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어 맨해튼 둘러보기
트라이베카 Tribeca
트라이베카는 로어맨해튼의 서쪽지역이다. 배터리파크와 뉴욕 시청, 월드트레이드센터, 그리고 월스트리트가 가까워 월스트리트의 금융맨들이 많이 거주하는 로어맨해튼의 부촌이라 한다. 전형적인 뉴요커들이 많이 살고 늦은 밤에도 안전하다하니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하루에 8불 차이도 무시못했고.
그리고 그땐 몰랐다. 이곳에서 아침마다 자유의 여신상을 보며 조깅을 하게 될줄.
트라이베카에 숙소를 정하다
1박2일 일본 여행이든 30박31일 남미여행이든 여행 준비할때 가장 어려운 일은 항공권 구하기와 숙소 정하기 아닐까 싶다. 특별히 선호하는 항공사가 없지 않는 이상은 많은 경우 인아웃 시간이나, 아니면 특별히 저렴하거나, 대기시간이 짧거나, 혹은 마일리지 적립 정도로 결정하지 않을까 싶은데, 나 같은 경우는 가격과 짧은 트랜스퍼 시간이 선택 기준이라 항공권 선택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는 않는 편이다.
그런데 이번 숙소는, 몇박몇일 여행이 아니라 꽤 있어야 해서 숙소 정하기가 참 쉽지 않았다.
내가 숙소를 정했던 기준은,
1순위 맨해튼 단독룸 다국적 유스호스텔/게스트하우스
2순위 맨해튼 단독룸 한인숙소
3순위 맨해튼 도미토리 / 여성전용
그외에 가능한 맨해튼, 더 가능하다면 센트럴파크를 기준으로 아래쪽, 즉 로어맨해튼
(인종차별은 아니지만) 백인 밀집지역, 그리고 제일 중요한 '가격'이 내가 감당 가능한 수준일 것. 이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땅값과 임대료를 자랑하는 뉴욕. 그 중에서도 맨해튼에서 숙소를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일단 뉴욕에는 너무 많은 호스텔이 있고 - 그때는 에어비앤비를 몰랐다 - 가격도 만만치가 않았기 때문.
말그대로 '폭풍서치'를 한 끝에 2곳 정도로 좁혀졌다. 아쉽게도 단독룸은 거의 어려웠고, 도미토리 유스호스텔도 생각보다 너무 비싸서 어차피 단독룸에 못 있을바에야 깨끗하고 안전한 곳으로 가자 했다.
두 곳 다 한인 민박이었는데, 한 곳은 센트럴 파크에서 가까운 미드타운의 아파트였고, 또 한 곳은 로어 맨해튼의 트라이베카 지역에 있는 아파트였다.
가격은 미드타운의 숙소가 하루 8불 정도 더 비쌌는데, 3인 쉐어, 4인 쉐어라는 차이도 있었다. 그런데 어차피 나는 쉐어룸 자체가 처음이라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으니 굳이 8불을 더 줄 필요가 없었다.
그래서 트라이베카에 있는 warren st.에 있는 아파트에 일단 1주일만 있어보기로 했다. 쉐어룸이라는 것과 한인숙소라는 것이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에 언제든지 옮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최소한 그때는.
JFK공항에서 맨해튼으로 들어와 chambers st.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매니저와 만나 숙소로 들어왔다.
내가 한동안 지낼 이 곳은 warren st. 쪽으로 큰 창이 난 아파트로 5층에 있었다. 면적은 약 32~33평? 정도 되려나. 큰 방 2개와 화장실 2개, 널찍한 주방까지. 거리쪽으로 난 창문 덕에 채광도 좋고 전망도 썩 괜찮았다. 주방에는 공용으로 쓰는 냉장고가 있어서 각자 사온 음식들과 식재료들을 넣어두고 있었다. 숙소에서 제공되는 건 쌀과 식빵. 나머지는 투숙객이 알아서 하게 되어 있었다. 화장실 옆에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어서 자유롭게 사용가능해서 불편함이 없었다. 굳이 한가지를 꼽자면, 여기에 머무는 손님들은, 뭐랄까. 그림자 같은 존재라고 해야하나. 그래서 정문으로는 출입이 어려웠다는것. 그거 한가지였다.
첫날 저녁부터 다른 투숙객이 볶아대는 멸치볶음 냄새에 당황하긴 했지만, 이집에서 시간을 생각하면 좋은 기억만 남았다. 아침에는 바로 앞 홀푸드마켓에서 사온 우유와 샐러드 등을 먹으며 오늘 하루도 어떻게 알차게 보낼까 생각했고, 저녁에 집에 들어와선 개운하게 씻고 저 식탁에 앉아 이것저것 서치도 하고 원고도 쓰고 일정도 짜곤 했었다. 그리고 아침이면 매일매일 달라지는 풍경을 재미가 꽤 쏠쏠 했는데, 어느날은 마라톤 대회가 열리고, 또 비가 내리기는 날에는 아이들은 후드를 뒤집어쓰고 학교로 향했다.
