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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렇다 Nov 12. 2023

깎는 것과 달리기를 생각하며

-향출판사, 김혜은의 <연필>

가짜를 만들기 위해 진짜를 없애는 것은 아닌지?

---막연하지도 거대하지도 않은 것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하고 그것이 이미지로 재현되는 지점을 좋아합니다. 오늘도 부끄러워 소리 내지 못하는 것을 찾아 들여다봅니다ㅣ. 예술과 자연을 모두 사랑하는 마음으로 처음 그림책 [연필]을 그렸습니다.---


군더더기를 깎아내려는 노력이 돋보이는 그림책이다. 수없이 색연필을 깎으며 그렸을 그림책이다.


刻苦, 쓰디쓴 고를 새겨넣는 각고를 하려면 뼈를 깎아내는 고통을 견뎌야 하는가?


나무 도장에 새겨진 이름처럼. 혹은 동판의 무늬처럼?

연필이 그렇구나!


최대치의 흡사함의 경지를 위해 깎아내는 것들을 생각하게 되는 것은 김혜은의 [연필] 그림책을 펼쳤기 때문이다.


쉽게 말하자면, 나무를 그리려고 나무를 깎아 연필을 만드는 일에 대해, 한번쯤은 생각해보자는 것. 찬반 논쟁이전에 ‘변환’의 수고로움을 겪으면서 이뤄지는 수많은 일을 통해 굳이 의미를 찾아 보자는 것이다.


‘순환’의 과정일 수도 있겠다. 그러려면 더더욱 추구되는 ‘가치’가 전제되면 죄책감은 좀 덜할테고.

먹는 일이 즐거우려면 먹는 일을 통해 생존의 질적 향상을 생산하는 쪽으로 좀 더 애를 쓰면 되지 않을까?


내가 살아 너도 좋고 우리에게 득이 된다면 생물을 죽여, 먹는 일이 당연한 동력의 작용으로 인정될뿐만 아니라 숭고한 행위가 되듯, 나무를 깎아 만든 도구로 인간의 생활에 미치는 더 큰 에너지원으로의 전환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그러고나면 수십년간 다 쓰지 않고 깎다가 그냥 버려버린 쓸 것들에 대해 덜 미안해지는데. 죄책감을 덜겠다고 자원을 소모하는 일에 대해 이리 고찰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살아 너도 좋고 우리에게 좀 득이 되는 것이라면 인간이 좀 잘 살겠다고 하는 모든 ‘일’들에 대한 윤리, 도덕적 혹은 우주 철학적 반성이 좀 완화되긴 하니까.

깎는 고통을 통해  더 나은 가치가 추구된다면야.


내가 살아 너도 좋고 우리에게 좀 득이 되는 일을 좀 하려고 오전 열 시 넘어서부터 자전거로 곡교천 자전거 일대를 라이딩했더랬다.


마을 동아리 봉사 활동 후 은행나무길을 산책하다 11월 12일 전국 마라톤대회 준비차 무대와 부스를 마련중인 것을 본 토요일. 거세진 바람결에 강물마저 차가워지자 억새가 울고, 은행나무 잎이 노랗게 떨어지면서 가을 하늘이 그결에 더 파랗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자, 문득 내년에 10킬로 마라톤 참가를 해보고 싶단 욕구가 일었기 때문이었다.


달리는, 각양각색의 사람들 표정을 보고 싶었던 것이다. 달리는 일의 즐거움을, 그러다 훅 찾아드는 달리는

일의 고됨, 급기야 찾아오는 달리는 일의 고통을, 그리하여 ‘이게 다, 무슨 소용이람!‘이라며 달리는 일을 시작함에 대함 후회를.


필시 주저앉는 이들이 생겨날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결말에는 ‘끝까지 달려낸’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들을 보면서 주저앉았던 이들은 무얼생각할까?


‘완주한 이들이 못마땅해 다음번부턴 달리는 일따윈 안하고 말거야!‘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


이번생은 틀렸지만 ’다음생엔!!‘을 기대하는 이들처럼

다음의 완주를 꿈꾸며 후덜거리는 다리를 일으켜세워

어떻게든 걸어 나가겠지?


그런 의미의 ‘달리기’를 하고 싶었다. 지금은 주저앉고 싶은 달리기라도 ‘다음을’ 도모하는 달리기. 혹은 ‘저들처럼’을 따라 나가볼 수 있는 달리기. ‘다음을’ 다짐하기에 노력하게 되는 일상이고 나아가서  내가 살아가는 일이, 누구가에겐 ‘지향하는 저들이‘되었으면 조금더 사는 일이 가치로워지고.


나를 깎는 행위가 그저 쓸데없는 낭비의 수고로움으로 끝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의미생산, 더 나은 가치전환, 되도록이면 누군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일말의 어떤 에너지원으로도 쓰여지기를.


그걸 보려고 10킬로 마라톤 대회장인 곡교천을 왕복하는 세시간여의 라이딩을 후에, 도서관을 향해 걸었던 것이다.


김혜은의 [연필]을 펼쳐보며 ‘깎다’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내가 살아 너도 좋고 우리가 즐거우려면 깎아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하여 꼭 새겨 넣어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쓰다보면 알게 될까? 뭔가를 그리다 보면? 혹은 달리다 보면?

달리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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