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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드먼드 마운틴 Jul 19. 2021

작고, 느리고, 세지 않아도, 다 가진 그들

모험의 시작

바다 위로 붉은 태양이 떠오른다. 이 장관을 보기 위해, 바다 생물들이 한껏 기지개를 펴고 수면위로 뛰어오른다. 부지런한 녀석들만이 짧은 순간을 놓치지 않고 일출을 볼 수 있다. 부지런할 뿐만 아니라 영리하기까지 하면, 이 시간을 기다렸다가 튀어 오른다.


이 광경을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바다 생물들도 있다. 게을러서가 아니다. 수면 위로 고개를 내밀어 본적이 없기 때문에 태양의 존재를 모른다. 바다 외에 다른 세상이 있다는 생각을 못한다.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이 있다. 여기 대한민국 완도 앞바다에도 작은 생명체들이 살고 있다. 수심 30여 미터 바위 곳곳에 붙어서 생활하고 있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오랜 시간 동안 움직임이 없다. 이들은 헤엄치며 다니지도 않는다. 서로 싸우지도 않고 다른 생물을 해치지도 않는다. 평화주의자의 면모를 갖추었다. 먹이로는 플랑크톤이나 맑고 영양이 풍부한 해조류만 먹는다. 채식주의자의 상징이기도 하다.   

   

이 생명체들 중에 결명이가 있다. 결명이는 아빠, 엄마의 얼굴을 모른다. 아빠에게서 뿜어져 나와 물속을 떠다니다가, 엄마가 낳은 물질과 얼떨결에 하나가 되었다. 결명과 모습이 같은 생명체는 모두 그렇게 태어나고 자랐다. 결명은 어려서부터 엉뚱했다. 생각이 남다르고 상상력이 풍부했다. 같은 종족 중에서 지능이 꽤나 높았다. 다른 생명체들은 관심도 없는 질문을 하고 다녔다.


예를 들면,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지, 행복해지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 바다는 어떻게 생겨났는지 같은 질문이었다, 결명의 특이점은 또 있었다. 좋은 시력을 타고났다. 이 생명체들은 가까운 물체를 겨우 흐릿하게 볼 수 있는 정도였다. 결명은 멀리 있는 물체도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결명은 자라면서 자신의 운명과 관계된, 두 가지를 알았다. 커다란 껍데기(패각)가 자신을 계속해서 덮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성장하면서 껍데기도 동시에 커졌다. 처음에는 껍데기를 뒤집어쓰고 있는 게 부담스럽고 고통스럽기까지 했다, 껍데기 때문인지 빠르게 나아가지도 못했다. 그러다가 생각을 바꾸어, 연약한 자신의 몸을 보호하는 방패로 여기며, 순응하고 받아들였다. 또 하나는 지느러미가 없어서 생태적으로 자유롭게 헤엄치는 것이 불가능 했다. 그러기에 본능적으로 딱딱한 표면에 달라붙어 살아갔다. 이런 본능 때문일까. 결명을 비롯해서 이 생명체들은 서로서로 자신의 딱딱한 등(껍데기)에 올라탈 수 있도록 내어주었다.    


결명에게는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란 친구가 있었다. 공라다. 공라가 뒤집혀 있을 때, 결명이 빠르게 도와준 일을 계기로 친하게 되었다. 이들 생명체는 뒤집혀서 오래 있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자신의 힘으로 일어나거나, 도움을 받아야 살 수 있었다. 결명은 처음부터 공라가 자신과 잘 통할 거라는 느낌을 받았다. 공라도 왠지 결명이 낯설지 않고 친절해서 좋았다. 공라 또한 다른 생명체가 갖지 못하는 뛰어난 능력이 하나 있었다. 신비한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렀다. 공라의 노래를 들으면 마법에 걸린 것처럼 모두를 하나가 되게 했다. 결명과 공라는 함께 해조류를 먹거나, 서로의 등에 올라타 의지하며 살아갔다.      

어느 날, 결명이 공라에게 다가와 물었다.

