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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개월이에요?”
이제 막 아이를 낳아 키우는 부모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일 거다. 아이 사진을 본 회사 동료도, 백화점 유아복 코너 직원도, 심지어 산책을 하다 처음 만난 사람도 무난하게 할 수 있는 질문이다. 어른들 사이에서야 첫 만남에 대뜸 나이를 묻지 않지만, 대상이 어린아이 일 땐 실례가 아닌 듯하다. 적당히 관심을 표하면서 사적인 영역으로 지나치게 파고들지 않는 썩 괜찮은 방법이며,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작고 귀엽지?”를 돌려 말하는 기능도 있다. 같은 인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자그마한 이 존재가 살아온 날이 며칠이나 되는 지를 궁금해하는 마음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그럼 다음과 같은 질문은 어떨까. 침대에 누워 꼬물대는 아이 동영상을 보여주는 친구에게 “요즘 태어난 애들은 몇 년이나 살아?”라고 묻는 거다. 궁금할 수도 있지 않은가. 우리 어릴 땐 평균 수명이 80세 정도라고 배웠고, 요즘은 의학이 발달해 100세 시대라고들 하는데 그럼 얘는 언제쯤 죽을지? 한 120년은 살려나? 아니면 코로나 같은 바이러스가 끊임없이 생겨나서 오히려 수명이 줄어들지도? 애한테 무슨 그런 소릴 하냐고 되묻는다면 이렇게 받아칠 수도 있다. “생명이란 태어난 순간부터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기도 하잖아? 그러니까 얘도 지금 죽어가는 중이잖아, 안 그래?” 아이가 몇 개월 살았는지가 궁금한 사람들처럼, 앞으로 몇 년이나 살지 알고 싶었을 뿐인데... 아마도 친구와 연은 끊기겠지.
그런 질문을 해봤다는 건 아니다. 진짜로 연을 끊고 싶은 사람에게도 할 생각 없다. 소중한 존재의 마지막을 가정하게 하는 짓이 얼마나 큰 무례인지 알기 때문이다. 난 오히려 비슷한 질문을 셀 수 없이 들어온 편이다. 내가 고양이를 키운다고 하면 마치 자석처럼 따라붙는 질문이다.
“고양이는 몇 년 살아?”
영화 <주토피아>를 보다가 토끼의 수명이 궁금할 수 있다. 주디가 저렇게 힘들게 경찰이 됐는데 몇 년이나 일할 수 있나 걱정이 되잖아. 그래서 영화를 같이 본 친구에게 물어볼 수도 있다. “토끼가 보통 몇 년 살지?” TV에서 <동물의 왕국>을 보다가 문득 목도리도마뱀의 수명이 알고 싶을 수도 있다. 마침 카톡을 나누던 친구에게 “야, 근데 혹시 목도리도마뱀 수명 알아?” 메시지를 보낼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린 언제든 동물의 수명을 궁금해해도 된다. 관련 학위가 없다면 접근이 어려운 지식의 영역도 아니다. 친절한 친구라면 이런 답장을 보낼 것이다. “15년이래~ 네이버에 치니까 바로 나오는데?”
그러나 같은 질문이 상황과 맥락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되기도 한다. 고양이를 키우지 않는 사람들끼리 인스타에서 귀여운 고양이 영상을 보고 깔깔 웃다가 “아, 나만 없어 고양이. 근데 고양이들 몇 년이나 살까?” 같은 말을 주고받는 건 아무 문제가 없다. 아니, 정확히는 ‘아무도 상처 받지 않는다.’ 고양이의 반려인에게 대뜸 반려묘의 남은 날을 묻는 건 다르다. 포유류의 한 종으로서 고양이가 아니라, 동생 또는 자식과도 같은 존재의 수명을 묻는 거다.
나는 내 고양이 ‘나무’가 오래오래 살았으면 좋겠다. 누군가는 고양이 수명이 10년이라고도 하고, 15년이라고도 하는데 그것도 너무 짧다. 그래서 질문을 받을 때마다 개인적인 염원을 담아 대답한다. “건강관리 잘해주면 20년도 살아.” 그럼 대개 놀란다. “우와, 그렇게 오래 살아?” 흥, 자기도 할머니 생신 카드엔 “만수무강하세요!”라고 쓸 거면서 내 고양이가 천수 좀 누리겠다는데 왜 놀라는 거지? 물론 그들에게 악의가 없다는 걸 알아서 한 번도 불쾌함을 드러내 본 적은 없다.
고양이의 수명을 답하는 집사의 머릿속에선 자동으로 계산기가 돌아간다. 몇 년쯤 남았구나. 수의사들은 반려묘가 8살이 되면 ‘노묘’로 상정하고 신경을 써줘야 한다고 말한다. 나무는 이제 5살이니까 3년 정도 남았다. 그 이후엔 평균 수명에 기대 남은 날을 장담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아직 종합 검진을 안 받아 봤는데 몸에 큰 이상은 없겠지? 있으면 어떡하지? 긴장이 바짝 든다. 앓는 데가 있는 고양이의 집사라면 더 속이 상할 수도 있다. “원래 15년쯤 사는데.. 우리 애는 신장이 좀 안 좋아서 어떻게 될지 몰라...” 이런 무거운 대답에 성심성의껏 공감하고 음수량 늘리는 정수기라도 선물해 줄 의향이 없다면, 그냥 묻지 말자 수명을.
보호자에게 어린아이의 나이를 묻는 마음과 비슷하리라 생각한다. 관심의 표현이겠지. 고양이에 대해 잘 몰라서 순수하게 궁금할 수도 있다. 그 궁금함이 잘못이라는 게 아니다. 다만, 당신의 호기심이 상대를 불편하게 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고작 반려동물의 수명 좀 묻는 게 보호자를 괴롭히는 일인지 꿈에도 몰랐다면, 이 글을 읽고 나서라도 그 사실을 알아줬으면 한다. 그리고 누군가 다른 집사에게 그런 무례를 범하려 한다면 옆에서 말려주길 바란다.
내 고양이의 정신연령이 궁금하고, 나와 함께 보낸 시간 또는 보낼 시간을 가늠하고 싶다면 “몇 살이야?”라고 물어보면 될 일이다. 그리고 계산은 당신의 몫이다. 어디든 검색 엔진을 열고, 다섯 글자만 쳐보자. 고양이 수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