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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고 Jul 10. 2021

김노이 작가가 들추는 현실과 이상 사이 괴리

* 김노이 작가님의 작품은 모두 코미코 플랫폼에서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아무리 ‘현실적’이라는 반응을 얻어도 정말 현실 그대로를 그리는 로맨스 작품은 많지 않다. 공감 가는 대사나 상황을 그려도 일단 주인공의 외양과 스펙이 공감 가지 않고, 서로 오해하고 질투하고 투닥대는 모습도 있지만 대부분은 매끈하게 해결된 후 충실히 해피엔딩으로 나아가기 때문이다. 즉 연애 과정에서 드러나는 모순되고 치졸하고 이기심 많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 모습은 생생하게 다루어지지 않는다.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찌질한 모습은 내가 사는 현실에서도 숱하게 보는 모습이니, 콘텐츠를 보는 시간만큼은 아름답고 예쁜 모습만 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보통 내 연애는 순탄치 않고, 세상에는 눈이 휘둥그래질 정도로 멋있고 예쁜데 재력과 인성과 능력까지 갖춘 사람이 드물며, 그런 사람과 내가 이어질 일은 로또 맞을 확률에 가깝다. 콘텐츠 속 세상은 그렇지 않다. 평범한 사람(으로 그려지지만 절대 평범하지 않은 사람)이 모든 조건을 다 갖춘 사람과 연애하고, 중간중간 사랑을 위협하는 장애물이 있지만 크게 찌질하지 않은 모습으로 장애물을 훌쩍 뛰어넘어 해피엔딩에 도달한다. 작품이 끝난 이후에도 독자는 작품 속 커플이 변치 않는 마음으로 사랑하며 살아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나도 로맨스 작품을 좋아한다. 예쁘고 멋진 주인공들을 보면서 하는 대리만족과 덕질이 좋고, 촘촘한 감정 묘사와 상대방을 위해 한 몸 불사하는 서사로 사랑이 한껏 아름답게 표현되는 방식도 좋다. 하지만 로맨스 작품만 줄줄이 보다 보면 이따금 ‘내가 지금 방구석에서 현실에 존재하지도 않는 사람을 두고 혼자 흐뭇하게 웃으면서 뭐하는 거지’ 하며 현타가 오기도 한다. 이럴 때는 판타지로 붕 뜬 내 마음을 현실로 끌어내려줄 작품이 필요하다.

김노이 작가는 우리 주변에 있을 법한 캐릭터를 중심으로 현실적이다 못해 없어 보이기까지 하는 로맨스를 그린다. 밥 먹듯이 자기합리화하고, 있어 보이려고 노력하며, 내 논리에 맞게 인생을 이끌어가려 하지만 어쩐지 뜻대로 되는 일 하나 없는 모습은 나와 내 주변 사람을 닮았다. 김노이 작가가 그리는 찌질한 현실 속 캐릭터를 보면 못났다 싶으면서도 끊임없이 공감의 웃음이 터진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찌질한 면모를 밉게 그리지 않고 공감으로 이끌어내는, 김노이 작가의 작품을 소개한다. 



[폼 잡고, 각 재고, 아닌 척 허세 부리는 현실 남녀의 모습 - <조금 더 가까이>]

김노이 작가 데뷔작 <조금 더 가까이>는 20대 남녀 4명이 연애를 대하는 방식을 통해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당사자가 가진 본 모습 사이 간극을 다룬 작품이다. 꿈을 좇는 일에 가장 큰 가치를 두며 현실적인 가치를 선택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는 미래, 보여지는 부분에 가치를 두기 때문에 현재 상황에 가장 잘 맞는 조건을 따지는 데 익숙한 리연, 진중해 보이지만 사실은 찌질한 면모를 진지함으로 포장하는 데 능숙한 진무, 풍족한 경제력과 쾌활한 성격을 가졌지만 어려움을 모르는 만큼 매사 가볍기만 한 준후. 네 사람은 항상 자기 가치관이 정답인 양 이야기하지만 본인이 새로이 욕망하게 된 대상, 상대방의 실체, 예상치 못하게 맞닥뜨린 변화 앞에서 손바닥 뒤집듯 말과 행동을 바꾼다. 한 캐릭터에 한해 스포하자면, 

진무는 항상 사람을 볼 때 외양보다 됨됨이를 봐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은 리연의 미모에 반하고 됨됨이를 알아볼 생각 없이 리연에게 어필할 기회를 미친듯이 찾는다. 진무처럼 다른 세 캐릭터도 종종 자기합리화를 하고 언행이 일치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각 캐릭터가 사고하는 과정이 과장되거나 억지스럽지 않고 오히려 보통 사람이 가진 모순을 잘 살려 본인 또는 주변 사람을 떠올리며 공감하기 쉽다.




[1인칭 시점과 전지적 시점 사이 괴리 - <우먼 인 트러블>]

<조금 더 가까이>가 특정 사건 없이 주인공 네 명을 중심으로 일상을 보여준다면, <우먼 인 트러블>은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실체 사이 간극을 다룬다는 주제를 동일하게 가져가되 한 사건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사건은 다음과 같다. 매일 메마른 감정으로 하루하루를 보내는 고등학교 교사 노민혜. 그의 무채색 일상은 어느 날 교무실 책상에 등장한 편지 한 장으로 핑크빛이 된다. 편지를 보낸 사람이 누구일까 설레는 마음으로 상대방을 추리하던 중, 편지를 놓고 간 사람이 다름 아닌 남학생 연우임을 알게 된다. 교사와 제자 간 사랑이라는 금단의 현실 앞에 노민혜의 이성과 감정은 점차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게 되는데…

얼핏 클리셰로 가득한 로맨스처럼 보이지만, 사건에 관계된 사람들의 1인칭 시점과 전지적 작가 시점이 교차되면서 독자는 편지 사건이 생각한 것과 전혀 다른 실체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희극인지 비극인지는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이 작품을 보면 멀리서 봤을 때와 가까이서 봤을 때가 다르다는 점은 확실한 진리처럼 보인다.




[처음부터 아름답고 완벽한 섹스는 없다! - <현실 ㅅㅅ>]

김노이 작가 최신작 <현실 ㅅㅅ>는 제목 그대로 사람들이 현실에서 실제로 마주하는 다양한 섹스를 그리는 작품으로, 마치 친구끼리 모여 밤새 떠드는 19금 토크처럼 적나라하고 웃픈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작품은 초반부터 캐릭터의 입을 빌려, 로맨스 작품에서 그리는 성관계가 지나치게 판타지에 가깝다고 말한다. 어떻게 주인공은 매번 만족스러운 관계를 하고, 한 번도 경험이 없는 남자가 처음부터 완벽하게 잘 하는지 의문을 표한다. <현실 ㅅㅅ>는 몇몇 캐릭터를 중심으로 판타지를 걷어낸 서투르고, 안 맞고, 어딘가 삐걱대는 현실 관계를 그린다.

<현실 ㅅㅅ>는 현재 연재 중인 작품이기 때문에 자세한 내용은 다루지 않으려 한다. 다만 지금까지 연재된 분량을 보면서 느낀 점은, 작가가 전작에서도 다룬 ‘겉으로 보이는 부분과 실체 사이 간극’이라는 주제는 이번 작품에서도 유효하다는 점이다. 누구나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모습이 있기 마련이지만 상대방이 기대한 바와 얼마나 비슷한 모습일지는 아무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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