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어 맨해튼 돌아보기
로어맨해튼 Lower Manahatten
지난 편에 이어 계속되는 로어 맨해튼을 돌아보기.
내가 머무는 아파트에서 월스트리트는 물론 브루클린의 윌리엄스버그까지는 충분히 걸어다닐 수 있을 거리였어서 로어 맨해튼의 왠만한 곳은 다 걸어다녔다. 센트럴파크에도 가고 싶고 타임스스퀘어도 또 가고 싶었지만 우선은 뉴욕의 심장같은 로어 맨해튼을 제대로 안볼수 없다.
로어 맨해튼(Lower Manahatten)은 맨해튼의 남쪽 지역을 뜻한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로 상징되는 수많은 마천루들이 우뚝 서있고 세계 경제의 중심 월스트리트가 있으며 브루클린과는 브루클린 브릿지로 연결되어 있다.
새로운 WTC의 탄생
내가 처음 뉴욕에 왔을때는 911 테러가 나고 3년 쯤 지났을 때 였다. 3년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뉴욕은 차분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뉴요커들은 그들의 일상을 이어가기는 하지만 마치 모든 것에 추모하는 것 처럼 보였다. 9.11 테러가 발생하고 첫 1년 동안은 파티나, 술집에서 흥청망청 술을 먹는 것은 물론 큰 소리로 웃는 것 조차 힘들었다고 했다. 그때 이후로도 몇 번 더 뉴욕에 왔었는데 거의 스쳐지나가다시피 해서 뉴욕의 변화를 느끼긴 어려웠다.
다시 오랜만에 와보니,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뉴욕은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평화로웠던 화요일의 어느 아침. 출근시간과 맞물려 더없이 활기가 넘쳐났을 그 날. 지금도 가끔 그때의 영상을 보게되면 20년이 지났음에도 소름이 돋는다. 눈앞에서 그런 광경을 목격했어야 하는 뉴요커들은 더욱 그럴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절망 속에서도 새로운 희망은 솟아나기 마련. 어느새 테러로 건물이 무너졌던 자리에는 새로운 빌딩이 올라가고, 새로운 지하쳘 중앙환승센터인 Path 역이 지어졌다. 지구상 누구보다 바쁜 뉴요커들의 삶은 계속되고 있었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에는 들어갈 순 없지만 대신 911 메모리얼 파크에 가보기로 했다.
911 메모리얼은 2,977명이 사망한 2001년 9·11 테러와 6명이 사망한 1993년 폭탄 테러를 기억하고 희생자를 추모하기 위해 건설된 기념관 및 박물관이다.
이곳에 들어가면, 처음에는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갔다가도, 들어가는 순간 우르르쾅쾅 들리는 폭포소리에 순간 말을 잊게된다. 이 곳에는 박물관과 기념관도 있지만 이 곳의 정수는 North pool, South pool 이다.
테러가 일어나기 전 노스 타워와 사우스 타워가 있던 자리에 만들어진 기념물인데, 이 곳에 서면 저절로 마음이 숙연해진다. 사각형의 구조로 중앙으로 물줄기가 굉음을 내며 끝없이 쏟아져 들어가고 그 주변에는 테러로 희생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한국 이름도 발견할 수 있다. 풀 주위를 한바퀴 돌아봤다. 너무나 아름답다. 세상의 모든 소음을 집어삼키는 물소리. 하늘. 나무. 바람. 그리고 떠나간 사람들. 악한 짓 하지말자. 착하게 살자. 누군가의 목숨을 뺴앗지말자. 마음 아프게 하지말자. 많은 생각을 하게된 시간이었다.
서바이버 트리 The Survivor Tree
이 곳에는 아주 유명한 나무 한 그루가 있다. 9.11 테러를 이겨내고 살아남은 서바이버 트리 The Survivor Tree다.
테러가 일어나고 1달쯤 지난 2001년 10월. 모든 것이 불타버린 테러 현장에서 나무 한 그루가 발견되었다. 뿌리가 뽑히고 가지는 불탔지만 그 나무는 죽지 않았다. 그래서 뉴욕시의 공원을 관리하는 부서(the care of the New York City Department of Parks and Recreation)에서 정성스레 다시 키워 이곳으로 돌려 보내졌다. 현재 이 나무는 보다시피 이렇게 건강하게 다시 살아나 울창한 나무로 살아났다.