무슨 생각해?


응. 내 모습을 생각하고 있었어. 결명아, 우리는 왜 이렇게 느린 걸까? 내가 생각해도 너무 느려서 답답할 때가 있어. 우리는 물속을 자유롭게 다닐 수 없잖아. 쟤들 봐. 엄청 빨라. 아무 곳이나 자기들이 가고 싶은 데 갈 수 있어. 부러워 죽겠어. 한 번은 지나가는 물고기에게, 너는 어떻게 그렇게 빠르냐고 물었어. 그랬더니, 전복아, 나는 네가 더 부러운 걸, 이렇게 말하고 가버리는 거야. 무슨 말이 그러니. 결명아, 너는 나처럼, 이런 고민한 적 없어?

너무 느리고 마음대로 헤엄칠 수 없는 공라는 평소에 물고기를 부러워했다. 자신은 왜 이렇게 태어났는지 원망스러울 때도 있었다. 공라의 얘기를 들은 결명은 자신의 생각을 얘기했다.


왜 나라고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겠어. 하지만 지금의 우리들 모습이잖아. 받아들여야해. 공라야. 바다세계에서 대대로 전해오는 이야기 알고 있지?

뭐?

바다 신에게 노여움을 사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말이야.

아, 그거, 알고 있지. 원래 우리도 헤엄을 잘 쳤는데, 자기뿐이 모르고, 서로 무시하고, 불신해서 바다 신이 화가 났다지. 그래서 헤엄도 못 치게 하고, 서로서로 안아주며 살아가라고 이렇게 만들었다고 하잖아.

잘 알고 있네. 우리를 덮고 있는 이 껍데기도 없었어. 머리와 몸이 있고 다리가 네 개 달린 아름다운 모습이었다는 것도 알고 있니?


거기까지는 잘 몰라. 더 알고 있으면 얘기 해줘.

원리 우리 몸이 부드러운 살로 되어 있고, 그 안에 뼈가 있었어. 몸통은 머리의 세배 정도 되고, 다리는 위에 두개, 아래에 두 개가 길게 뻗어 있는 모습이었어. 몸통이 크거나 강한 이빨을 가지지는 못했어도, 바다생물 중에서 머리가 가장 뛰어났었대. 그러데 그 머리가 점점 교활해지고, 욕심이 많아지고, 우리들끼리도 편 갈라서 싸우기 시작했다는 거야. 이렇게 바다의 질서를 심각하게 위협하니까, 바다신의 노여움을 받아서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어버렸다는 거지. 머리, 몸통, 다리 다 없애고, 이것을 하나로 합쳐서, 웃는 입만 남겨놓고 바깥에 껍데기를 씌운 거지. 웃는 모습으로 평생을 조용하고 평화롭게 살면서, 잘못을 뉘우치라는 의미로 말이야.    

정말, 그런 일이 있었구나. 결명이 너 머리가 좋다고 하더니 자세하게 기억하고 있네. 그런데 이건 전설 같은 이야기지, 사실이 아니잖아.


사실이냐 아니냐가 뭐가 중요해. 지금 우리들이 그 이야기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지. 그리고 이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 전복의 삶과 대대로 함께 할 거고.

그런가. 네 말도 틀린 거 같지는 않다.

공라야, 이젠 내 생각을 말해줄게. 나도 우리 모습이 왜 이럴까 하고 고민하다가 이런 추측을 해보았어.

어떤 추측인데?

그러니까 아마도 우리가 전복 이전의 삶이 있었다면, 굉장히 바쁘게 움직였던 생물이었을 거야. 빠르게 왔다 갔다 하는 저 물고기처럼 말이지. 너무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그렇게 정신없이 살다 보니, 한 곳에 가만히 지내는 생물이 부러웠겠지. 그래서 너나 나나 전복으로 태어나지 않았을까. 네게 부럽다고 말했던 그 물고기도 그런 의미에서 그렇게 말했을 거야. 아마도 그 물고기는 다음 생에 우리 같은 전복으로 태어날 지도 몰라.


