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예술은 영향력을 넓혀야 한다
1 문화예술과 지속성을 위하여
문화예술의 긍정적 효과만 누려온 내게 코로나 19로 인한 예술인들의 어려운 현실은 큰 충격이었다. '예술을 사랑하는 문화인'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녔던 내가 할 수 있는 일로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느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이 칼럼, <문화예술과 지속성을 위하여>는 현실적 관점으로 문화와 예술을 바라보기 위한 글이자, 개인적 공부였다. 아트인사이트 헤드라인에 노출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식 SNS에서 이 글을 공유하고 나자 무언가 긍정적인 일을 하고 있다는 가슴 벅찬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사실 이 글을 계속 쓰기 위해 깊게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다. ‘문화예술’도, ‘지속성’도 어떤 의미로 써야 할지, 문화예술을 넘어가는 관점에서 바라보아야만 했다. 또한,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 내가 이루고 싶은 목표가 과연 진정 문화예술인들이 원하는 것일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마지막 학기 온라인 수업을 들으며, 그리고 취업을 위해 수많은 이력서를 제출하며 바쁘다는 핑계로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을 회피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돌아보니 결국 취업을 준비하는 일은 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나에 대한 가치를 매기고 진단하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문화예술에 대한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관심이 커졌고 창작자와 작품으로만 문화예술을 바라보던 내 관점을 확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 확장된 무언가를 쓰고 싶고 써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최근 모 대학 커뮤니티에서 익명 게시글을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가 선택해서 예술한다고 했는데 작품으로 평가받지 않고,
왜 국민 세금으로 지원해줘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결국 생활이 어려워도 예술을 선택한 본인의 결정 아닌가요.”
그 글의 아래에는 이러한 생각을 비난하는, 그러한 사고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원색적 댓글들이 달렸다. 그러나 나는 오히려 그 비난의 댓글 작성자들에게 그렇다면 예술인을 지원하는 이유에 대해서 알고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들이 대답을 확실하게 할 수 없다면, 그리고 그 대답의 기저에 깔린 가치관이 각각 다르다면 아직 예술 지원정책과 복지는 나아가야 할 길이 멀다는 걸 의미한다. 쉽게 생각해서, 국가장학금 제도나 혹은 국가보훈대상자의 혜택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는 사람이 없다. 현실적으로 다른 복지 정책에 비해 문화예술 지원정책의 양은 늘어가고 있지만 이를 시행하기에 앞서 꼭 필요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기 위해서, 문화예술에게 필요한 건 영향력이다. 특히 정치적 영향력과 경제적 영향력이 필요하다고 절감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두 달 만에 <문화예술과 지속성을 위하여>를 쓰기 위해 노트북 앞에 앉았다. 나는 대한민국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대학생에 불과하지만 ‘문화예술과 지속성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 한 가지를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문화예술과 지속성을 위해, 문화예술인들이 진지하게 읽고 나아가 문화예술의 미래를 생각해볼 만한 세 번째 글을 쓰기로. 이번 주제는 문화예술의 영향력 확대다. 문화예술의 정치적, 경제적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외국 사례를 들어 펼쳐보았다.
-
2 정치적 역할 확대
정경유착, 정언유착, 정법 유착 등 정치와 유착된 일은 많다. 정치, 경제, 언론, 법조계 등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한 이들의 물리고 물리는 관계는 세간의 관심을 끈다. 그러나 블랙리스트 사건을 보고 정문 유착이라고 하는가. 그리고 그 사건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이를 변화시켜 나갈 지에 대해 사람들은 인식하고 있을까. 블랙리스트 사건은 정치와 문화의 관계를 보여주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정치계에서 ‘문화예술’은 정권 유지와 지속을 위한 캐치프라이즈로 활용한다.
또한 최근 20대 국회에서 예술인 권리보장법이 합의가 무산되어 21대 국회로 넘어갔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라는 국회의원들의 해명은 사실 예술인 입장에서 이해하기 힘들다. 지난 5월 20대 국회 마지막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위 법안 통과를 위해 ‘K팝 등 예술 자체가 강점인 콘텐츠, 적극적인 예술인 지원’을 들어 주장했다. 하지만 ‘예술인 권리보장법’은 불공정한 예술 환경과 사회보장 사각지대의 예술인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다. 20대 국회 임기 도중에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건’과 ‘미투 운동’이 표면상 드러났기 때문에 예술인들은 아쉬움을 넘어 절망감을 표출하고 있다. 나아가 블랙리스트 사건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은 고사하고 관련자가 다시 현장에 복귀하여 논란이 일기도 했다.
