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5.18.(토) 부비프에서의 북토크 후기
5월의 셋째 주 토요일 저녁, 작년에 출간한 내 책 <적당히 솔직해진다는 것>으로 부비프책방에서 북토크를 하고 왔다. 대부분은 진행자 없이 내가 홀로 두 시간을 해내야 했기에 평소보다는 더 높은 톤의 목소리로 북토크를 진행하곤 했는데, 이번엔 부비프 사장님인 뮤쿄님이 능숙하게 진행을 해주셨다. 덕분에 한결 차분하게 여유를 가진 상태에서 작가로서의 이야기를 꺼내어 관객들 앞에서 차분히 풀어놓고 올 수 있었다. 책을 낸 건 작년 10월이지만, 그 책에 실린 글은 2019년부터 쓰인 것들이다. 이번 북토크준비를 위해 책을 다시 살펴보고 낭독하는 일이 여간 부끄러운 것이 아니었다. 지나치게 용기가 느껴지는 문장에선 실눈을 희미하게 뜨고서 읽어야 했고 스스로의 글을 부끄러이 여기는 것을 엉뚱한 소리로 눙치며 숨긴 부분에서는 교정기호로 두 줄을 그어놓고 싶어지기도 했다. 이제 와서 고친다 한들 전국 여기저기로 흩어진 책을 없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그러나 내 창작물을 마냥 초라하게 여겨서는 안 될 것이었다. 내 책을 재미있게 읽었다고 직접 소감을 건네준 독자 분들, 이 책을 같이 만드는 데에 기여한 분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책이 처음 인쇄되었던 날 그것을 꼭 품에 안고 황홀해했던 작년 10월의 나를 생각한다면.
숨소리가 느껴지는 관객들 앞에서 떨리는 마음을 가다듬으려 믿을 구석인 뮤쿄님을 괜히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제 시작해도 좋다는 뮤쿄님의 눈 신호에 내 책을 앞 테이블에 소중히 내려놓았다. 그러고선 집에서부터 둘러메고 들고 온 기타를 커버 속에서 꺼내 C 코드를 한번 쓸며 북토크의 시작을 알렸다. 만든 지 10년도 더 된 자작곡인지라 잔뜩 떨리는 목소리와 손으로 겨우 겨우 연주했다.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여유가 있어야 듣는 사람들의 마음도 편할 것인데 나는 엄청 떨어 버렸고. 들통나고만 긴장감은 곧 관객들의 것이 되었다. 어떤 말을 해도 어색할 분위기에서 조심히 말문을 열었다.
“관객 앞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하는 게 정말 오랜만이라 많이 떨리네요. 얘기할 때는 노래할 때만큼 떨지 않으니 걱정을 내려놓으셔도 좋습니다!”
북토크 진행을 맡은 뮤쿄님의 멘트가 이어졌다.
“그래도 작년 출판파티 때 부르신 것보다는 훨씬 여유가 느껴지는걸요! “
맞다. 그때도 나는 기타를 가져와 노래를 불렀다. 심지어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공수해 온 문어 탈을 쓰고서였다. 혼자 하기엔 너무 떨렸던 탓에 대학 기타 동아리 후배였던 S에게 SOS를 친 공연이었다. 안예은 가수님의 “문어의 꿈”을 불렀는데 그것은 가히 “염소의 꿈”이라고 불러도 될 정도로, 희망보다는 애절함을 노래하는 목소리에 가까웠더랬다. 그때나 지금이나 기분은 좋았다. 지금 하는 게 무어든 못하는 걸 싫어하는 나였지만 못 쓰던 글을 쓸 수 있어 열게 된 자리에서 잘하던 노래를 못하게 되는 것 따위는 대수롭지 않았다. 그만큼 새로운 것을 해내는 시간만큼이나 권태를 느끼는 일에 소홀해졌을 뿐이었다. 언제든 다시 잘할 수 있는 일이 그저 하나 늘어난 것에 불과했다.
북토크에 온 관객들의 질문은 내가 쓴 글의 모양과 닮아 있었다. 평소보다 더 내디딘 한 걸음의 용기로부터 비롯된 물음표, 이 질문에 따라올 대답은 한 뼘 더 다정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다는 느낌표 같은 것들이 그러했다. 정확한 표현으로는 기억나지 않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던 듯하다.
“새로운 사랑을 어떻게 알아보고 이내 받아들이나요?“
“솔직해질 용기를 어떻게 내었나요?”
“직업으로서의 교사에 대한 이야기는 왜 책 속에 들어가 있지 않나요?“
“지금의 다정한 사람들을 어디에서 어떻게 만났나요?”
이제 와서 다시 대답한다면 이렇게 말할 거다. <적당히 솔직해진다는 것>에 실은 글들은 어쩌면 내가 보여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특히 잘 보이게 계산된 솔직함 들이었다고. 실로는 아직도 솔직해질 용기를 참으로 내지 못했다고. 차마 종이 위에 쓰지는 못하고 마음속에서만 수십 차례 쓰고 지운 자욱만으로 글이 될 기억들이 있다고. 하지만 그 흔적이 나의 것인지 다른 이의 것인지 헷갈려서, 진짜 내 것을 잘 가릴 수 있게 되었을 때에야 글로 쓰고 싶다고 말이다. 책에 써둔 것보다도 더 많은 말을 하고 싶었을 내 속내를 읽고선 그냥 다 알 것 같다고 눈웃음을 짓는 다정한 이들 속에서, 나는 신중히 패를 고르고 또 골라본다.
가능하다면, 다음 책을 여름이 가기 전에 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