이 나무는, 자신이 가진 생명력, 회복하고자 하는 의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있고, 사람들은 이 나무를 보며 힘을 얻는다. 요즘은 이 나무의 묘목을 여러곳에 지원한다고 한다. 이 나무가 전해주는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그날을 잊지 않고 힘을 내게 한다.
지름신의 강림 Century21
분위기를 환기시킬 시간이다. WTC와 아주 가까이에 반가운 곳이 있다. 바로 Century21.
굳이 우드버리 같은 아울렛을 가지 않더라도 다양한 제품들을 할인 가격으로 살수 있다고 알려져 있고 우리에게 친숙한 리바이스, 토리버치, 칼 라거펠트 같은 브랜들도 꽤 많아서 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사실, 한달동안 뉴욕에 있는동안 돈을 벌면서 사는게 아니라서 주머니 사정이 넉넉한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처음엔 정말정말 뭐가 있나, 진짜로 명품들도 싼가 하고 구경만하자 하고 들어갔다가, 지름신이 강림하셨는지 사고 싶은게 너무 많아졌다. 딱 한가지만, 아니 이것만. 하나만 더? 하다가 이것저것 한 짐을 짊어지고 나왔다. 있는 동안 너무너무 잘 입고 잘 쓰긴 했지만, 지름신이 강림하면 이렇게 무섭다.
센츄리 21은 이곳 외에도 뉴욕에 여러 곳에 지점이 있다. 지점 마다 파는 브랜드, 할인율이 다 다르다. 나는 레베카 밍코프의 백을 하나 사고 싶어서 열심히 찾아봤더랬다. 센츄리 21에서 -다른 아울렛은 갈 예정이 없었으므로- 40% 정도만 할인한다면 하나쯤 둘러매고 갈 생각이었는데, 이곳 WTC점에서는 보지 못했고, 나중에 갔던 링컨센터에 있는 센츄리 21에 있었는데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서 포기하고 말았다.
그다음은. 내가 꼭 추천하고싶은 로어 맨해튼의 도보 여행 루트다. 아이리쉬 헝거 메모리얼-배터리 플레이스(배터리 파크)-볼링그린-아메리칸인디언까지 까지 걸어보는 역시기행코스(?) 정도 될 것이다.
아일랜드 기근 기념물 Irish Hunger memorial
WFC 페리 터미널 인근록펠러 공원 내에 있는 Irish Hunger memorial(아일랜드 기근기념물)은 미국으로 대규모 이민을 초래한 아일랜드의 기근을 상징하는 기념물이다.
공원 내의 야트막한 언덕. 그리고 그 안은 짧은 미로처럼 되어 있고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름과 글이 구조물에 씌여있다. 이따금 지나가던 사람들이 들어와 보고 가곤 했다. 럭셔리한 건물들, 호텔, 요트 하버가 있는 이곳에 있는 기근 기념물이라니. 참 아이러니 했다.
어슴프레 알고 있긴 했지만 이 참에 아일랜드 기근에 대해 다시 한번 찾아봤다.
아일랜드 대기근(The Great Hunger)
1847년 감자마름병이 아일랜드전역에 발생해 아일랜드인의 주식이었던 감자를 먹을 수 없게되었다. 많은 아일랜드인들은 먹을 것이 없게 되었고 사람들은 하나 둘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서부지방에서 시작된 기근은 매우 끔찍했다. 길거리에는 시체가 여기저기 널렸고 살아있는 사람들도 다르지 않았다. 당시 아일랜드를 식민지배하고 있던 영국은 대기근이 신의 섭리이며 멍청하고 게으른 아일랜드인들의 탓으로 돌렸다. 영국인 지주들은 아일랜드인을 소작농으로 부리면서 많은 곡식을 축적했으며 밀과 옥수수 등 각종 곡식들을 닥치는대로 영국으로 실어날랐고 먹을 것조차 없었던 소작인에게 소작료를 요구하기까지 했다. 이 대기근 당시 더이상 버티기 힘들어진 아일랜드인들은 외국행 배에 몸을 실었다. 800여만명의 아일랜드 인구 중 200여만명이 사망하고 200여만명이 해외로 이주하여 아일랜드의 인구가 절반으로 감소했다. 아일랜드인들이 탄 배는 매우 허술하고 지저분했다. 200여 만 명이 떠났으나 60%가 육지에 발도 못 딛고 배 안에서 역병으로 죽었다. 미국땅에 도착한 아일랜드인들은 노예취급을 받으며 굴욕적인 삶을 이어가야 했다. (위키피디아 등 인용)
배터리 파크 Battery Park
아일랜드 기근 기념물에서 걷다보면 배터리 파크 Battery Park가 나온다.
