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폴리탄 코리아] 창간 24주년 <FFF 토크> 후기
잡지 [코스모폴리탄 코리아]의 창간 24주년을 맞아 열린 <FFF 토크, #용감한 여자들> 토크 방청에 운이 좋게 당첨되어 지난 목요일 서울 성수동에 다녀왔다. FFF는 Fun(즐거운), Fearless(용감한), Female(여성), 이 세 글자의 초성을 따서 만들어진 코스모폴리탄 코리아의 캠페인이다. 이 캠페인에 걸맞은 연사들인 김윤아 가수님, 정서경 작가님, 강지영 아나운서님 이렇게 세 분이 오신다고 해서 진심을 다해 쓴 사연과 함께 응모해 봤던 건데 진짜 될 줄은 몰랐다. 인스타그램 채널에서만도 응모 댓글 인원이 족히 6,000명이 넘었기 때문이다. 그중에 단 55명 안에 들어야 하는 운의 영역에 있는 일을 내가 애쓴다고 어떻게 되는 게 아니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토크 당일에 약속은 잡지 않고 캘린더에 토크 일정을 적어놓고는 응모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연락이 온 거다. 신을 믿지 않지만 이럴 땐 이 세상에 있는 온갖 신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땡-큐. 땡큐-. 땡!큐!!
독립출판 북페어 부스를 운영하며 3일 머물렀던 ‘프로젝트렌트 올드타운점’ 3층짜리 건물에 잡지 주관 행사를 들으러 오니 감회가 새로웠다. 건물 전면에는 아주 큼지막한 글자가 인쇄된 핑크색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 FFF TALK _ #용감한 여자들 ]
검색 창에 여자, 여성이라는 말을 검색해서 기사를 읽다 보면 그 끝을 모르고 무력해지는 요즘이었다. 이런 날에 마주하게 된 커다란 현수막은 요상하게 힘이 됐다. 훗날 유물로도 남지 않았으면 하는, 수상한 “여자다움”을 걸음마와 함께 배워온 내가 이렇게 공식적으로 용감한 여자들을 만나러 가게 되는구나, 이제는 세상이 진짜 바뀌어가고 있구나, 싶은 생각에 신이 나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내 신념과 어긋나는 일을 이해가 안 되면 할 수 없어서 손을 들고 “왜 그렇게 해야 하나요. 이해가 잘 안 가서요.”라고 묻던 때의 내 표정을 지어보았을 이들이 잔뜩 있는 행사장에 한 발을 들여놓는 게 부끄럽기도 했다. 용기라곤 쏙 빠져 흐물흐물한 고무풍선 같은 상태였던 지라 여길 들어가는 데에도 질끈 눈을 감고 발을 내딛는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실로 난 보이는 것보다 용감하지 못하다. 응축된 용기를 뽑아 폭주기관차처럼 변화를 향해 내달리다가도 종착지에 가까워지면 생각을 바꾸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진이 다 빠져 끊어진 기찻길을 더 만들 생각은 못하고 철저한 계산에 따라 속도를 늦추어 안전한 자리에 멈추기 일쑤였다. 용기를 냈다는 개운함과 일상을 지켜야 한다는 비겁함 그 사이를 헤매며 이미 만들어진 레일 위에서 계속 살아있기만 했을 뿐이다.
행사장 안으로 어물쩍 어물쩍 들어서자 용감한 만큼이나 다정한 사람들의 환대가 격렬하게 이어졌다. 포토라인에서 사진을 찍는 그 짧은 시간에 내가 쌓아온 용기의 순간들이 겹겹이 떠올랐다. 갑자기 벅차오른 마음에 하늘로 둥둥 떠오를 듯 기분이 화사해지는 것 아닌가. 아마 대륙의 기상에도 밀리지 않을 듯한 잡지사 관계자 분들의 눈을 마주치는 사이 그들의 호방한 기운이 내게 전해졌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향기로운 냄새를 코로 좇아 바라보게 된 무대 옆쪽에는 예쁘면서 맛있기까지 한 핑거푸드가 쫘라락 준비되어 있었다. 딱 보니 할리우드 영화의 한 장면과 같이 와인 잔을 기울이며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는 위치였다. 따라 해 보는 상상만으로 귓불이 뜨거워졌다. 얼른 내 몫을 챙겨 와 익숙한 자세로 허벅지 위에 그릇들을 올려두고 등이 굽은 상태로 아주 맛있게 핑거 푸드를 해치웠다. 물론 오며 가며 여러 번 그릇을 채워 먹었다. 많이 먹어도 눈치 보이지 않게끔 요리사님들이 계속 배식대를 채워주셨다. 옛날 어느 전래동화였나. 병든 부모를 돌보는 이에게 쌀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맷돌을 산신령님이 선물해 줬다는 이야기 말이다. 마치 그 이야기를 처음 읽었을 때처럼 뱃속도 마음도 든든한 상태로 토크를 들을 수 있었다.
