에게 집중한다.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뭘까? 왜 이렇게 화가 난 걸까? 정말 이혼이 하고 싶은 거야? 



그때, 책장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고 가방 속에 넣었던 책이 생각났다. 그리고 가방을 뒤적여 꺼냈더니. 『작별하지 않는다』 라니. 무슨 책을 넣었는지 기억도 못할 만큼 화가 가득했던 순간에도 난 작별할 생각이 없었단 말인가. 작별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이혼하지 않는다로 보인다. 어이없는 웃음이다. 

그렇게 조금씩 풀어져가는 나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함께한 시간이 길기에  할 얘기도 봄날에 봇물 터지듯 흘러넘쳤다. 

사실 나 스스로가 풀어지고 나니 타인과의 엉킨 실타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기차 안,

‘보고 싶어. 이게 내 마음이야.’ 

메시지를 보내는 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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