정치적 구호에 캐치프라이즈로써 문화예술을 이용하는 일을 막기 위해선 문화예술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시켜야 한다. 블랙리스트와 같은 편향적인 영향력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정치계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공식적인 ‘문화부’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문화와 정치가 긴밀한 긍정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 뉴욕시 문화국은 정치에 있어서 문화적 지원을 필수적으로 고려하고 문화가 경제와 정치를 위한 수단이 아니라, 시민과 국가의 정체성을 드러낸다는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문화와 예술의 사회적 역할을 시민 모두가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데, 이는 그들의 시민의식이 높아서 그런 것은 아니다. 미국에는 AFTA(Americans for the Arts)를 포함한 민간 예술단체와 연방예술기금(NEA)의 힘, 즉 정치적 영향력이 강하며 이를 바탕으로 한 문화 분권과 지원제도가 잘 짜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에서 힘 있는 예술단체에서 활동하는 것은 그 사회적 역할을 인정받아 정계에 진출하는 하나의 통로가 되고 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위와 같은 시스템을 기대할 수는 없다. AFTA라는 거대한 민간 조직이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는 문화예술 지원의 역사와 시스템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한국의 실정에 맞는 여러 가지 방안을 지금부터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작년, 지역문화분권 시대를 맞아 한국광역문화재단연합회와 전국지역문화재단연합회 주최로 기초/광역문화재단의 역할에 대한 정책포럼이 열렸다. 이처럼 학술적인 포럼을 주최하는 것처럼 전국에 펼쳐있는 각 문화재단이 연합기구와 기금을 설립하는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그 효과로 먼저 문화예술단체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다. 현장에서 예술과 사회를 매개하는 문화재단이 마치 미국의 AFTA가 하는 것처럼 의회와 민간단체를 매개한다면 실질적인 정치적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부차적으로는 중앙에서 예술인을 지원하는 또 다른 통로를 마련할 수 있다. 또한, 코로나 지원 정책 때도 많은 예술인들이 꼬집었듯, 위기상황에 발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 기구로서 자리할 수도 있다. 복잡한 지원 시스템을 쉽게 통합하고 이를 관리한다면 예술인들이 어려워하는 행정에 효율적으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
3 경제적 효과
앞서 이야기 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중 하나는 바로 다음에 이야기할 경제적 영향력이다. BTS가 가져온 영향력은 아이부터 노인까지 알고 있다. 사실 한국 사회가 BTS에 주목하기 시작한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그들의 음악과 서사가 세계적 경쟁력을 갖추었고 그 파급효과가 대중들을 놀라게 했기 때문이다. BTS를 포함해 성과를 거둔 예술인에게 보내는 엄청난 전국민적 지지를 생각해보면 그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다. 재작년쯤 나온 ‘BTS를 포함한 대중예술인에게도 병역 혜택을 주자.’는 주장은 정치계에 있어 그들의 정치적 영향력도 생겼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지금 엄청난 힘을 과시하는 ‘콘텐츠’의 힘은 대중문화와 거대 플랫폼에 집중되어 있다. 문화예술계도 이처럼 경제적 효과를 살려야 한다.
그러나 ‘문화예술의 경제적 효과’와 ‘예술의 상업화’를 같은 뜻으로 생각하자는 의미는 아니다. 예술의 경제적 효과를 살려야 한다는 건 장기적 관점에서 문화예술의 수요를 높이고, 그를 통해 부가가치를 창출해야 한다는 걸 의미한다. 물론 이 말을 쓰면서도 나도 그 사이에서 갈등하고 혼동한다. 예술의 가치를 확산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업화가 아닐까, 하며 예술의 상업적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 쪽으로 생각이 집중된다. 결국 예술 생태계를 살리는 가장 직접적인 처방은 소비자들이 작품을 구매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사이에서 이를 정책적으로 해결한 프랑스의 시도는 좋은 예시가 될 것 같다. 문화패스(Pass Culture)라는 어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청년들의 예술 수요를 직접적으로 끌어냈다. 민간으로부터 80%, 국가가 나머지를 부담해 인당 500유로를 지원하고 이를 음악회, 연극, 박물관 등에 활용하게 했다. GPS를 활용해 근처의 문화예술 시설로 발길을 옮기기 쉽게 해서 문화예술 플랫폼 역할을 하고도 있다. 또한, 스포티파이, 넷플릭스 등 콘텐츠 플랫폼에 쓰는 금액을 제한하면서 기초 예술에 집중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물론 2018년 시범 사업으로 진행하고, 아직 그 구체적 실행방안과 평가에 대해 비판적인 논의도 있지만 창의적으로 예술 수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청년들이 활용하기 편한 어플리케이션이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
4 문화예술인, 우리들
그리고 위에 언급한 일들을 현실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는 '우리들'이다. 문화예술인들, 우리들이 문화예술에 관심을 잃는다면 영향력은 의미가 없다. 문제의식을 느끼고 함께 목소리를 내야 한다. 나아갈 사회가 문화예술로 소통하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누구나 문화예술의 긍정적인 가치를 걱정없이 펼칠 수 있도록 지금처럼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리고 문화예술 옆에 우리들, 함께 목소리를 내는 문화예술인들이 있음을 잊지 말자.
2020. 04. 23
컬쳐타임즈