호호. 넌 정말 엉뚱하면서도 재치가 있어. 네 말대로 정말 그런 걸까. 하긴 내가 원하는 걸 모두 가지면서 살 수는 없겠지. 그래도 솔직히 나는 저 멀리 바다도 가보고 싶고, 무엇이 있는지 확인도 하고 싶고, 궁금할 때가 많아. 죽기 전까지 이루어질 수 있을까, 포기하며 살아야만 하는 걸까, 이건 꿈이야, 나의 희망일 뿐이야,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  

공라야,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사실 나도 저 바다가 왜 궁금하지 않겠어. 나도 말이지, 소망이 있다면, 저 바다를 원 없이 돌아다녀보는 거야. 우리가 모르는, 많은 게 있을 거 같아. 그래서 하는 말인데, 공라야, 내가 네 희망, 꼭 이루게 해줄게.     


결명은 아무런 방법도 없으면서, 덜컥 공라에게 약속해버렸다. 무슨 확신인지는 몰라도, 분명이 저 바다를 여행할 수 있는 어떤 행운이 찾아 올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라는 결명의 말에 기분이 좋아졌다. 공라는 결명의 이런 면이 마음에 들었다. 다른 전복들은 관심도 없는 거에 관심을 보이고, 무엇이든 도전하려는 정신이 있었다. 그런 점에서 자신과 많이 통한다고 생각했다. 공라는 결명에게 고마움을 느끼며 말했다.

결명아, 말만 들어도 벌써 저 바다 속을 헤엄치는 거 같아. 가끔 답답해서 그런 거지, 나도 지금의 내 모습과 생활이 싫은 건만은 아니야. 저기 전복들을 봐. 혼자서도 잘 놀잖아. 얼마나 조용하고 평화롭니. 외로움이 무엇인지도 모르게, 삶을 즐기고 있어.  


결명과 공라 주위에는 많은 전복들이 바위 곳곳에 붙어 있었다. 버럭 화를 잘 낸다는 버럭이가 보였다. 한숨을 잘 쉬는 한숨이와, 들어도 아랑곳 하지 않는 아랑이도 있었다. 결명과 공라가 살고 있는 이 곳은, 전복의 집단 거주지인 전복밭이었다.  

이때 한 무리의 물고기 떼들이 빠르게 헤엄치며 지나갔다. 그 물살이 결명과 공라가 있는 곳까지 밀려왔다. 결명이 공라에게 말했다.      

공라야, 물속을 가만히 구경하고 있으면 얼마나 재미있는 줄 아니. 어떤 얘는 크고, 어떤 얘는 작고, 색깔이 알록달록해서 예쁜 얘도 있지만, 정말 못생긴 얘도 있다. 너도 가만히 지켜봐. 이것도 꽤나 흥미로운 광경이야. 그리고 물고기의 자유로움을 부러워하지 말고, 우리의 자유로움을 맘껏 즐기며 살자. 공라야. 나는 내 자신이 너무 좋아. 느린 것도, 생긴 것도, 잔인한 폭력성이 없는 것도. 내게 집중하니, 내가 너무 행복해. 그래서 사는 게 재밌어. 우리는 작아도, 느려도, 힘이 세지는 않아도, 다른 생물 하고는 비할게 못돼. 나는 늘 이렇게 생각하곤 했어. 우리는 최고야. 자신감을 가지자.      


결명의 얘기에 공라는 결명과 같은 마음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다른 생물들을 바라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공라의 마음을 알았는지, 결명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는 전복, 바다의 전복, 눈을 떠라. 바다가 보인다,

우리는 전복, 바다의 전복, 눈을 감아라, 마음이 보인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 우리는 언제나 친구, 우리는 언제나 전복.     

이 노래는 전복이면 다 아는 노래다. 전복의 전복 이전 세월부터 내려온 노래다. 생태적으로 움직임이 느린 전복은 이 노래를 통해 서로를 격려했고 용기를 주었다. 결명의 노래에 공라도 신이 나서 몸을 좌우로 흔들면서 호응을 해주었다. 결명이 노래를 다 부르고 나자 공라가 말했다.      

