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세미티 2024
큰딸 대학원졸업을 빌미로 찾아간 이번 요세미티 여행은 오랫동안 피하고 미뤄두었던 숙제를 마주하도록 도와주었다.
대학 때 가보고 30여 년 만에 다시 찾은 곳이었지만 스케일이 다른 대자연의 감흥은 여전히 새롭다.
막상 직접 찾아가려니 정보가 많이 부족했다. 유튜브나 네이버, 구글검색에도 디테일한 정보가 아쉬웠다. 여행가이드 없이 가족과 함께하는 일정이라 무작정 갈 수도 없고 숙박부터 고속도로, 트래킹코스 등등을 미리 살펴 알아보는데 많은 한계가 있었다.
버클리에서 미리 예약해 둔 렌터카부터 예상과 다르게 움직였다.
예약한 도요타 라브는 아직 반환 전이라 포드 150 트럭 아니면 제네시스 전기차 중 선택해야만 했다. 혼자 운전한다면 픽업트럭을 선택했겠지만 가족의 안전을 생각해 제네시스가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 전기충전 시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충전소는 많았지만 완속충전소가 대부분이고 고속충전소는 찾기가 어려웠다. IT업계에 취업한 큰딸은 여행 내내 방전될까 조바심을 내며 하드웨어가 받쳐주지 못하는 첨단기술의 현실적 한계를 이번 여행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다고 투덜댄다.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가는 길은 지난 30년 결혼 생활을 돌아보는 길이기도 했다.
오래된 생선을 감쌌던 비닐을 벗겨낸 듯 묻혀두었던 과거의 이기적인 내 태도들을 마주하면서 스스로 견디기 힘들었는지 여행기간 내내 혼자 겉돌면서 애써 흑백사진 속으로 숨었다.
지난 세월 속에서 중요했던 순간순간마다 내게 상처 입은 아내의 고통이 거대한 바위산인 앨캐피탄처럼 무겁게 다가왔다.
수백억 년 지구뱃속에서 나온 마그마가 굳어지면서 형성된 거대한 화강암바위산은 수억 년 진화를 거쳐 마주하는 한 인간의 영혼과 맞닿아 조용히 침묵 속에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묵직한 울림과 슬픔이
오랫동안 손놓았던 연필을 다시 잡고 그림을 그리게 하였다.
사각사각 사브작사브작 천천히 연필 끝으로 전달되는 느낌은 누군가의 마음을 쓰다듬고 있는 것 같다. 그리는 대상은 이미 과거의 이미지에서 가져온 것이지만 그것을 불러내는 현재 하는 나는 그 대상을 그려내면서 대상에 대한 애정을 확인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상과 연결된 기억들을 그리는 그 순간에 오롯이 함께하는 활동으로 몰입한다. 과거의 기억, 그로 인한 느낌, 이미지, 상상력, 그리고 간절한 염원등이 현재 하는 연필 끝에서 표현하는 대상과 함께 녹아든다.
상처 입은 아내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그림작업으로 연결되었다.
거칠고 다소 간략하게 표현했던 바위의 표면들이 갈수록 깊어지고 선명해진다. 그와 함께 상처의 아픔들이 가시길 바라는 마음도 깊어진다.
그 누구에게도 혹은 그 무엇도 탓하지 않고 수억 년 온갖 풍파를 꿋꿋이 버티고 견뎌낸 단단한 바위 같은 모습이 우리에게서도 드러나면 좋겠다.
Achieving the Impossible
과연 불가능해 보이는 이 성취를 이루어 낼 수 있을까?
다만 하는 데까지 할 뿐이리라.
겨우내 얼었던 빙하가 5월이 되면서 폭포수 되어 쏟아지고 있다. 우리 삶의 얼었던 마음도 또한 수많은 상처도 언젠가 녹아지고 씻겨가길 조심스레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