세계에서도 손꼽히게 집값 비싼 맨해튼이니 저기 보이는 평범해 보이는 저런집들도 못해도 몇억은 훌쩍 넘지 않을까. 고층일수록 허드슨강과 공원이 내려다 보이는 최고의 전망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어느 날은 몸이 안 좋아 저녁 8시가 되기도 전에 들어왔는데, 아파트 바깥에서 와글와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 거실 창문으로 내다보니 길 건너편에 있는 배터리 파크 시티볼 필즈에서 야구경기가 열리고 있었다.
맨해튼 한복판, 그것도 땅값이 제일 비싸다는 로어맨해튼 한 가운데 있는 야구장이라니. 그 와글와글한 소리가 너무 듣기 좋아서 한동안 나도 창문에 매달려 그 모습을 지켜봤다.
암튼. 이렇게 이집에 혹해버린 나는 일주일 후에 2주를 더 연장해서 더 있었다. 떠날때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집도 집이지만, 이 동네 분위기가 너무 좋았기 때문.
이 코로나가 이렇게 극성을 부리기 바로 직전에, 다시 뉴욕을 가려고 이 숙소에 컨텍을 해보니, 아쉽게도 이 아파트는 더이상 운영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쉬웠다.
짐을 푼 첫 날 저녁. 동네 구경부터 나섰다. 처음에는 그냥 아파트 근처만 둘러볼까 하다가 가다보니 쉐이크 쉑이 있고, 벌룬 플라워가 있고, 또 지나가며 보니 9.11테러로 무너진 WTC의 재공사가 한창이었다. 그래서 처음 한 이틀쯤은 로어맨해튼 Lower Manhatten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홀 푸드 마켓 Whole Foods Market
아파트에서 나와 먼저 간 곳이 홀푸드 마켓이었는데, 아마도 여기 있는 동안 집 다음으로 가장 많이 갔던 곳이 아닐까 싶다. 거의 매일 다니다시피했으니.
홀푸드 마켓은 오가닉과 로컬 제품을 주로 취급하는 대형 마트다. 야채와 생선 고기 같은 신선식품 뿐만 아니라 식사 대용 샐러드, 반조리 식품, 그리고 천연화장품과 베이커까지 있다.
그때그때 필요한 먹을거리들을 샀고, 몸이 지칠땐 비타민C를 샀다. 업타운을 돌아다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간식과 맥주를 사와 홀짝 거리며 늦은밤까지 컴퓨터를 했다. 시리얼을 먹기 지겨울땐 샐러드와 과일을 사서 식사대용으로 먹기도 했다.
우리나라에도 맥주종류가 엄청 다양한데 여기도 보도듣도 못한 맥주 종류가 너무 많아서 맘 같아서는 하나하나 다 먹어보고 싶었다. 브루클린 비어는 물론이고 다양한 디자인과 맛의 맥주가 너무 많아서 궁금했다. 맘 같아서는 여러병 사오고 싶었다는.
첫날에는 일주일치 식량을 샀다. 시리얼과 바게뜨 빵, 블루베리 잼, 그리고 우유 작은 통과 같이 먹을 야쿠르트를 샀는데, 시리얼은 숙소에서 제공이 되어서 거의 먹지 않고 나중에 보스턴에서 먹었다.
그날 이후로 정확히 한달동안 김치를 먹지 않았다. 생각해보니. 그다지 김치 생각이 나지도 않았다. 지금은 어떨지 몰라도 그땐 그랬다. 그래서 저녁에 볶아대는 멸치냄새와 떡볶이 냄새가 더 싫었을지도.
워런스트릿 Warren Street
아파트 주변의 워런스트릿 Warren Street은 뉴요커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곳 중에 하나다. 할렘을 갈때도, 타임스스퀘어에 갈때도 이 거리를 숱하게 돌아다녔는데 떠날 때가 다가올수록 그 평범한 풍경이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마지막날 오전엔 그냥 몇블럭을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그러고 걸었는데.. 진심으로 떠나기 싫었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만 관광객들이 점령하고 있는 곳 말고 현지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을 들여다 봐야 그곳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는 법이다. 뉴요커들의 생활을 엿보는 재미에 빠져 이 동네에 머무는 동안 골목골목을 누비고 다녔다.