결명아, 너는 말은 잘하는데 노래는 못 부르는 거 같아. 네가 이 노래를 부르면 이상하게 들려. 우리 노래 연습 좀 하자. 호호호


공라의 웃음에 알았다고 하면서 결명도 환하게 웃었다. 그리고 말했다.  

공라야, 내가 노래를 이렇게 못하는 줄 이제야 알았어. 네가 전에 혼자 노래 부르는걸 우연히 들었어. 정말 무언가가 나를 감싸고 있는 듯이 황홀했어. 그런 기분 처음이었어.  

그랬구나. 난 노래 부르는 게 좋아. 노래를 부르면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감도 생겨. 아, 이런 게 노래의 힘이구나를 느껴.

그렇게 결명과 공라가 서로의 고민과 생각을 나누는 동안, 바다세계의 평화로운 며칠이 흘렀다. 결명은 지나가는 병어무리에게 큰소리로 저 바다에 무엇이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렇게 세 번을 물어보자, 그때서야 친절한 병어 한 마리가 말했다.

전복아, 저 바다는 나도 못가 본 곳이 많아. 끝도 없다고 해. 신기한 생물도, 아름다운 광경도 볼 수 있지만, 좋은 것만은 아니야. 우리 같은 약한 생명체를 노리는 강한 놈들이 있으니까, 힘이 없으면 어디가나 위험할 수밖에 없어. 그런데 사실 더 위험한 건, 이 바다 속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있다는 거야.


다른 세계라니? 우리 바다세계 말고, 다른 세계가 또 있다는 거야?

응. 나도 돌아다니면서 들은 얘기야. 땅의 세계라고 그런대. 그 세계도 우리 같은 생명체가 사는데, 그 생명체로 인해서 바다가 더러워지고 물고기가 떼죽음 당한대. 그 광경을 봤던 물고기가 그러는데, 정말 끔찍했데. 지옥이 따로 없었다고 해. 그것뿐이 아니야. 땅에서 버린 날카로운 꼬챙이에 아기상어의 입이 꿰여 독이 퍼진 적도 있어. 가느다란 긴 줄에 새끼 돌고래가 결려 죽은 적도 있었고. 아마도 우리가 몰라서 그렇지, 이런 일이 훨씬 많을 거야. 결국 그 세계가 우리 바다세계를 다 죽일 거라는 소문도 있어,       


결명은 태어나서 처음 듣는 소리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결명이 병어에게 땅의 세계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물어봐도, 병어는 더 이상 아는 얘기가 없어, 잘 들었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져야만 했다. 결명은 바다세계 말고 다른 세계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며칠 동안, 결명은 병어가 말한 땅의 세계만 상상했다. 그 세계에 사는 생명체의 모습은 어떤지, 얼마나 무섭게 생겼는지, 무엇을 먹는지, 그 생명체가 사는 땅은 어떻게 생겼는지 등등, 결명은 병어가 전해준 새로운 소식을 공라에게 얘기해야 하나, 고민스러웠다.      

공라가 자신의 껍데기에 붙은 다른 물질을 떼어내려고 몸부림치고 있었다. 그것을 본 결명이 공라에게 물었다.

공라야, 너는 왜 날마다 껍데기를 깨끗하게 하는 거야?


내가 껍데기를 깨끗하게 하는 이유는, 네가 올라탔을 때,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야.

와, 나를 위한 마음이라는 거지. 기분 좋은 걸. 나는 네가 예쁜 모습으로 있고 싶어서 그런다고 생각했어. 그게 아니었구나. 하지만 무서운 적들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모습을 꾸며야 하잖아. 나를 위한 거라면 안 그래도 돼. 네가 너무 위험하잖아. 알았지?

결명의 껍질에는 해초류도, 작은 따개비도, 이끼도 붙어 있었다. 그래서 바위에 붙어 있으면 꼭 바위의 일부처럼 보였다.