배터리 파크는 맨해튼 섬의 남서쪽 끝자락 땅을 수 년간 매립, 확장한 끝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격벽에 설치했던 '포대(gun battery)'에서 이름을 따와 '배터리 파크'라고 명명했다. 1811년 영국군으로부터 맨해튼을 보호하기 위해 지은 클린턴 성(Castle Clinton)은 원래 높이 275m의 해안 요새였는데 현재 배터리 파크 가장자리에 성벽의 흔적만 남아있다. (론리 플래닛 코리아 발췌)
배터리 파크는 너무나 아름다운 곳이다. 죽죽 높이 솟은 마천루 사이로 푸르른 공원이 펼쳐지고 이스트 강과 허드슨 강이 만나는 지점에는 멀리 자유의 여신상과 엘리스섬이 보인다.
이곳은 센트럴파크와 더불어 뉴요커들의 휴식처, 놀이터, 그리고 조깅코스가 되는 곳이다.
뉴요커들에게 운동은 생활이다. 진정한 뉴요커는 자기 관리도 소흘하지 않는 법. 무료로 요가를 배울 수 있는 도네이션 요가센터는 맨해튼 곳곳에 있으며, 무료 강좌도 수시로 열린다. 센트럴파크에서 많은 뉴요커들이 사계절 내내 조깅과 바이크를 즐긴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어느날 해질 무렵 허드슨 강변에 있는 산책이나 할까 싶어 배터리 파크에 나갔다. 달빛이 강물에 비치는 공원에서 수많은 뉴요커들이 땀방울을 흘리며 저녁운동을 하고 있었다. 호보켄의 야경과 더 멀리 자유의 여신상도 보이는 멋진 공원에서 말이다. 문득 내가 살던 일산의 호수공원이 떠올랐다. 산책로는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없을 정도로 좁아서 줄을 서다시피 걷거나 뛰어야 한다. 자녀들 시험 이야기부터 연예인 뒷담화까지, 분위기는 왁자지껄하다. 옆으로는 자전거가 위협하듯 달린다.
하지만 거친 숨소리와 뜀박질 소리만 있을 뿐 운동할 때 뉴요커들은 진지하다. 겉으로만 봐서는 혼자 슈퍼마켓 가기도 힘들 것 같은 노인들이 핫팬츠와 운동화를 신고 달린다. 젊은 엄마는 아이가 탄 유모차를 끌면서 달린다. 타고 있는 아기가 멀미를 하지 않을까 걱정되긴 하지만, 그런 모습은 센트럴파크에서도 많이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크고 작은 마라톤 경기는 뉴요커들에는 일상처럼 친숙하다.
배터리 파크 근처에도 몇개의 박물관과 기념물이 있는데, 우리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한국전쟁기념물Korean war memorial, 마천루 박물관 The scraper museum, 유대인 문화유산 박물관 Museum of jewish heritage, 그리고 캐슬 클린턴 Castle clinton 등이 있다. 시간의 여유가 있다면, 그리고 기왕이면 이 근처에서 묵게된다면, 아침일찍 공원에서 조깅도 하고, 박물관도 둘러보고, 점심도 먹고, 또 여유가 된다면 크루즈 타고 자유의여신상까지 둘러본다면 딱 알차게 시간을 보낼 수 있을 듯 하다.
아, 그리고 배터리 파크에서 월스트리트 쪽으로 가다보면, 정말 맛있는 핫도그를 파는 푸드트럭이 있(었)다. 요즘도 장사를 할진 모르겠지만 뉴욕의 수많은 푸드트럭 중에서 이 아저씨의 핫도그가 최고였다는 사실!
MIB Headquaters
내가 좋아하는 영화 시리즈 중에 하나가 맨인블랙인데, 영화에서 맨인블랙의 본부로 나오는 그 건물을 배터리플레이스에서 만날 수 있다. 건물 외벽에는 brooklyn battery tunnel triborough bridge & tunnel authority이라고 씌여있으니 브루클린 배터리 터널 트리브로 다리와 터널 위원회(?)라 써있는데, 이 건물의 이름은 Hugh.L Carey Tunnel Ventilation Building(Hugh.L Carey 터널 환기 건물). 나로써는 이 건물의 용도를 알 수 없지만, 환기건물이라하니. 환기를 시키는 건물인가.. 싶다.
