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력사에 들러 중동시장 상황을 자문해주고, 거기서 바로 퇴근해서 나오려할 때였다.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에 뒤돌아보았더니, 맨 앞줄에 앉아 질문도 했던 젊은 남자직원이었다. “팀장님, 이거 가시다가 드세요. 목이 아프실 것 같아서요.”
그가 내민 것은 목캔디였다. 중간에 내가 몇 번 헛기침을 했더니, 그게 안쓰러웠던 것일까. 비싼 선물이 아니라 너무도 고맙게 받았다. 그의 이름을 기억했고, 그의 첫인상은 목캔디였다.
그렇게 기분 좋게 목캔디 하나 입에 넣고, 지하철을 탔다. 퇴근시간임에도 사람이 붐비지 않았다. 우리 직장인들은 “전생에 나라를 구한 사람만이 출퇴근 시간에 지옥철에서 앉아 갈 수 있어.”라고 우스갯소리로 말한다. 이날이 나라를 구한 날인가. 운 좋게도 앞에 앉은 사람이 바로 내리면서 앉아갈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 폰에 눈이 가 있었고, 내 옆에 있는 여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껌을 씹으며 신나게 게임을 하고 있었다. 전공서직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대생인 듯 했다.
‘전공서적은 폼으로 가지고 다니나.’ 그냥 느낌이 뭐랄까, 행실이 발라 보이지는 않았다. 이것도 일종의 선입견이다.
몇 정거장을 갔을까, 좌측에서 남자의 큰 목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젊은 것들이 틀렸어. 새파란 것이 양보안하려고 눈감고 자는 척 하고 말이야.”
고개를 돌려보니, 10시 방향의 젊은 여성이 노약자 좌석에 앉아 있고 그 앞에 아주머니 같은 할머니 한분이 서 있었다. 요즘은 할머니, 할아버지라고 부르기에도 건강한 분들이 많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60대 할아버지였다. 가만히 계셨으면 점잖은 할아버지라고 생각했을 텐데, 말투에 예의가 없었다. 가볍게 술 한 잔 하셨는지, 얼굴이 붉고, 목소리에 취기가 있었다.
상황을 보니, 젊은 여성이 앞에 서있는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 안한다는 불만의 소리였다. 30대 초반의 여성은 할아버지 소리에 눈을 떴고, 뭔가 불안한 듯 표정이 안 좋았다.
나는 ‘할아버지도 좀 좋게 말씀하시지, 여성을 너무 무안하게 하네. 그리고 할아버지가 저렇게까지 하는데, 여성도 웬만하면 자리를 양보하지.’라는 생각을 했다.
할아버지의 나무람은 거침없이 계속됐고, 사람들의 시선이 할아버지와 여성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래도 여성은 잃어날 생각이 없는 듯 했다.
이때 내 옆에서 게임을 하던 여대생의 또렷한 음성이 들려왔다.
“선생님, 저분은 임산부입니다.”
여대생의 말이 마이크방송 되듯, 주변에 울려 퍼졌다. 아저씨도, 할아버지도 아닌 선생님이라고 하면서 존중을 담고 있었다. 일순간 주변이 조용해졌다.
웅성웅성하던 소리도 멈추었다. 이기적이면서 자기만 생각할 것 같았던 이 여대생은 한 번 더 강조했다.
“선생님, 저기 가방에 매달린 임산부 마크 안 보이세요? 저분은 임산부입니다.”
나이는 못 속인다. 내 눈이 여대생의 눈을 못 따라갔다. 시력도, 시야도 말이다. 나도 미처 가방까지는 신경 써서 보지 못했다. 여대생의 말에 가방을 눈 여겨 보았다. 마크 하나가 흐릿하게 눈에 들어왔다.
가방에 달고 있는 메달에는 분명히 임산부를 표시하는 마크가 있었다. 그 마크만 아니라면 배도 안 나와 보이니 임산부라고 생각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임산부가 일어나지 못했던 이유는 할아버지의 큰소리와 주변의 시선에 당황스럽고 부담스러워 아무런 반응을 못했던 것 같다.
여대생의 말에 방금까지도 나무라듯 소리 질렀던 할아버지 목소리가 쏙 들어갔다. 상황이 정리되자 주변 사람들의 긴장과 불안했던 얼굴이 편안한 얼굴로 바뀌었다. 내 옆의 여대생도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게임을 계속 했다.
사람들은 첫인상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첫인상이란 말, 눈빛, 얼굴표정, 옷차림, 걸음 거리 등의 행동 등의 태도와 관련 있다. 우리는 소개팅에 나갈 때, 면접 보러 갈 때, 첫인상에 상당히 신경 쓴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다. 이러한 첫인상을 내가 만들고 꾸밀 수 있을까?
생각해보면 가능할 것도 같지만, 첫인상은 내가 의도적으로 만들고 꾸미기가 힘들다. 있는 그대로다. 단지 잘 보이려고 하는 마음이 아니라, 어떤 의도를 갖고서, 상대를 속이려 작정하고 다가오는 경우를 제외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