알았어. 결명아. 네 말을 들어보니 그게 좋을 거 같다.

그런데 공라야,

왜?

아니야.


결명은 지난 번 병어에게 들었던 얘기를 하려다가 멈추었다.

얘기해봐.

아니야. 나중에. 그건 그렇고, 공라야, 우리 조금만 위로 올라가 볼까? 바위를 타고 조금만 가보자. 무엇이 있는지 보게.

위험하지 않을까?

아주 멀리 가는 것도 아닌데, 괜찮을 거야. 새로운 걸 구경할 수도 있잖아. 여기만 있는 것도 좀 지루하고.

그래. 네가 하자는 건데. 나는 뭐든 너와 함께 하는 게 좋아,

떠나기 전에 복장에게 인사드리고 오자.

그래.


걀명과 공라는 자신들이 살아왔던 전복밭에서 가장 강인한 의지를 가지고 오래 살아온 복장, 문노를 만나러 갔다. 결명은 저 위에 올라갔다가 내려오겠다고 복장에게 말했다. 복장은 결명과 공라에게 말했다.

내가 여기 있는 동안 너희 같이 저 위에 갔다 온다는 얘들을 두 명 보았다. 걔들도 호기심이 워낙 많았었어. 내가 만류했지만 결국 떠났지. 하지만 그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너희들이 여기를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복장의 얘기를 들은 결명은 말했다.

복장님, 솔직히 답답해서 그럽니다. 이곳이 아닌 다른 곳은 어떤 모습이고 느낌인지 알고 싶습니다. 뭔가 다른 게 분명히 있을 거 같아서요. 그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꼭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런 마음을 누가 말리겠니.


결명과 공라의 의지를 꺾을 수 없던 복장은, 명심하라면서, 세 가지 당부의 말을 해주었다.

얘들아, 위험한 적들을 보게 되면 절대 도망가지 마라. 뒤를 보이지 마. 무섭더라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바닥에 붙어 있어, 그러면 살 수 있다. 알았지?

네.

그리고 공라야, 너의 노래에는 생명이 있고 평화가 있어. 네가 노래를 부를 때 주변의 모든 생물이 하나가 돼. 내 생전에 그런 아름다운 노래는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언젠가 네 노래가 큰 힘이 될 거라 믿는다. 마지막으로, 결명아, 너는 내가 지금까지 보아온 전북들 중에 가장 총명하고 모험심이 강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너보다는 바다를 생각해라. 그러면 네가 생각하는 뜻을 이룰 수 있을 거다. 가 보거라.     

결명과 공라는 동시에 네라고 대답했다. 복장과 헤어지고 나왔다. 다시 못 볼 것처럼 비장한 복장의 말에 결명의 마음이 무거웠다. 이후 결명과 공라는 조금씩 움직여서 바위를 타고 올라갔다. 전복밭이라는 울타리를 처음 떠나보는 결명과 공라는 불안하면서도, 놀러가는 것처럼 들떠서 마음이 두근거렸다.

공라야, 힘들지 않아?

아니야, 괜찮아.


결명과 공라는 중간에 두어 번 쉬기를 반복하며 위로 올라갔다. 얼마 즘 왔을까. 저 앞에 바위 사이의 작은 공간이 보였다. 그 틈에 다다르자, 결명이 지처보이는 공라에게 말했다.

공라야, 여기서 잠시 쉬었다 움직이자.

그래. 이렇게 아늑한 장소가 있었네. 동굴 같아.      

결명과 공라는 작은 틈새 앞에서, 몸을 돌렸다. 결명은 힙 겹게 올라왔던 길을 내려 보고 나서, 탁 트인 앞을 바라보았다. 전복밭에서 생활할 때 보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생물과 식물이 보였다. 결명이 말했다.


생각보다 많이 올라왔네. 이게 바다의 또 다른 모습이구나. 정말 아름답다.  

결명은 다른 전복들처럼 시력이 안 좋은 공라를 위해 자신이 보고 있는 모습을 설명해 주었다.  

