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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몬도 Mar 02. 2021

사람들은 언제 상담소에 가게 될까

왜 지금 상담소에 오게 되었나요?


그에게 마지막으로 같이 부부상담센터를 가자고 제안한 밤에 그는 여전히 가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내가 먼저 상담을 다시 받으러 갔다. 상담을 받으러 가는 건 상담사의 직업을 지닌 이에게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심리학을 한 대학 때부터 심리상담은 너무나 익숙한 일이었다.

일상 대화에서 ‘상담을 받는다’라는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대학을 다닐 땐 전공 수업에서 학생상담센터에서 10회기 정도의 상담을 받고, 상담 종결한 것을 바탕으로 보고서를 쓰는 과제가 있었다. 그때 심리적인 어려움이 없진 않았지만 전공 과제를 이유로 상담자 앞에서 이야기를 했다. 작은 목소리에 귀 기울여 주던 상담사의 눈빛에 많이 울었다. 공강 때 상담을 받고서는 다음 수업 강의실에 퉁퉁 부은 눈으로 들어가도 상담실을 다녀온 걸 암묵적으로 알아챘지만 다들 모른 체하며 수업을 들었다. 많이 울고 중요한 전공 수업을 들어가기가 어려운 경험을 여러 번 한 후에야 공강 때가 아닌 수업을 다 마친 이후로 시간을 변경했다. 이후에 상담자로서 학상담센터에서 일을 할 때에도 이 경험은 도움이 되었다. 가능하면 상담 회기 초반에는 내담자에게 수업을 모두 마친 후에 오도록 상담 시간을 조정했다.



함께 사는 동안 스스로 알아채지 못했지만 우울이 깊이 들어와 자리하고 있었다. 힘없이 진흙밭에 발을 빠뜨려도 전에 상담받았던 상담 선생님을 떠올리진 못했다. 매일같이 싸우는 일만 반복되고,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고만 알았을 뿐. 무기력하고 표정이 없었다.


그가 상담을 함께 받기를 거절한 이후 나는 이전에 상담받았던 상담 선생님에게 연락을 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오랜만이죠. 추후 상담을 받고 싶은데요. 퇴근하고 오면 7시쯤 되어요. 가능한 가장 빠른 때로 일정 잡아주세요.’




상담자가 첫 시간에 내담자에게 묻는 공통 질문이 있다.


'답답한 질문'  illust Copyright © slowtheslow

일러스트 저작권자 slowtheslow 에게 이용허락을 받았습니다. 모든 저작권은 slowtheslow에게 있으며,  많은 작품은 아래에서   있습니다

 https://grafolio.naver.com/slowtheslow




상담자가 첫 면담에 내담자에게 묻는 공통 질문이 있다.



“왜 지금 상담소를 찾아오게 되었나요?


상담의 동기와 오게 된 경위를 파악하는 일은 내담자와 내담자 문제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려는 사례 개념화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이다.


내담자들은 오기 전이 더 힘들었다고 말하곤 했다. 주로는 이런 목소리였다.
‘상담센터 오기 전이 가장 심각했어요. 어떻게든 버텨냈거든요. 그 시간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아서 오게 되었어요. 너무 힘들었거든요.’
어째서 가장 힘든 시기를 지나친 다음에야 오게 되는지 상담자 자리에 앉아 귀로 들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하고 나니 이전에 충분히 이해하진 못했다.


그러면 슈퍼바이저에게 들었던 말을 떠올려 보았다.

 ‘내담자들은 정말 자기가 쓰는 방법으로 또 어려움을 헤치다가 그게 안되면 상담소를 찾게 돼. 가장 힘들 때는 변할 수 있다고 믿을 수 없기에 상담소에 오질 않고 에너지를 차린 다음에 오게 되지.’

그 말들이 내게도 생생하게 이루어졌다. 그의 거절은 ‘아직은 상담에 가기 싫은데 스스로 해볼 수 있을 거 같은데’하며 먹구름 색의 마음 풍경에 변곡점이 되었다. 어두운 방에서 걸어 나와 추후 상담을 받았고, 상담의 시작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즘 신혼집에서 걸어 나왔다.



돌이켜보면 상담자로서 분석 상담도 받았지만 스스로를 상담이 필요한 내담자라고는 불과 몇 년 전까지 생각해본 적 없었다. 계획대로 순탄했고, 열심히 한 공부가 나를 상담자의 자리로 자리매김시켰다. 그 계획 안에는 자격증도, 그때 내게 필요했던 결혼도 함께 있다. 그런데 나의 힘으로 안 되는 일을 만난 것이다.



추후 상담을 다녀온 날 내담자들이 첫 방문 때의 모습이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리플레이되었다.
상담 사례로 존재하던 내담자들이 나 자신이 아팠던 후에야 그들의 말과 얼굴이 마음속에 떠다녔다. 그들이 대체 어떤 시간을 보내고 내 맞은편 자리에 앉았던 건지 함께 있었지만 알지 못했다.






그 집을 나온 이후, 그는 상담센터에 같이 가자고 연락이 왔다. 그제야 포털사이트에 부부상담, 커플 상담 이란 단어를 검색해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일인 줄 알게 되었고 이전까진 몰랐다고 했다.

이럴 때 ‘몰랐다’라는 말은 폭력이 된다. 실제로 몰랐던 것보다 그렇게 몰라도 되었던 그 시절의 무관심과 냉대는 칼이 되어 마음을 찔렀다.
 
그에게 기회는 지나갔고 그럴 마음이 없다고 말했다. 수없이 말하는 동안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갈등 해결을 위한 방안으로 파트너가 제시한 것을 받아들이는 데 이만큼의 힘이 들어가는 사람이라면 더 할 이유가 없었다.


정말 상담을 원한다면 그가 혼자 갈 수 있는 상담센터 몇 곳을 소개해주었다. 그 사람에게도 이 헤어짐을 받아들일 시간에 전문가가 함께 하면 좋겠다 싶어서.



'alone together'  illust Copyright © slowthes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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