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앙리 엄마가 늦었지...?

32개월 동안 밀린 성장일기 몰아 쓰기 프로젝트

by 이름만 부르주아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아무것도 안 보이는 천장을 한구석을 바라보며, 괜한 뱃살을 꼬집다가 조물락 거리며


'이제 새벽 세시가 지났을까.. 아까 앙리 재우고 건너와 누웠을 때가 1시 45분이었나?'


임신부터 시작된 불면증은 이제 내 인생의 엔데믹화 되어 가고 있다.

불면증에 좋다는 멜라토닌부터 사약같이

독한 감기약까지 복용해 보고, 오늘도 4KM 족히 넘게 뛰었고 수영도 했으니 운동이 부족해서 잠을 안 온다고 할 수는 없겠다.

마른기침이 시작한 일주일 전부터 나이퀄이라고 기똥차게 사랍 기절하게 만드는 액상 타입의 약을 소주 막잔 마시듯 입에 털어 넣고 누우면 못 자는 건 아니다. 아니 분명 잠들 수 있다.

다만 유의할 점은 적어도 오후 10시 이전에 복용해야 한다는 것.

그것보다 늦게 되면 아침부터 정 줄 놓은 멍한 기분을 체감할 수 있는데 문제는 여기서 비롯된다.

5일 전 32개월이 된 앙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 아주 큰 소리로 엄마~ 엄마~ 오옴마~ 이렇게 나를 세 번을 부르고 내가 움직이는 기척이 없으면 그 작은 맨발로 다다닥 - 뛰어와서 가차 없이 나를 깨운다.


이츠 타임 투 웨잌 업! 엄마! 맘! 마망!

마음이 급하거나 신나면 내 호칭을 삼개국어로 나열해서 부르곤 하는데 한국어 영어 불어가 이럴 땐 막힘이 없이 쏟아져 나온다.

보통은 앙리가 아빠를 깨우고 둘이 살금살금 나가 침실문을 닫고 식탁에 앉아 부자의

정을 나누곤 했다.

그런데 지난 4월 중순 보름 정도 남편이 유럽 출장으로 자리를 비워 그 공백을 내가 채웠더니 이제 나부터 찾고 보는 앙리.

이런 에너지 넘치는 아들을 뫼시려면 나도 어느 정도 기운이 뻗어줘야 하는데 감기약 부작용으로 헤롱거리는 아침엔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렇기엔 나이퀼 찬스도 딱히 반갑지 않은 앰희의 현실.


레드썬 타이밍을 놓치고 좀비처럼 새벽에 눈이 떠지면 오늘처럼 밤을 새우기 마련이다.

행여나 숙면에 방해될까 휴대폰도 거실에 두고 침대에 눕는 편이라 결국은 또 머릿속으로 잡년 잡념이 나래를 펼친다.


'낮에 공원에서 앙리랑 기차 타고 영수증 챙겼나? 가계부 앱에 기록 밀린 지 며칠이나 됐지..

아까 남편한테 왤케 성질을 냈나 몰라... 갱년기 아직 멀었다 생각했는데 아닌가.. 호르몬제라도 먹어야 하나

살도 뺄 겸 간헐적 단식해볼까 어제 8시에 저녁 먹었는데 그럼 언제 먹을 수 있나..

겨울 외투는 이제 정리해야 할 텐데.. 어제 22도까지 올랐잖아. 여름옷도 꺼내야 되겠네..'


의식의 흐름을 헤아려보니 깜짝 놀랄 정도로 주부가 되어가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그리고 생각의 흐름 그 말미엔 앙리 성장 일기를 써야 하는데 이걸로 귀결된다.

그렇다. 그렇게 만년 생각만 하다 오늘은 이불을 걷어차기 하고 일어나 무조건 써내려 가기로 했다.

랩탑 전원을 켜고 스크린이 깜깜한 거실을 밝히고 오른쪽 하단의 시간을 보니 새벽 4시 59분.

오타도 확인하지 않고 써 내려간 글이 끝나가자 어스름한 새벽은 사라지고 아침이 밝아 책상의 램프를 끈다.


우리 앙리 그 특별한 존재의 성장 일기.

그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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