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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먼드 마운틴 Nov 09. 2019

어른이 되어서도 일하면서 혼난다

“힘들다고 징징대지 말고 밤을 새서 해봤어?"

“일 제대로 못해. 빨리 해서 보고해.”라는 압박이 계속 들어온다. 일이 더디면 더 심하게 질책 받는다. 회사는 봐주지 않는다. 오늘도 이사실로 불려가 혼나고 나온 관리자가 ‘이러다 속병날 것 같아.’라며 혼잣말을 한다.


나는 내가 할 수 없는 역량선을 넘기지 않으려고 하지만, 관리자가 해 놓은 업무 설거지까지 하느라 고달프다. 그렇다고 그를 탓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연봉 조금 받다가 죽으면 나만 손해라는 생각은 해본다. 어쨌거나 한 달이 정신없이 가고 월급날이다.


나는 한숨을 쉬며 옆에 있는 동료에게 말한다. “급여 받는 날이 좋긴 한데, 이번 달도 통장 스쳐가는 날이네.” 관리자가 지나가다가 그 말을 듣고, 고생했다며 오늘 술 한 잔 사겠다고 한다.    

  

내 눈에 비친 관리자는 성품 좋은 사람이다. 동료 여직원과 외근 나갈 때, 여직원의 무거운 가방을 매번 들어준다, 여직원이 됐다고 해도 이 무거운 가방을 들게 할 수 없다며 어깨에 멘다. 그래서인지 여직원들에게 인기가 많다. 옷 잘 입지, 매너 있지, 단지 하고 있는 일이 안 맞아 고단할 뿐이다.


관리자는 외근 나갔다가 돌아와서 오늘도 바로 이사실로 불려 들어갔다. 또 혼나러 들어간다는 것을 직원들은 안다. 신입 여직원이 중얼거린다. ‘어른이 되어도 일하면서 매일 저렇게 혼나는 구나.”    


관리자는 자신의 윗관리자인 이사 앞에 섰다. 관리자는 이사에게 또 무슨 말을 들을지 머릿속이 멍하다. 이사는 관리자가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던지듯이 놓으며 말한다. “힘들다고 징징대지 말고 밤을 새서 해봤어? 나는 정신없이 일만 했는데, 유(you)는 노느라고 정신없었느니 이 모양이지.” 관리자가 나름 변명을 하자 이사가 말한다. “왜 핑계를 대냐고. 유는 그게 문제야. 알아?” 이 정도까지는 관리자도 미안한 마음으로 듣는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이사는 일만 가지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질책하면서 초점이 빗나가기 시작한다. 일처리의 잘잘못만 따지면 되는데, 그러니 승진이 늦지, 월급 값은 해야지, 머리는 모자만 쓰라고 있는 것이 아니다, 호구로 달고 다니느냐, 전임자는 이랬는데 너는 이것도 못하느냐는 등 두뇌 속 여과장치를 상실한 채, 업무와 전혀 관계없는 말들을 쏟아내는 일이 다반사다.     


지금의 이사는 내가 이 회사오기 직전의 책임자와 사뭇 달랐다. 여자 팀장하고 1년여 간 함께 일한 적이 있었다. 여자 팀장은 업무에 있어서도 철저하지만 직원들을 존중해주기로도 알아주었다. 소위 말하는, 나이 먹은 티를 안내고, 직원들에게 예의를 다 했다. 회사에서는 업무 얘기 이외에 사적인 지적을 하지 않았다. 반말도 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직원들도 여자라고 무시하지 않았다. 팀원들은 이렇게 애기했다. “저도 40대가 되면 팀장님처럼 되고 싶어요.”


한번은 직원들 간에 칭찬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다. 여기서 여자 팀장은 직원들에게 이런 칭찬 메시지를 받았다. <열정적이다, 페셔널하다, 우아하다, 예의 바르다, 순수하다.> 

나는 회사를 나오면서 팀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팀장님은 득도의 경지에요. 참 깊어요. 너그럽고 딱 이상적인 상사타입이다,”     


이사의 큰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면 밖에 있는 직원들은 이렇게 말한다. “또 시작이군.” 이사는 좋은 말이든 안 좋은 말이든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꼭 내뱉어야 하는 사람이다. 업무가 느리거나 능력이 부족한 직원이라도 그런 말까지 들을 이유는 없다. 이사에게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은 딴 세상 얘기다. 그렇게 한소리를 듣고 나온 관리자를 여직원이 커피를 가져다주며 위로해 준다.


조직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그를 다른 부서로 발령 내려고 하자, 그가 먼저 사표를 냈다. 그는 지인의 소개로 지방에 있는 유통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유통을 배워서 장사를 하고 싶다는 게 그의 포부였다.     


관리자는 일 잘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일 외에는 나무랄 게 없다. 몇 개의 장점을 더 추가하면, 외모 되지, 키 크지, 사람 좋지, 거기다가 유머까지 갖추었다. 하지만 회사는 그런 사람을 원하지 않았다.


관리자가 회사를 그만두고, 일주일 후에 전화가 왔다. “여기오니까 정말 살 거 같아. 언제든지 내려와. 우리 지역 맛집 데려가서 풀코스로 쏠게.” 그는 나에게 일 잘하는 선배는 아니었지만, 친절하고 인성 좋은 사람이었다. 유통을 해보고 싶어 했으니, 이직한 회사에서 역량을 발휘하기를 바랄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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