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희의 미디어와 컬처] <한국대학신문>
기술의 진화에 대해서는 철학과 입장에 따라 바라보는 시각이 천양지차일 수밖에 없지만 기술 발전이 사회의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직 예단하기는 이르지만 챗GPT를 포함한 생성형 AI 기술은 인터넷의 등장과 스마트폰의 도입 및 확산 이후 가장 큰 사회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물론 새로운 기술이 도입될 때마다 많은 주목을 받다가 조용히 관심에서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다. 하지만 생성형 AI가 보여주고 있는 성과는 생성형 AI 기술 진화의 영향을 다각적으로 검토할 필요를 높이고 있다. 크게 제작의 영역과 이용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있는 미디어 분야에서도 생성형 AI 활용과 수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미디어적 관점에서 보면 인터넷의 등장은 정보접근성 측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가지고 있던 생산 주체와 이용자 간의 정보 비대칭성을 크게 줄여주었고 이용자의 적극적 참여를 가능하게 했다는 의미를 지닌다. 인터넷의 도입이 갖는 중요한 의미 중 하나는 미디어 이용 측면에서 시간의 제약을 없앴다는 것이다. 방송의 경우 편성 시간이라는 제약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용자의 미디어 소비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이용자가 주체적으로 콘텐츠를 선택하는 것에도 제약이 있었다. 스마트폰의 등장은 이용자가 물리적 공간의 한계를 뛰어넘게 해줬다는 면에서 혁신적 지점이 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통신 기술의 발전은 스마트폰을 통해 동영상을 언제 어디서나 이용할 수 있는 제반 환경을 제공했다. 이 토대 위에서 성장한 것이 OTT다. 이제 내가 보고 싶은 영상을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이용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 됐다.
챗GPT와 같은 생성형 AI 기술은 혁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존의 인공지능 기술이 이용자의 이용행태 등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을 통해 이용자의 편의를 돕는 것에 집중했다면, 생성형 AI는 이용자 대신 이용자가 필요로 하는 것을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성을 인정받고 있다. 생성형 AI는 생산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사회적으로 크게 기여할 것이라 기대되고 있지만 이와 같은 낙관론에 맞서 대두되고 있는 비관론도 만만치 않다.
생성형 AI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창의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난달부터 파업에 들어간 미국작가조합(WGA)은 AI를 활용한 대본 금지 등 생성형 AI 기반 제작 움직임에 반대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창작과 관련된 조합과 연맹 등에서 미국작가조합의 입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창작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들이 자신들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행동일 수 있지만 생성형 인공지능이 인간의 고유 영역이었던 창의성을 대체할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던지는 계기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생성형 AI가 창작에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최종적으로 창의성을 발휘해야 하는 주체는 결국 인간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효율성을 고려해 생성형 AI가 창작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게 된다면 인간이 창작에 개입할 여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창의성 형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 기존 창작자의 자리가 줄어들 뿐 아니라 제작에 관심을 갖는 지망생도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생성형 AI는 이미 존재하는 창작물을 기반으로 학습할 수밖에 없다. 생성형 AI가 가지고 있는 이와 같은 특성은 저작권 측면에서 문제를 발생시킬 수 있다. 국내에서는 생성형 AI가 인터넷상의 이미지를 무단으로 도용하는 경우가 발생하고 있어 웹툰 작가들이 이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AI 보이콧 운동을 벌일 만큼 이용자들도 이에 대한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문제 제기가 이어지자 네이버와 카카오는 웹툰과 관련된 공모전에서 생성형 AI 기술 활용을 금지시키는 결정을 내렸다. 물론 앞으로 콘텐츠 제작에 있어 생성형 AI 활용을 완전히 배제시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겠지만 생성형 AI 활용이 가져올 수 있는 부작용에 대한 보완책 마련은 지속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는 인공지능에 관한 규제법안(The EU Artificial Intelligence Act)이 유럽 의회를 통과했다. 찬성 499표, 반대 28표, 기권 93표로 압도적 표차로 인공지능 규제법안이 유럽에서 시행되게 된 것은 사안의 중요성을 시사한다(출처: https://www.artificial-intelligence-act.com). 국내에서도 생성형 AI를 비롯한 인공기능 기술의 진화에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정책적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생성형 AI와 같은 신기술에 대해 과도한 규제를 적용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 하지만 기술의 진화는 예측할 수 없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기 때문에 해당 기술의 발전 방향과 사례를 예의주시하고 대응 방향을 고민하는 일의 중요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비관론과 부작용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기술의 진화는 1차적으로 기술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잘 이해하고 활용하는 차원에서 수용돼야 한다. 생성형 AI도 마찬가지다. 이용자 입장에서 생성형 AI의 활성화는 업무와 학습 차원에서의 효율성 증진과 정보접근성 증진이라는 긍정적 측면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기술의 진화가 가지고 있는 역설은 기술의 발전이 이용자의 편의를 증진시키는 데 기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기술의 작동방식을 이용자가 이해하기는 더욱 어려워진다는 데 있다.
지금 단계에서 생성형 AI 기술의 이용과 활용에 관심이 많은 이용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생성형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자신의 이용과 활용 방식을 성찰적으로 점검하는 것이다. 가령 챗GPT로 획득한 정보에 대한 신뢰성을 다른 방식으로 검증해 보는 일은 챗GPT가 나의 업무와 여가에 어느 정도 도움을 줄 수 있는지 점검해 보는 유용한 관습이 될 수 있다. 특히 지식 습득에 있어서 정보의 신뢰성을 확인하는 일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생성형 AI로 인해 가뜩이나 많은 정보의 홍보 속에서 살아가던 이용자들이 접하게 될 정보는 더욱 많아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모든 정보가 정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자신이 전문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되는 분야나 여가의 영역일지라도 그동안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생각되는 분야일수록 생성형 AI를 통해 습득한 정보를 검증하는 나만의 방법과 기준을 획득할 필요가 있다. 생성형 AI 기술은 앞으로 더욱 진화할 것이고, 우리의 삶과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 기술을 잘 활용해 삶을 윤택하게 만들 수 있는 주체는 기술을 이용하는 이용자다. 생성형 AI 기술이 발전할수록 이용자의 이용 능력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출처: https://news.unn.net/news/articleView.html?idxno=548631
이 글은 6월 25일에 <한국대학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