9.11 메모리얼, 브루클린 브리지, 월스트리트는 걸어서 갔고, 사라베스 키친도 가깝고 지하철 입구에는 잠바 주스도 있다. 어느 화창한 날에는 초등학교 앞에서 작은 파머스 마켓이 열리기도 했다.
워런스트릿을 중심으로 체임버스 스트릿과 머레이 스트릿, 그리고 그린니치 스트릿까지.
아침에 노란 스쿨버스가 교차로에서 아이들을 태우고, 오후에는 엄마와 아이가 손잡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길. 생각나네.
반스앤 노블 Barnes & Noble / 베드바스 앤 비욘드 Bed bath & Beyond
홀푸드 마켓 2층에 있던 반스앤노블은 맨해트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대형 체인 서점이다.
어느날 오후, 비가 추적추적 왔다. 오랜만에 책냄새도 맡을겸, 반스앤노블 안에 있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오후여서 그런지 학교를 마치고 온 아이와 엄마들이 꽤 있었는데, 엄마는 커피를 마시고 아이는 주스를 마시며 알콩달콩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예뻤다.
간혹 엄마한테 무얼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
"엄마, 나 이거 먹어도 돼? 엄마 나 이거 사줘"
"안돼, 이건 설탕이 너무 많이 들어서 안돼"
"ㅠㅠ"
어느 나라나 다 똑같지 싶다.
베드바스 앤 비욘드는 욕실과 가정용품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전문 매장으로 반스앤노블 바로 맞은편에 있다. 비교적 한가한 평일에 비해 주말에는 이것저것 가정용품을 한 가득 쇼핑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부부와 가족들이 많았다. 지금도 미국에 가면 꼭 베드바스 앤 비욘드에 들라는데 주로 바디용품들을 사온다. 수시로 세일도 많이 하고 3+1과 같은 행사도 많이 해서 득템하기 좋은 곳.
쉐이크 쉑 Shake Shack
아, 요즘은, 우리나라에서도 얼마든지 맘만 먹으면 먹을 수 있는 쉐이크 쉑. 불과 이때만 해도 뉴욕에 오면 먹어봐야 할 것 중에 하나로 꼽히던 것이 바로 쉐이크 쉑 버거다.
아파트에 짐을 풀고 뉴욕과 반가운 재회를 하려면 어디가 좋을까 생각하다가 일단 길을 건너 가보자 생각했다. WTC도 그다지 멀지 않았고 처음으로 진득하게 있게 된 이 동네도 궁금했는데, 걷기 시작한지 채 10분도 안되어서 보이는 쉐이크 쉑. 배터리시티 점이었다.
메디슨 스퀘어 파크에 있는 쉐이크 쉑이 워낙 존재감이 크다보니 다른 곳에 있는 지점은 딱히 생각도 안했는데 이렇게 가까이 있다는게 얼마나 반갑던지. 그래, 뉴욕에서 첫날, 첫 끼니는 너다!
쉐이크 쉑 안으로 들어가 버거와 쉐이크를 주문했다. 평일 낮이라 그런지 유난히 한가했다.
나중에 매디슨 스퀘어 파크에 있는 쉐이크 쉑을 한번 더 갔다. 배터리시티점과는 다르게 말그래도 사람들이 인산인해이었다. 최소 30분 쯤 줄을 서서 기다린 끝에 주문을 하고, 또 10분쯤 기다려서 햄버거와 쉐이크를 받아와 먹었던 기억이 있다.
지금은, 우리집에서 버스로 20분만 가면 편하게 먹을 수 있으니, 역시 위아더월드.
제프 쿤스의 벌룬 플라워 balloon flower by jeff koons
쉐이크 쉑에서 햄버거를 먹고나왔다. 어디론가 통해져 있는 길로 걸어갔는데 잠시 후 WTC에 닿기 전에 만난 왠 눈에 띄는 작품 하나. 바로 뒤에는 페더럴 오피스 빌딩. 맞은편에는 골드만 삭스 건물이 있는 가운데 있는 벌룬 플라워. 제프쿤스의 작품이다. 이런 곳에서 제프쿤스의 작품을 만나다니. 첫날부터 왠 횡재!
Jeff Koons(1955.1.21~ )
미국의 현대 미술가. 설치 예술가. 쿤스는 1991년 포르노 배우 출신으로 이탈리아의 국회의원까지 지낸 치치올리나와 결혼으로 유명세를 타기도 했고 우리에겐 Puppy(1992)와 Tulips (1995-2004). 신세계 백화점에 있는 sacred heart 등으로 친숙한 핫한 예술가.
트라이베카에 있는 스타벅스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