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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의도 오빠 Dec 26. 2020

'화양연화(花樣年華)',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시절

냉정하게 불타올랐던 그들의 사랑


'화양연화'가 리마스터링으로 다시금 우리를 찾아왔습니다.(12월24일 재개봉)     


 '인생의 가장 아름답고 찬한했던 시절(화양연화)'은 20년 전에 처음으로 찾아왔었고(원작 2000년 개봉), 2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마음을 두드리러 왔네요.     


1960년 홍콩의 아파트에서 어느 남녀의 조용하지만 뜨겁게 불타올랐던 사랑이 서서히 온도를 높혀가기 시작됩니다.     



같은 날 같은 아파트에 이사온 '차우(양조위)'와 '수리첸(장만옥)'     


좁다란 복도를 사이에 자리 잡은 그들의 방이자 집은 그들의 거리를 좁히기에 충분했었죠.      


이사 첫날부터 코가 부비빌 듯 맞닿아 있던 그들은 각자의 배우자들이 서로 내연관계에 있음을 깨닫게 되죠.   

  

차우의 넥타이와 수리첸의 가방이 똑같았던 것을 알게 되었고, 이내 배우자들의 현 상황을 알게 됩니다.     



너무나 자주 출장을 가던 남편의 외도를 알게 된 수리첸     


아내의 잦은 야근의 근원을 알게 된 차우     


차우와 수리첸의 비밀스러운 만남은 각자 배우자의 타인에 대한 연정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화면상에서 시종일관 장만옥은 고요하게 아름답습니다.

     

영화의 시작과 함께 등장한 그녀의 고혹적인 자태는 보는 이로 하여금 숨막히게 합니다.    


 

특유의 치파오(원피스형 중국 전통 의상)에 의해 드러나는 그녀 특유의 농밀함     


미약한 웃음기 아래 비추어지는 슬픔과 혼돈의 감정     


이에, 왕가위 감독이 만들어낸 미학적 시퀀스의 아름다움과 아픔이 영화를 보는 내내 마음을 두드려댔습니다.     


수리첸은 남편을 기다리고 또 기다렸지만, 결코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죠.     


때마침 동병상련의 정서를 공유하는 차우의 다가옴에 서서히 그에 대한 사랑에 젖어듭니다.    

 


차우는 아내의 외도를 눈치채고, 수리첸과 그들 배우자의 시작을 느껴보고자 했습니다.     


그가 그녀에게 용기있게 다가섭니다.     


물론 처음에는 수리첸은 차우를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었지만요.     


하지만 차우와 수리첸의 사랑, 법적으로는 외도는 결코 퇴색되지 않았습니다.      


육체적 관계보다는 정신적 동질감을 바탕에 둔 그들의 사랑이었기 때문이죠.     


영화상에서 그들은 그 어떤 육체적 공유를 하지 않습니다.     

 

오직 정신적 공감을 추구하고 있죠.     



신문기자였던 차우는 소설쓰는 행위를 통해 아내의 외도를 잊고자하였고, 수리첸과의 사랑을 이어나갔습니다.     


차우가 소설 작업을 위해 호텔에 기거하며 수리첸과 밀애를 나누었지만, 그 속에서도 동물적 교감은 없었습니다.     


밤새 서로가 소설을 쓰고, 생각을 공유하면서도 화양연화적 사랑을 이루어나갔죠.     



흡사 여기서는 프랑스 실존주의자 '사르트르'와 페미니스트 '시몬 드 보부아르'의 계약결혼 마저도 연상됩니다.     


서로를 자유롭게 사랑하고, 정신적 관계를 맺어가는 계약결혼     


시대를 초월하는 사랑은 프랑스와 중국이라는 시대를 관통하나 봅니다.     


결국 배우자의 존재라는 현실적 한계 속에서 그들의 사랑은 마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차우가 신문사 사무실에서 관객을 향해 담배연기를 내뿜는 카타르시스는 사랑의 종결을 고하는 듯 합니다.     


차우가 수리첸에게 같이 싱가포르로 떠나자고 하죠.     


하지만 수리첸은 현실적 제약을 택합니다.     


남편에게 돌아가는 것     


리마스터링 버전에서 추가된 그들이 검은 골목길에서 이별 예행연습하는 장면은 왕가위 감독이 20년만에 관객들에게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이 아닐까요.     



골목에서 이별의 예행연습을 하며 결국 차우의 품에 안겨 흐느끼는 장만옥의 가녀림과 순수함은 지금도 저의 좌심방을 요동치게 합니다.     



그들의 이별이 영화의 종결이라면, 시간이 지난뒤 그들 각자가 서로의 흔적을 되찾기 위해 처음 만났던 아파트에 방문하는 장면은 왕가위 감독이 우리에게 주는 상처일지도 모릅니다.     


왜냐면 차우가 떠난 빈방에 홀로 조용히 눈물을 흐느끼던 수리첸은 다시 차우의 예전 방을 방문했었죠.     


그 빈방에서 홀로 담배를 피는 장만옥의 모습에서 그 지난날 그들의 사랑이 리바이벌되는 듯하네요.     


그리고 차우도 과거 수리첸의 집으로 찾아가지만, 역시 그녀를 만날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들의 만남이 엇갈리기에 화양연화는 냉정해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영화가 이어지는 내내 60년대 홍콩을 떠날 수 없었습니다.     


다시한번 왕가위, 양조위, 장만옥의 위대함을 깨닫게 되었던 시간들이었죠.     


참, 영화상에서는 장만옥이 자신의 이름이 아닌 '첸부인'으로 불렸었지만, 글을 쓰는 내내 결코 그녀를 '첸부인'으로 부를 수는 없었습니다.     


제게 있어 그녀는 남편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 사랑에 주체적인 가장 빛나는 존재였으니까요.   

  

20년이 지나도 '가장 아름답고 찬란했던 시절'은 '가장 아름답고 찬란한 그들'에게 주어질 듯 합니다.

    


눈물없이 가슴으로만 울었던 99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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