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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Jan 01. 2022

아듀 2021

해가 넘어갈 때면 언제나 가장 먼저 드는 감상은 '이번 해도 별로  것도 없이  지나가버렸네'였다. 그러나 올해는 결코 '' 지나가지 않았다. 길고도 길었다. 여러 번의 동굴에 빠진 기간들이 있었다.


연이어 필기시험과 면접에 떨어졌던 올 초는 내 인생에서 어찌 보면 가장 비참했던 시간들 중 하나였던 것 같다. 언제 끝날지 몰랐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수차례 마음을 다스리고 빠져나갈 수 있는 자기합리화의 구멍을 만들어놓으며, 상처받지 않으려고 꽁꽁 싸맸을 때 덜컥 제일 가고 싶었던 회사에 붙었다.


그러나 회사 입성 후엔 마와리와 첫 일진이라는 고난이 있었고, 이제 열거하기도 지치는, 인생에서 처음 겪어보는 수모와 분노와 슬픔들을 겪었다. 이것들은 현재 진행형이기도 하다. 그것들이 쌓이고 쌓이면 그냥 누가 툭 치기만 해도 울 것 같은 날들이 많았다. 다행히도 나는 혼자 속으로 삭히는 타입이 절대 아니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나의 디테일한 슬픔과 힘듦과 억울함을 주위 사람들에게 길고 장황하게 설명했다. 매번 눈물을 웃음으로 승화시켜준 동기들도, 다른 분야라 잘 모르지만 그래도 힘들겠다며 들어준 친구들도, 분노 속에 숨겨져있던 공포와 두려움을 먼저 읽어준 오빠도, '쟤 또 저러네' 하고 심드렁하게 들어준 가족들도 모두 내게 너무 간절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게 한껏 이야기하고 하룻밤 자고 나면 어떤 수모와 두려움과 슬픔도 한결 나아졌다.


그러니까 역시, 결론은 사람이다. 수많은 일들이 있었던  해도 결국 곳곳의 과정과정마다 있었던 사람들로 기억된다. 그래서 여전히  슬퍼지는 이별이 있다.


삼촌은 내가 8 , 독일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노란머리에 이마 피어싱을  모습을 마주한 이후로  우리의 가족이었다. 아침마다 밥을 먹으러 우리집으로 오고 수도비가 밀려 변기가 막혔다고  우리집에 왔다. 삼촌 때문에 억지로 배웠던 기타는 이젠 내세울  있는 특기가 됐다. 새학년에 올라갈 때마다  운동화를 사줬고 명절 때마단 삼촌 집에 가서 삼일 내내 삼촌이 보여주는 영화들을 봤다.  사이에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을 가고 취업을 했고, 평생 혼자   같던 삼촌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다. 회사에서 최종 붙었다는 연락을 받고 한시간동안 울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얼마나 마음 고생을 했으면 그랬겠냐' 바로 이해하던 삼촌이었다. 어느 일요일 언제나처럼 불쑥 집에 들러 깔깔대며 헛소리를 하다 갔던 삼촌은 다음날 우리 곁을 영영 떠났다. 세상엔 수많은 양상의 이별이 있지만, 이유를 막론하고 무슨 짓을 해도 절대 다시는   없는 이별이 죽음이라 유독 슬픈  같다. 여전히 말도  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말도  되는 일은 언젠가  일어난다. 이번엔 우리한테 왔을 뿐이다.


한동안은 내 차례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런 맥락 없이 언제라도 맞닿뜨릴 수 있는 게 사람과의 헤어짐이란 걸 어느때보다 체감한 한 해였지만. 당분간은, 꽤 오랫동안은 내 옆의 사람들이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한 해동안 내 옆에 있어줬던 사람들에게 모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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