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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산고(日本散考)》

소설가 박경리의 날카로운 일본론

박경리, 《일본산고(日本散考)》, 마로니에북스, 2013


일본어 번역하는 사람이라고 나를 소개하면 종종 사상검증을 시도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들의 눈빛을 조금 과장해서 묘사하자면, ‘일본어를 배우다니... 애초에 일본이라는 나라와 문화에 빠져 있었으니 시작한 일이었을 테고 그럼 종국에는 친일 행위로 이 나라에 망국을 초래할 유해한 인물이 아닌가’ 하는 의심으로 가득 차 있다.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시선을 마주하고 있노라면 사실 썩 유쾌하지는 않지만 한편으로는 이해도 간다. 그리고 일본을 향한 거부감이 그만큼 본능적이라는 사실을 강하게 느낀다.


“어쩌다가 일본어를 배우게 되었냐”는 질문에 한마디로 똑 부러지게 대답하기는 어렵다. 누군가는 ‘애니메이션, 만화 감상’ 같은 실용적인 용도로 일본어를 공부했다고도 하던데 나는 그렇지도 않다. 물론 처음 일본어를 배울 때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나 드라마를 보기도 했지만 단지 공부를 위한 수단이었지 목적은 아니었다. 그래서 딱히 이렇다 할 답을 못 내놓고 우물쭈물하기 일쑤다. 다만 머릿속에 맴돌 뿐 똑 부러진 말로 나오지 않는 생각의 타래 중 한 가닥이 ‘일본을 향한 본능적인 거부감’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나의 거부감이기도 하고 우리의 거부감이기도 하다. 이 감정의 시작은 어디인가 하는 문제는 늘 나를 강하게 끌었다. 자연스럽게 근대사와 한일 관계에도 관심이 생겼다. 근대 이후의 일본을 논하는 글도 눈에 띌 때마다 읽어 둔다.


이 책은 소설가 박경리가 ‘토지’를 쓰는 동안 틈틈이, 그리고 완간 이후에 쓴 글, 그중에서도 일본과 관련한 원고들을 정리해 저자 사후에 발간한 것이다. 스무 살까지 일제강점기라는 비극을 눈앞에서 목격했던 저자의 일본론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저자는 살아생전 늘 스스로 ‘철두철미한 반일 작가’라고 소개했다. ‘토지’ 완간 이후의 계획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앞으로는 실제적인 이론이 서는 일본론을 집필할 예정입니다. 우리 세대 지나면 쓸 사람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두 번 입 못 떼게 철저하게 조사해 쓸 겁니다. 어중간하게 칼 뽑지는 않을 겁니다."


라고 대답했다. 이 말에서도, 책의 한 글자 한 글자에서도 날카로운 지성으로 일본을 향해 겨눈 시퍼런 서슬을 느낄 수가 있다.


저자는 책에서 다양한 사례를 들며 본인의 일본론을 뒷받침하고 있다. 가령 문학 비평의 측면에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의 작품에 담긴 탐미주의는 알맹이 없는 일본의 허무주의를 대변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타국의 핵실험 소식에 일본이 대뜸 날 선 반응을 보였다는 뉴스에서도 일본을 읽는다. ‘반일’이라는 뜨겁고 굵직한 동맥을 짚으면서도 그곳에서 뻗어나간 감정의 모세혈관까지 세세하게 훑었다.


분명 의견을 주장하는 책이지만 읽는 내내 문학 작품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특히 2부 후반부에 Q라는 인물에게 쓴/말하는 형식의 글이 2편 실렸는데 의식의 흐름에 따라 유려하게 이어지는 내용이 마치 모노드라마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3부는 매우 흥미롭다. 일제 치하 조선에서 자랐다는 일본의 지식인 다나카 아키라가 현대 한국의 민족주의를 비판하며 잡지 <신동아>에 기고한 ‘한국의 통속민족주의에 실망합니다’라는 글과 저자가 반박하여 똑같이 <신동아>에 기고한 글을 나란히 실었다. 지식인이라는 사람이 쓴 글치고는 주장하는 바가 유치하고 근거 역시 조악한 글을, 저자는 한 문단, 한 문장, 한 글자, 심지어 여백까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기세로 촘촘하고 끈질기게 반박해낸다. 이따위 글에 투자하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는 스웨그 넘치는 디스도 덧붙이면서.


나는 일본에서 지내면서 몇 번인가 사과를 받은 일이 있다. 한번은 만난 지 얼마 안 된 동갑내기 친구가 대뜸 다가와서는 “미안합니다.” 하고 사과했다. 이제 막 인사를 나눈 사이에 사과받아야 할 사건이 있을 리도 없어 이유를 물었더니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부모님께 들었다. 한국인을 만나면 사과를 해야 한다고 배웠다.”라고 했다. 그 친구도 나도 스물두 살이었다. 그렇기에 나는 저자의 이 말에 무척 공감한다.


“나는 철두철미 반일 작가지만 결코 반일본인은 아니다”…부정해야 하는 것은 인류의 생존을 저해하는 것이지 인간 그 자체가 아니기 때문이다. (84쪽)


다만 첫 단추를 잘못 끼워 점점 뒤죽박죽 뒤엉켜 가는 일본이 우려스러울 뿐이다.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모든 이가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의 주범이고 가해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데도 정작 일본은 자신들이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핵폭탄을 맞았기 때문이다. 근대사를 다루는 일본의 태도는 늘 그런 식이다. 핵심을 짚지 않고 주변을 배회하다 스스로 유익한 정보만 크게 확대하여 공표한다. 그런데 조금만 주위를 둘러보면 금방 거짓임이 들통날 말을 어째서 주야장천 반복하는 걸까? 거짓을 덮기 위해 자꾸 거짓을 만들어 내야 할 텐데, 지치지도 않을까? 책의 표현처럼 정말 ‘모순에 대하여 갈등을 느끼지 않는 순발력이 강한 민족’이어서 그런 걸까?


나는 일본이 과거를 ‘사과’하고 진심으로 ‘반성’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한편 작금의 상황으로는 요원한 일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과와 반성’은 지금 일본을 지배하는 시스템, 즉 권력을 탐하는 무리가 스스로 정당성을 갖기 위해 천황이라는 존재를 등에 업고 설치는 지배 구조의 뇌관에 닿아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까지 고집을 피우고 거짓말을 늘어놓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이렇게 복장 터져 하면서도 나는 왜 일본어를 공부하는 것도 모자라 번역까지 하는가 하면… 다음에 적당한 책을 만나서 이야기해 볼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 글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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