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습니다. 21세기 미술관은 호텔 이름입니다. 이름이 말해주듯이 이곳은 투숙객들이 숙박하는 호텔이면서 동시에 컨템퍼러리 아트전이 열리고 있는 미술관입니다. 아트 컬렉터였던 창립자는 오늘날의 예술작품이 하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습니다. 호텔에 묵는 동안 사람들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들의 작품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엿보고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겠지요. 피카소는 "예술은 영혼에 묻은 일상의 먼지를 씻어 준다"라고 했습니다. 여행객들은 이곳을 떠날 때쯤이면 조금은 맑아진 삶의 짐을 꾸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2. 21세기 미술관 호텔, 시카고 <사진출처 : Interior Design>
"어서 올라와 보렴. 내가 데려다줄 수 있는 곳이 궁금하지 않니." 금색 계단이 유혹합니다. 하지만, 금색 계단의 입구에는 무표정의 녹색 펭귄 파수꾼이 지키고 있습니다. 펭귄에게 말을 걸어야 하나 어떡해야 하나 망설이고 있을 때 어디선가 들소를 탄 남자가 나타납니다. 이제 녹색 펭귄 파수꾼의 신경은 온통 들소를 탄 남자에게 쏠려 있습니다. 이 틈을 타 얼른 금색 계단을 따라 올라갑니다.
3. 21세기 미술관 호텔, 시카고 <사진출처 : Interior Design>
금색 계단 끝부분에 다다르자 위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실망입니다. 녹색 펭귄의 눈을 피하느라 쉽지 않게 올라왔는데 처음 마주치는 장면이 어중간하게 걸려 있는 커튼과 지루한 암체어 세트라니요. 저라면 커튼과 암체어 대신에 뭔가 더 "짜잔~"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계단을 거의 다 올라왔을 때 "짜잔~"이 보이기 시작하면, 저건 뭘까하는 호기심에 가슴이 콩닥콩닥 뛰겠죠. 이 흥미진진한 순간을 디자이너는 놓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올라온 걸 후회하는 건 아닙니다. 더 많은 예술 작품들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4. 21세기 호텔, 시카고 <사진출처 : Interior Design>
2층은 다목적 공간입니다. 평소에는 미술관이고 스케줄에 따라 회의실이나 행사장으로도 변신하는 공간입니다.
5. 21세기 호텔, 시카고 <사진출처 : Interior Design>
6. 21세기 호텔, 시카고 <사진출처 : Interior Design>
컨템퍼러리 아트에서 비디오 아트도 빼놓을 수 없겠죠. 현재는 코타 에자와(Kota Ezawa)의 애국가(National Anthem)라는 애니메이션이 상영되고 있습니다. 작가는 샌프란시스코 미식축구 팀 선수가 흑인 인권 실태에 항의하는 의미로 애국가가 연주될 때 한쪽 무릎을 꿇는 것을 보고 큰 울림을 받아 작품을 제작했다고 합니다. 좋은 생각을 하는 것도 어렵지만, 좋은 생각을 좋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은 더 어려운 걸 알기에 무릎 꿇은 선수의 용기와 실천에 존경을 표합니다.
화면 앞에 뒹굴고 있는 팽이 같이 생긴 것들은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의 회전하는 의자입니다. 사실 애국가와 회전하는 의자의 조합이 맞나 잠깐 의심했습니다. 어린 시절이었던 80년대에 애국가가 울리면 길 가다가도 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입니다. 애국가가 연주되는데 뱅글뱅글 돌아가는 의자에 앉아 있다고 해서 애국심이 변하는 건 아닌데 말이죠. 인종차별을 얘기하는데 의자를 굴리고 앉아 있다고 해서 그 주제를 경시하는 건 아닌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