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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몬도 Jul 20. 2021

소외받는 일이 싫어서

깍두기로 호명되던 내가 단독자가 될 수 있을까?


영화 <우리들> 첫 장면에서 피구 각 팀 주장들은 한 명씩 같은 팀 하고 싶은 친구를 호명한다. 주인공 선이는 그중 가장 오랫동안 선택되지 못하는 동안 불안하고 초조한 얼굴이 클로즈업되어 나온다. 그 장면을 보는 시간 내내 시간이 느리게 갔고 심장이 빨리 뛰었다. 부끄러운 어린 날의 내 모습을 소환해 온 이 장면을 보는 동안 영화 속 재생되는 사운드보다 터질 것 같은 심장 박동이 뛴다. 그 어떤 호러 영화나 스릴러 영화 속 살인 예고 장면보다 내게는 더 강렬한 장면이다. 이 신을 다시 재생하는 일에 더 많은 용기가 필요하다. 심장 박동 소리가 크게 울려 몸만 훌쩍 큰 어른인 나는 숨을 재간이 없다.


영화 스크린에서 나의 어린 시절로 차르르 넘어간다. 흐릿한 기억 속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어쩔 수 없지. 너는 그럼 깍두기 해~"

-자. 숨는다. 10초.. 9초.. 8초… ………… 3, 2, 1. 게임 시작!

가장 늦게 어정쩡하게 숨느라 제일 먼저 발각되어 버렸다.


영화 <우리들> 피구 게임을 보는 내내 숨을 죽였다. 피구팀을 선정하는 과정을 보며 마음을 눌렀다.



깍두기 역할로 호명받는 일은 자주 있었다. 깍두기 역할이 되는 건 도대체 익숙해지지 않는다. 깍두기로 자주 불렸던 이유는 단순하게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래들은 우선 단짝 친구를, 다음엔 이 친구를 곁에 두고 싶은 친구들을, 그리고 가장 인기도 없고 게임도 잘 못하는데 버려둘 수는 없는 깍두기가 되었다. 게임 능력이 좋지 않아 깍두기는 이 팀에 있다 저 팀으로 갔다 자주 이동했다.


이 단어를 다시 만난 건 대학 상담소에서 2년 차 상담 수련을 하고 있을 때였다. 당시에 집단상담 관련 기초교육을 받는데 이 단어를 보고 자주 혼자였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친구들 사이에 경계를 오고 가는 과거의 모습이 잔상처럼 남아 단어 카드를 보고 많이 울었다. 당시에 수련 기관이었던 대학 상담소에서도 서먹한 관계를 지내고 있었다. 다른 동료 상담사들 사이에서 어울리지 못했다. 묘하게 나의 어린 시절을 자극하는 분위기가 나만 쏙 빼고 무리에 형성되기 시작했다. 멋지고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어색한 채로 쭈그러져 있었다. 그곳에 출근하는 날이면 시간이 천천히 흘렀다. 나를 제외한 그들끼리의 활동과 대화가 늘어가게 된다. 그런 때면 친절하게도 중간중간 설명을 했다. ‘00 샘 집들이에 다녀왔어요. 시간이 맞는 사람들만 하다 보니 샘에게는 연락 못 했어요.’ 그 후로도 그들은 내 앞에서 설명해야 하는 일들이 점점 늘어났다. 초등학교에서 만난 또래들보다 상담을 전공한 동료들은 훨씬 다정한 사람들이었다. 나만 외로운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몰랐을 뿐. 소외감이란 감정이 주변에 빙 둘러앉았다. 퇴근 시간이 되어 편한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길에 종종 울음이 나왔다. 종일 함께 한 공간에 내가 없다면 모두가 더 자유롭고 즐거울 것 같은 곳에서 벗어 나와한 발 한 발. 나를 사랑하는 이들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은 빨라졌다.



언젠가 김보라 감독의 인터뷰를 통해 ‘단독자’라는 개념을 만났다. 일상생활에서 ‘우리’와 ‘우리가 아닌 것’으로 구분 짓지 않으려는 내용을 읽고 오랫동안 이 말을 가슴에 떠올리고 있다.


“제가 안 좋아하는 것 중 하나가 어떤 그룹을 만들어서 ‘우리’라고 말하는 거거든요. 남을 소외시키는 거잖아요. 그래서 누구랑 친하다는 말도 잘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냥 단독자로 있으려고 해요. 사실 중요한 건 누구랑 친하고, 누구랑 친하지 않다는 걸 구분 짓는 게 아니라 그저 지금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일상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작지만 무언가라도 배우려는 자세를 갖는 거라고 생각해요.” (2019. 11 독서신문 "여러분이 각자 인생의 단독자가 됐으면 좋겠어요")



영화 <우리들>의 스틸컷



우리와 우리가 아닌 것. 어떤 모임 안에서 A와 B 둘만 친하게 되면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취하는 정보의 값은 불균등해진다. 정보의 불균등은 결국 의사결정에 꼭 영향을 미치게 된다. 모두에게 공평하게 배분되는 정보를 바라지만 그런 현실은 없다는 걸 알고 더 이상 소외되지 않고 싶어 마음을 닫는다.  함께 있으면서 더 외로워지는 모임을 지속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해버린다.

동시에 나는 모임 안에 최고의 인-그룹이 되고 싶다. 전에 소외되었던 과거에서 지금은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집중받고 관심의 대상이 되어 보상을 받고 싶다. 우리가 아닌 것에 있던 시절에서 벗어나 무리 속에 주도하고만 싶다.




영화 <우리들>의 주인공 선이


혼자만 멀찍이 떨어져 앉은 사람에게 가 아무 말 않고 반대편에서 이런 마음을 가진 나도 있다고 존재하고 싶다. 자기들끼리만 즐거워 보이는 건 재미없지 않냐고 하면서 근처에 서성이며 투덜대고 싶다. 이러려고 상담사가 되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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