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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서영 Feb 24. 2019

일 년 전의 나는 네덜란드에 있었다

그리고 일년 뒤, '헬조선 패치' 완료.

일 년 전의 나는 네덜란드에 있었다. 열흘 간의 포르투갈,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다음 여행은 어딜 가지', '5개월 길면서도 짧은데 여행을 많이 못 가면 어떡하지' 하는, 역시나 거기서도 조급해하는 마음과, 그럼에도 매일 아침 하늘과 숲을 보며 행복해하고 평화로운 틸버그 공기를 좋아하는 그런 마음으로. 나는 네덜란드의 작은 도시에 있었다.


일 년이 지난 후, 지금은 한국에서 너무나도 잘 있다. 3학년을 마치고 4학년을 기다리는, 곧 졸업과 취업을 준비하는 20대의 여자 대학생으로서 해야 할 것들을 해내며 '너무나도 잘' 지내고 있다. 두 달의 방학 동안 정신없이 했던 것이 마무리되고 겨우 일주일 남은 방학 동안 집에서 뒹굴거릴 것을 다짐하며, 동시에 개강을 하면 7학기 생으로서 또 다른 시험들을 준비할 생각을 하며. 빨리 학기 채우고 졸업해서 언론고시나 준비해야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잘 지내고 있다.


그런 생각들 속에서 불과 일 년 전의 나였지만 저 먼 세상 같은 지난날의 사진들과 TV에 나오는 유럽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굉장히 슬퍼진다. 유럽이 유토피아 같은 곳은 아니었다. 좋았지만 '여기서 평생 살지는 못 하겠다'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다. 유럽에서의 나는 언제나 제삼자였다. 어디로 여행을 가도, 심지어 내가 (임시지만) 재학생으로 소속되어 있는 학교와 내가 살고 있는 곳에서도 나는 뭔가 항상 지켜보고 관찰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내가 그곳에서 새로운 것들을 경험하며 살고 있다는 생각에 행복해하다가도 이런 경험이 유한하고 임시적인, 동양인인 내게만 매우 특별한 것이라는 생각에 기분이 묘해지곤 했다.


혼자 돌아다녔던 헤이그, 평화로운 바다와 익숙해진 홀란드 거리가 너무나도 행복했지만, 해변에서 각자 자기들의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가족과 커플들을 보면 마음이 뭔가 숙연해졌다. 그냥 내가 한국에서 태어난 게 잘못인 걸까. 왜 한국에서는 이렇게 살 수 없나. 왜 이런 평범한 것들이 우리에게는 동경의 대상인가. 그냥 모두가 다 같이 이런 것들을 누리고 행복해할 순 없는걸까. 개천에서도 살만하다고 느끼면 안 되는 걸까.


내가 무언가가 되고, 이루고, 원하는 것을 하지 않아도 오늘 눈떠서 파란 하늘을 보고 아침밥을 만들고 빨래를 하는 그런 평범한 일상 속에서 행복할 수 있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처음으로 깨달았던 시간들이었다. 그런 마음으로 한국에 돌아왔는데 나는 너무나도 금방 '헬조선 패치'가 됐다.


틸버그에서 살았던 것처럼 살지 못하겠다 이곳에선. 가만히 있으면, 일어나서 하늘 보고 밥 먹고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정말 큰일이 날 것만 같다. '그냥 조금만 쉬어볼까', '한 학기만 휴학을 해볼까' 라고 잠깐 생각했지만 후회하게 될 스스로를 생각하며 수강신청을 하고 등록금을 냈다. 이제 두 달 인턴이 끝났으니 토익과 한능시 책을 사려고 한다. 7학기를 다니면서 병행할 생각이다.


일 년 전의 나는 네덜란드에 있었다. 그리고 일 년이 지난 지금 한국에서, '한국스럽게' 아주 잘 지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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