다른 행사에 참여했을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일부러 토크 내용을 꼼꼼하게 메모하면서 듣지는 않았다. 좋은 풍경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사진으로 남기지 않는 것과 같은 이유에서였다. 너무 황홀하면 눈을 뗄 수가 없고 귀를 닫을 수가 없고 입도 안 벌릴 수가 없다. 나처럼 외출을 않는 집순이가 언제 또 밖으로 나와 이 귀한 분들을 한 자리에서 보겠나 싶기도 했다. 그러한 이유로 그냥 보며 듣는 데에 집중하려 했다. 많은 이들을 대상으로 공식적인 말하기를 하느라 결국엔 정제된 문장을 다룰 연사의 눈동자에는 진짜 하고 싶었을 이야기가 있을 터였다. 그 깊은 속을 이해해보려 했다. 막상 토크 때 아이폰 메모장에 띄엄띄엄 급히 적어둔 내용(명언은 못 지나침)을 기반으로 글 한 편을 적으려니 어느 것이 어느 분의 말씀에서 비롯한 것인지가 명확히 구분이 안 갔다. 그래서 몇 안 되는 메모들을 그냥 합쳐서 나의 말로 다시 적어보려 한다. 그 점을 참고해서 아래 이야기를 읽어주면 더욱 좋겠다. (아마 잘 가공된 형태의 기사는 [코스모폴리탄 코리아]에서 원문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첫 순서는 밴드 자우림의 리더이면서 동시에 솔로 아티스트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김윤아 가수님이었다. 이번 토크의 진행을 맡으신 이랑 가수님 역시 음악인이셔서 특히 음악에 대한 질문의 깊이나 김윤아 님의 대답에 대해 공감하는 정도가 농밀하시더라. 이랑 가수님은 이번 진행이 처음이라 서툴다며 영 쑥스럽다고 하셨다. 앞으로 이랑 님과 같은 멋진 여성에게 두 번이고 세 번이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져야 여자들의 진짜 대화가 더욱 늘어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 나로서는 활짝 웃으며 잔뜩 응원하게 될 뿐이었다. 이랑 님에 MC 제의를 한 잡지사 관계자분들, 두려운 처음을 수락하고 멋진 두 번째를 곧 맞이할 이랑 님께 그저 큰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었다. 두 가수님이 말하지 않고도 서로의 고난을 알아채는 것 같은 어느 몸짓에서는 나 역시 지난 동료선생님들과 함께한 시간을 떠올리게도 되었다. 그건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견디며 자신의 일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 주고받을 수 있는 격려와 이해였다. 어느 침묵 후, 윤아 언니는 계속 일을 하다 보니 어느새 스스로의 삶이 선례가 되었다고 또렷하게 말했다.(갑자기 언니라고 부름. 존경합니다. 윤아 언니.) 이랑 님은 멋진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고. 그 부분에서 백 마디 말보다도 하나의 삶으로 살아내어 보여주면 되는 거구나, 하고 깨달음이 세게(씨게) 왔다. 그리고 내가 알던 것보다도 앞의 두 사람이 훨씬 커다랗고 단단한 존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GMO(유전자 재조작 식품)로 행성만큼 거대해진 알감자 같았달까.
“노래가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요.”
윤아 언니의 말 끝에서 허무함과 공허가 느껴졌다. 집에 돌아오는 내내 곱씹게 된 그 말. 그럼 노래는 뭘 할 수 있을까, 노래가 나에게 준 건 뭐였나, 노래가 한번 재생되고 끝나는 노래이기만 했다면 내가 노래를 지어 부르기까지 했을까, 계속 고민을 하다가. 문득 윤아 언니에게 꼭 전해주고 싶은 말이 떠올랐다.
“노래는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을 반복하며 살려요.”
불이 다 꺼지고 혼자 남은 밤에도, 환한 대낮에 울 곳을 찾는 이의 어느 장면에서도. 때마침 들리는 어떤 노래가 한 사람을 겨우 살리고. 그 사람은 또 세상을 바꿀 결심으로 삶의 의지를 닦을 거다. 언니의 노래를 듣고 살았던 내가 그랬듯. 그러다 오늘 들은 언니의 이야기 덕분에 하루를 무사히 일해볼 용기를 쌓는 지점에까지 이르렀다고 말이다. 이 말을 이 글로라도 꼭 전해주고 싶다. 그러니 부디 언니는 계속 노래해 달라고.
(+) 다음 연사였던 정서경 작가님, 강지영 아나운서님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이어 써보겠다!
그 이유는 쉬고 싶어서다. 난 쉬겠다고 말할 수 있는 “용감한 여자”니까. 하하하.
(급 공손) 그럼 다음 이야기도 기대해 주세요. 2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