MIB 1편부터 3편까지 숱하게 봐온 열성팬이니 한번에 알아봤다. 마치 저 문을 열고 지하 몇 층쯤 내려가면 외계인들이 득시글 거릴 것 같은 그런 상상에 빠져본다.
볼링 그린 Bowling Green
MIB 본부 건물에서 길을 건너 걸어오면 작은 공원이 보이는데, 이름도 예쁜 볼링 그린 Bowling Green 이다. 볼링 그린은 로어 맨해튼 브로드 웨이에 있는 작은 공원으로, 1733년에 만들어진 뉴욕에서 가장 오래된 공공공원이다. 공원을 둘러싸고 있는 펜스는 18세기에 만든 것이라 한다. 공원의 북쪽 끝에 그 유명한 황소 charging bull 가 있다. 볼링 그린 울타리와 공원은 미국 국가 등록 사적지(U.S.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등록되어 있다고. 이런 역사적인 의미는 둘째 치더라도 고층 건물에 둘러싸인 이 공원은 참 여유롭고 예쁘다. 비가 온 다음날이라 물기는 좀 있었지만 뉴요커들은 이 곳에서 점심도 먹고 책도 읽는다. 그리고 이 곳에 작은 로컬시장이 열리기도 한다. 코끝을 자극하는 향긋한 빵도 팔고, 직접 만든 유기농 잼도 있고, 허브 화분도 판다.
국립아메리칸인디언 박물관 The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
볼링 그린 입구에서 뒤돌아보면 국립아메리칸인디언 박물관 The National Museum of the American Indian이 있다. 인디언에 관련된 여러 전시물들이 있다고 하고, 심지어 무료! 안가볼 수가 없다.
넓은 홀을 중심으로 난 문으로 여러 전시관들이 통한다. 이 곳에는 인디언들의 옷, 생활용품, 인디언 출신 예술가 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수많은 작품 중에 내 눈길을 사로잡은 건 아파치 부족 출신의 조각가 밥 하오조스 bob haozous의 슬리핑맨 Sleeping Man이었다.
"bob haozous는 1970년대에 조각가로서의 경력을 시작했으며, 낭만적인 이미지에 도전하고 현대의 문제들을 다루는 풍자적이고 자극적인 작품으로 알려졌다. Sleeping Man은 낭만적이고 시대를 초월한 원주민들을 표현한 초기 돌 조각의 대표작이다. 이 인물의 카우보이 부츠, 청바지, 소라 벨트, 그리고 화려한 셔츠는 그를 1970년대 북부 뉴멕시코 갤러리 장면에 정면으로 배치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인디언의 철학과 인연을 끊고 은유적으로 잠든 현대 인도인들을 보여주기 위해 수많은 Sleeping Man을 만들었다. Haozous는 Sleeping Man을 언급하면서, "그의 정신은 인디언적이지만, 여러분은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심지어 우리가 누구인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다." (https://americanindian.si.edu 참고)
너무나 매력적인 작품이 아닐 수 없다.
이 박물관의 또 하나 인상깊은 전시는 up where we belong.
대중음악가들의 전시관이다. 지미 헨드릭스, 오지 오스본, 랜디 카스틸로 등등. 많은 음악가들의 악기와 영상, 옷과 신발 등등이 전시되어 있다.
그 중에서도 제일 신기했던건, 영화 사관과 신사 주제가인 up where we belong으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사이먼 앤 가펑클의 아카데미 트로피가 가장 신기했다.지금이야 우리나라 영화가 아카데미 (심지어!) 작품상도 받고 빌보드차트 1위까지 하는 시대니 더이상 남의 나라 이야기이지만은 않지만 말이다.
아메리칸 인디언 박물관을 보고 나왔다. 입구로 나오니 입구 계단에 많은 사람들이 앉아 커피도 마시고 수다도 떨면서 쉬고 있다. 나도 슬슬 아파오는 다리도 쉴겸 커피 한잔을 들고 박물관 계단에 앉았다. 앉아서 풍경을 바라본다. 뉴요커들과 그들 틈에 섞인 여러나라에서 온 여행자들의 모습이 재미있다. 갑자기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소방차와 앰블런스 여러 대가 달려온다. 무슨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