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아님
이곳은 내 나름대로 서평이랍시고 쓴 글들을 모아 놓은 공간이지만 이 글은 서평이 아니다. 서평은 말 그대로 ‘책을 평’하는 작업인데, 이번에는 책을 다 읽고도 평을 할 만큼 내용을 이해했다고 여겨지지가 않았다. 근본적인 원인은 부끄럽지만 내 지식 부족일 것이다. 지금 나에게는 다윈이라는 인물이 지닌 가치와 그에게서 파생된 현대 생물학을 이해할 만한 지식, 그러니까 책의 내용을 평할 지식이 충분하지 않다. 그래서 서평 대신 독서 기록으로, to read list(다시 읽을 책 목록)로 남겨 둔다.
이 책 《다윈의 사도들》은 한국을 대표하는 생물학자 최재천 교수가 현대의 다윈주의자 열두 명과 나눈 대담을 녹취록 형식으로 엮은 책이다. 여기서 다윈주의자란 ‘다윈의 진화론을 계승한 사람’쯤일까. 아니, 진화론이 당연시 여겨지는 현대 사회에서 다윈이라는 거인의 어깨에 올라타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으랴. 그러니 어쩌면 다윈주의자란 그저 현대의 뛰어난 학자를 뜻하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진화론은 무엇인가. 생물은 특별한 설계에 따라 창조된 것이 아니라 특정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를 거듭해 온 존재라는 이론이다. 학교 다닐 때 배우기도 하고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한 문장이나마 설명을 달 수 있으니 이쯤 되면 우리가 제법 다윈이나 진화론을 잘 알고 있는 것도 같은데 저자는 우리나라가 ‘다윈 후진국’이라고 말한다. 어린이 책에도 등장하는 다윈이건만 최근에는 ‘다윈 포럼’이라는 그룹을 조직해 다윈을 알리는 활동도 한다고 하니 지금껏 내가 알던 다윈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거나 잘못 이해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윈은 누구인가? 무엇이 특별한가? 요컨대 저자와 인터뷰이들이 말하는 다윈의 특별함은 ‘통합’에 있는 듯하다. 독립적으로만 보이는 저마다의 생물 종, 더 나아가 자연이 사실은 ‘진화’라는 하나의 법칙 아래 작동하고 있음을 처음으로 정리해 보인 사람이 바로 다윈이라는 것이다. 진화론은 그저 생물학 이론이 아니라 우리가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와도 맞닿아 있다. 따라서 진화론을 이해하는 방식은 곧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다. 다윈의 의도와 달리 지난 150년 동안 인간은 진화론을 곡해해 인종에 순위를 매기는 우생학을 개발했고 미개한 문명을 개화한다는 제국주의 기치 아래 무고한 생명을 수없이 앗았다. 그리고 제국주의적 사고방식은 지금도 여전히 우리 삶 구석구석에 침투해 있다. 새삼스레 다윈이 강조되는 것도 어쩌면 이런 이유가 아닐까.
책에는 함께 읽으면 좋은 책들은 물론 각 인터뷰이의 저서들도 잘 정리되어 있다. 아무래도 이 책의 제대로 된 서평은 그 책들을 읽고 난 뒤에나 쓸 수 있겠지. 꽤나 긴 여정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