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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 람 Jul 04. 2024

지우개

상처와 용서

지우개를 빼놓고 연필드로잉을 한다는 것은 상상하기 어렵다.

종이와 연필 예찬에서 지우개를 빼놓았더니 지우개가 아우성이다.

물론 크로키같이 거친 표현으로 형태나 감성을 즉흥적인 선으로 표현할 땐 지우개를 쓸 겨를이 없지만 천천히 세밀하게 그리는 그림에서는 그의 도움이 절실하다.

특히 구도를 잡고 밑그림을  그린 후 본격적인 디테일 작업에서는 지우개의 역할은 필수적이다.



수없이 반복되는 실수 속에서 지우개는 큰 용기와 격려이다.

그래도 괜찮아, 다시 해, 계속해보는 거야.

다행히 그 선들이 부드럽고 가벼운 흔적이라면 큰 부담 없이 지우고 새롭게 그려나갈 수 있다.

하지만 흔적이 강하고 짙어질 땐 도화지를 짓누른 흔적이 상처가 되어 쉽게 가시지 않는다. 조심스레 정성껏 지워도 그 흔적을 완전히 없애긴 역부족일 때가 있다.


지우개로 지울 수 없는 상처의 흔적과 씨름하며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가다 보면 그 흔적들은 결이 되고 골이 되어 또 다른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 만들어진다.


수억 년 비바람의 흔적으로 골이 깊게 새겨진 북한산 백운대 바위를 바라보고 있으니 어릴 적 곁에 계셨던 옛 할머니 옆모습이 떠오른다.



북한산 백운대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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