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그램 딥페이크 성착취물에 대한 기사를 읽다가
그때는 해마다 사라지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이 왜 사라졌는지 알아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어른들의 목소리가 갑자기 조용해질 때에 귀를 기울이면 되었기 때문이다. 없어진 자리엔 무성한 소문이 피고 또 피었다.
“글쎄, 그 애 삼촌이 그랬다 하더라고.”
“걔도 평소에 행실이 바르지 않았다던데.”
“아이고 큰일 날 소리를 해. 목소리 낮춰.”
“애 잘못이 아닌들, 이 동네에서 어떻게 낯짝 들고 살겠어. 나 같아도 그러지.”
잘 씻지 않아 친구들 사이에서 따돌림을 당하던 명이(가명)의 얘기였다. 그 아이는 항상 나를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보곤 했다. 머리카락 한 올 삐져나오지 않게 스프레이를 뿌려 바짝 올려 묶은 머리, 매무새가 단정한 옷차림, 선생님과 친구들의 믿음을 한 몸에 받는 아이. 그것이 아마 명이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이었을 것이다. 제대로 된 어른의 보살핌을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보는 게 다인 아이를 행실이 나쁘다고 치부할 수 있는 건가. 어쩌면 명이가 그렇게 사라진 건 어른의 선의를 마지막으로 믿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믿음을 이용한 사람만의 잘못이다. 명이를 돌아오게 해야 했다. 그럼에도 그 아이의 이름은 그 대화를 마지막으로 우리 동네에서 불리지 않게 되었고 그렇게 잊혔다. 마침내 명이라는 아이의 이름을 까맣게 잊은 어른들을 보고서, 나는 두려워졌다. 까딱하면 내 이름도 그렇게 사라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어른들처럼 나도 그런 아이가 있었던가 싶었던 것처럼 안온한 일상을 보내는 데에 익숙해졌던 어느 봄날이었다. 겉으로는 여전히 완벽한 묶음머리에 깔끔하게 옷을 차려입고서는 학교생활에만 전념하는 듯 보였겠지만 속으로는 명이가 사라졌던 봄이 다시 왔구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죄책감이 들었다. 내가 그 아이를 좀 더 챙겨주거나 친하게 지냈더라면, 우리 집에 놀러 오라고 인사를 건네봤다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을 수 있었을까. 어린아이의 깜냥으로 떠올릴 수 있는 경우의 수를 헤아리며 표정이 심각해졌다가도 이내 없던 일처럼 웃으며 깡충깡충 엇박자로 뛰며 선(가명)과 함께 하굣길을 걸었다. 우리는 함께 피아노학원을 다니던 사이였다. 학원 수업이 끝나고 각자의 집으로 향하는 갈림길에 서서 우리는 내일 봐,라고 인사를 나눴다. 그날도 그랬다. 내일 보자고 분명 인사해 놓고선 선은 존재하지 않던 것처럼 없어졌다. 이번의 마음은 저번과 달랐다. 어른들의 조용한 소문이 무성히 피어나기도 전에 내가 속으로 뱉어버린 말 때문이었다.
‘그래도 명이 다음에 내가 아니어서 다행이야.’
그 말은 명이와 선이 없어지듯, 어른들의 낮은 음성이 들리지 않게 되듯, 그렇게 사라지지 않고 아직도 내 속에 남아있다. 비겁한 표정으로 사라지려 할 때쯤이면 또 다른 얼굴을 한 명이와 선이 지옥 같은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스러워하는 일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미 지나 보낸 이름들이 선명해지기 때문이다. 사라지고 묻어서 될 일이 아니었다. 내 앞에서만 사라졌을 뿐 명이와 선은 사라지지 못하고 지긋지긋한 삶을 아직까지도 살아내고 있을 것이다. 죽지 않고 기어코 살아냈을 것이라고 이기적인 마음으로 믿고 싶기도 하다. 3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 와서야 그때의 이야기를 쓰게 된 건 텔레그램 “딥페이크” 성착취 사건 기사를 보면서 선명해진 죄책감 때문일 것이다. 사라져야 하는 건 SNS 상의 일상 사진도, 피해자의 자취도 아니다. 사라지고 싶게 만드는 건 무엇일까. 진짜 사라져야 하는 건 무엇일까. 겨우 이 정도 글을 쓰는 데에 거진 30년이 걸린 비겁한 내가 여러분에게 묻는다. 내 자신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