공라는 결명이 들려주는 모습을 그대로 상상하면서 놀라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그런 공라를 위해 결명은 세세한 것까지 보이는 대로 얘기해 주었다. 이렇게 둘은 새로운 바다의 모습을 마음껏 즐겼다. 결명과 공라는 구경을 마치고 안으로 몸을 움직여 들어갔다. 공라는 피곤했는지 자리를 잡자마자 잠에 떨어졌다. 그런 공라를 보자 결명도 눈이 감겼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기에 결명과 공라는 잠에서 깼다. 결명이 조심스레 몸을 움직여 나가려고 했다. 이때 공라가 말렸다.

결명아, 그냥 여기 있어. 무슨 일 생기면 어떡하려고 그래.

아니야. 걱정 하지 마. 너를 위해서야. 너는 절대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 알았지? 확인만 하고 올게.

알았어.


공라의 대답을 듣고 나서야, 결명은 몸을 움직여 나갔다. 결명은 혹시 적들은 아닐까라는 걱정이 들었다. 아니나 다를까, 결명의 생각이 맞았다. 결명이 밖으로 나왔을 때, 본능적으로 느껴졌다. 적이라는 걸 말이다. 집게가 여러 개 달린 무시무시한 괴물 둘이서 바로 앞에서 기어오는 게 아닌가. 결명은 저 괴물들이 어렸을 때 들었던 돌게라고 확신했다. 결명은 몸을 움직여서 공라에게 돌아가려고 하다가, 순간 멈추었다. 복장 문노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공라까지 위험에 쳐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결명은 복장 말대로 몸을 최대한 바닥에 붙이고 숨죽이고 있었다. 결명은 이대로 죽는 게 아닌지, 극심한 두려움에 떨었다. 다행이었다. 바위에 붙은 돌멩이라고 여겼는지, 괴물들이 결명을 알아보지 못하고 옆을 스쳐 지나갔다. 괴물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결명은 공라에게 돌아왔다.  

그렇게 위험했던 순간이 지나고 시간이 흘렀다. 결명과 공라는 어린 시절 추억이야기를 하며 깔깔대고 웃었다. 그러다가 결명은 병어에게 들은 얘기를 공라에게 말해주었다. 공라도 새로운 세계가 있다는 말에 놀라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음 날이 되자, 고요했던 바다가 갑자기 물살이 세지고, 물고기들이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결명이 밖으로 나와 지나가는 볼락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고 물었다. 다소 험상 굳게 생긴 볼락은, 생긴 모습과는 다르게 아이 같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큰일 났어. 곧 태풍이 온대. 그래서 모두들 대피하려고 난리야. 물살에 휩쓸리거나 위에서 무엇인가 떨어질 수 있으니, 너희는 거기서 나오지 말고 숨어 있어.

볼락은 둘의 안전을 걱정해주며, 바삐 떠나려고 했다 이때 결명이 볼락을 불러 세웠다.

볼락아, 미안해. 한 가지만 더 물어볼게. 혹시 위로 계속 올라가면 무엇이 나와?

그게 궁금한 거구나. 이 위로 계속 올라가면, 어마어마하게 크고, 이상하게 생긴 물체들이 많이 떠 있대. 나도 가보지 못 해서,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몰라. 더 자세한 건, 나중에 바다에서 오래 살고 있는 물고기들에게 물어봐. 그럼 이만 갈게.     


이렇게 말하고, 볼락은 저 멀리 사라졌다. 결명과 공라도 전복밭에서 생활할 때 태풍을 경험한 적이 있어서 그 위험을 알고 있었다. 태풍도 태풍이지만, 결명과 공라에게 또 하나의 호기심이 생겼다. 볼락이 말해준 저 위에 떠 있는 커다란 물체의 정체였다. 그렇게 또 하루가 가고, 태풍은 결명과 공라가 있는 곳까지 거세게 몰아쳤다. 결명과 공라는 바닥에 꼭 붙어서 움직이지 않았다. 태풍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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