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ookphoto Sep 18. 2024

여자다움: 유쾌하고 용감함. (2)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창간 24주년 <FFF 토크> 후기

잡지 [코스모폴리탄 코리아]의 창간 24주년 기념으로 열린 <FFF 토크, #용감한 여자들>에 다녀온 후기를 지난주 글에 이어 적어 본다. 두 번째 연사는 시나리오를 쓰는 정서경 작가님이셨다. 작가님은 아주 내향적인 편이셔서 이 강연에 연사로 서기 위해 한 달 치의 에너지를 끌어 모아 오셨다고 했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에 비해 높은 톤의 경쾌한 목소리와 해사하게 밝은 표정을 짓고 계셔서 이 자리에 모인 청중들을 위해 애쓰시는 중이라는 걸 그득 느낄 수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청중을 천천히 살피시고는 연사를 위해 배치되어 있던 의자 쪽으로 아주 작은 점프를 하며 폴싹 앉으시는 모습에서 엄청난 귀여움이 느껴졌다. <친절한 금자씨>, <아가씨>, <헤어질 결심> 등 다수의 대작을 쓴 작가님을 귀엽다고 느끼는 것이 타당한가에 대한 의문은 토크가 시작되면서 곧장 해소되었다. 아래 대화는 여러 대화를 하나로 모은 것이다.

“작가님, 여기 모인 분들을 위해 조언이나 격려의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남이 하는 조언을 안 듣는 편이라서요. 그런 제가 조언을요? 그리고 격려요? 진짜 격려가 필요한 건 난데..?!”


역시나 무지 귀여우셨다. 입을 헤- 벌리고 감탄하게 되었다. 작가님의 대답은 마치 내가 수업시간에 큰 기대 없이 던진 질문에 아주 기발한 대답을 한 학생의 것과 결이 닮아있었다. 분명 그 매력은 계산 없는 솔직함에서 기인했을 터였다. 다른 사람이 자신의 말과 행동에 대해 어떻게 판단할지를 염려해 가짜를 섞은 답을 내놓지 않는 데에는 용기가 따라야 하는 법. 매력적이면서도 선을 넘지 않는 사람이 요즘 나의 추구미인지라, 그런 작가님을 흠모하는 표정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 뒤에는 솔직함과 내향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다. 극도로 내향적인 사람이 글, 그림과 같은 예술을 할 때에 더욱 솔직하고 기발한 표현을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혼자만의 공간이기에 낯을 가리지 않고 묵묵히 작업하는 게 가능했던 작품을 세상 모두에게 선보였을 때의 그 짜릿함을 나 역시 좋아한다. 서툴지 않게 유쾌하면서도 무리 없이 용감해지는 건 분명 혼자 있을 때였다. 작가님의 말씀처럼 ‘스스로 생각해도 솔직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쓰려면 혼자 있는 시간을 잘 보내야 할 거다. 지는 해보다 뜨는 해가 반가워지도록.


금세 정서경 작가님의 시간이 지나고, 강지영 아나운서님의 차례가 왔다. 아나운서님이 뉴스룸이 아닌 현장에서 취재를 하여 눈길을 끌었던 JTBC <정치부회의>는 내가 퇴근 후에 잘 챙겨보던 프로그램이었다. 그땐 대구에서 막 홀로 자취를 시작했을 무렵이다. 다른 정치 프로보다 유쾌한 편이라 라디오처럼 틀어놓고선 쓸쓸하지 않게 미뤄둔 집안일을 했던 기억이 난다. 프로그램 소재는 꽤나 심각한 시사 이슈이지만 시끌시끌한 패널들의 웃음소리가 중간중간 들려 명절날 친척들의 대화를 듣는 것도 같았다. 다른 일을 하다가 뭐에 홀린 듯 티브이를 보게 되는 건 강지영 아나운서님의 발성과 정확한 발음에 이끌려서였다. 대부분 기자 출신인 다른 패널들에 비해 아나운서님의 목소리는 명확하게 들렸고, 방송가에서 보통 듣게 되는 여성의 목소리와는 달리 무게감이 있었다. 그게 좋았다. 아마도 그 영향을 받았는지 교사라면 “솔” 음을 유지하며 밝게 말해야 한다는 암묵적인 규칙을 깨고선 내 원래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 유쾌하고 용감한 목소리의 주인에게도 이 길이 맞나 싶은 수년이 있었다고 했다. 그 속내를 듣자 조회 수를 좇아 만들어졌을 유튜브 썸네일, 제목만으로 아나운서님을 궁금해하지 않았던 시간들이 아쉬워졌다. 실제로 마주하니 프레임 안에서는 절대 형용할 수 없을 큰 아우라가 느껴졌다. 지금까지의 일해온 시간만큼이 다시금 지났을 때에 이 사람은 또 어떤 모습이 되어있을까. 내게 그런 희한한 궁금증을 솟게 하는 사람들을 아주 가끔씩 만나는데 이 분이 그러했다. 고된 야근 후에 달려와 이어진 오랜 일정에 힘들 텐데도 구석진 청중의 시선에 닿을 때까지 미소를 거두지 않는 그를 오래 응시했다. 그리고 제게도 그 기운을 주세요, 하고는 조용히 바랐다. 마치 큰일을 앞두고 큰 산에서 불공을 드리는 사람처럼.


다음 순서로는 진행자 이랑 님, 김윤아 가수님, 정서경 작가님, 강지영 아나운서님을 한 자리에 모시고선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다. 기똥찬 질문을 해서 앞에 있는 연사 분들에게 기억되고 싶은 욕심이 들었다. 이런 엉뚱함은 어디에서 오는 건지, 엄청 손을 들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그동안 여러 행사를 다니면서 만난 내 기준 현인들에게 많이 물어보기도 했고. 내가 물어보고 싶은 대부분의 답은 내 속에 이미 들어있어서였다.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은 게 아니라면 오늘 처음으로 용기를 내어 손을 든 사람에게 마이크가 쥐어질 수 있도록 입을 다물 줄 아는 것, 그것 또한 “용감한 여자들”의 덕목이 될 수도 있었다. 혼자 용감해졌다는 착각에 빠지지 않고 함께 용감해지려면 말이다. 그러니 그때 내 속에 품어둔 질문을 여기에 적어보고 그저 만족하기로 한다. 잡지 [코스모폴리탄 코리아] 창간 “24주년”을 활용해서 만든 질문이다. 연사 세 분을 포함해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직접 살아내는 대답을 권한다.



[ Next 24? ]


[ 다가올 24년을 어떻게 보낼 건가요? ]

매거진의 이전글 여자다움: 유쾌하고 용감함.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