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this journey Sep 22. 2019

밀레니얼의 고군분투, 견-뎌-.

견디다가 얻은 오십견

올해 여름, 회사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은 '밀레니얼 세대'였다. 그리고 요즘 가장 많이 듣고 있는 말은 'Z세대'다. 실제로 다양한 매체에서 세대의 특징을 분석한 글과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업무 특성상(?) 사람과 사회의 특성을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좋아하는 일이기에 재밌게 하고 있다. 그러나 '요즘애들 만나보니까, 이러이러하던데'라며 시작되는 상사의 말이 불만으로 변하는 순간, 그리고 내게서 그에 대한 공감을 원하는 순간 피곤함이 증폭되기 시작한다.

  


세대의 특징과 차이는 당연히 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그를 인지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면 조직이나 회사 차원에서의 효율은 물론 사회 통합과 발전에도 유의미한 변화가 나타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진짜 이해할 마음이 있습니까? 그래서(그걸 이해해서) 무엇을 하고 싶은데요?'이다.


편견의 위험

사람을 알고 이해하게 되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던 상황이 이해되고, 소통이 원활해져 서로에게 좋은 것 아닌가?.. 맞다. 좋다. 그러나, 우리에겐 나와 다른 것을 감지하는 센서가 있다. 그를 인지하는 순간, 그 다름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를 확실히 알 때까지 경계벽이 세워진다. 이 다름을 받아들이기 힘들 때 앎은 합리화의 박스 속에서 편견으로 변한다. 편견만큼 사람에 대한 판단을 흐리는 게 있을까. 좀 더 가깝고 깊은 사이가 되려는 마음이 있지 않는 이상, 더 알고 이해하려는 노력은 줄어들기 마련이고 그렇게 우리는 언제든 칼이 될 수 있는 스트레스를 안고 살게 되는 것이다.


밀레니얼의 진짜 속사정, '나'를 만들려고 애쓰고 있는 거예요

사실 억울하다. 밀레니얼이야 말로 낀세대가 아닌가.. 성실하게 지금의 사회와 문화를 일구어낸 전 세대들을 보며, 달라진 사회에서 저것만으론 살아남지 못할 거라는 불안. 걱정과 겁이 미리 생겨버렸다. 나만의 기준 없이는 힘들 것 같다는 두려움. 이것이 아집과 노답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미 이들은 실생활과 온라인 세계에서 보고 들은 게 너무나 많다. 좀 더 직관적인 Z세대와는 또 다르다. 밀레니얼 세대가 유년기-청소년기에 변화를 경험했다면, Z세대는 이미 변화된 세상에 태어난 것만 같다는 생각에 조금 더 불안함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마냥 억울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세상에서 '나'만 힘든 건 아니니까. 이 말로 나의 고통을 억눌러야 하거나, 스스로를 몰아붙여선 안된다. 그러나, '나'에 집중하는 만큼 나의 주변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그들 역시 수많은 '나'들이기 때문이다. 각 특성의 짙고 옅음이 다르고, 그 색채들이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사람마다 고유한 빛을 띠고 있다. 심리검사 척도로 많이 쓰이는 MBTI의 경우, 유형이 같은 사람이더라도 실제 생활에서는 다른 성격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 그것이다. 경향성을 보여주는 것이지, 그러한 사람이라 유형화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우리의 고유한 빛에 더해 시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았을 수도 있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 공동체나 그 보다 작은 가정의 영향을 크게 받았을 수도 있다.



10년 전에도 신세대 등장에 많은 관심이 쏠렸다. 이들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다거나, 사회 전반에 파란을 일으키고 있다(긍정적인 쪽으로)는 이야기가 나왔다. 밀레니얼 세대, 내가 봐도 확실한 시대 컬러는 지니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그 사람은 그러그러해서 저래'라는 이야기 대신, 그 이면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거나 나도 누군가에겐 %^&*(@한 사람이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게 마음이 편해지는 길일 수 있다.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하는 방법을 택했다. '이런 사람도, 저런 사람도 있지' 하면서.


참 어려운 세상이다. 고민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의 미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의 미래, 그리고 풀리지 않는 현재까지. 다들 같은 것을 고민하며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다를 수 있지만 또 다르지도 않다. 모두 내가 걸어왔던 혹은 걸어갈 시간의 길 위에 서있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 길 위의 풍경들은 달라졌다. 그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 라떼 이즈 호올스-. 라떼는 고소하지만 쓰다. 시럽 한 펌프만 넣어주자. 다들 각자의 어려운 시간을 이겨내고 있는 사람들이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PODO Shorts] 365일 36.5℃, 균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